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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쌤 Jun 26. 2019

어린이집 영어수업 꼭 해야 하나

영알못 딸이 2달 만에 원서 200권을 읽기까지

교육열 높은 동네에서 어쩌다 살게 된 나는 어린이집 입학하는 날부터 "나랑은 참 안 맞는 곳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같은 반 친구 아이의 엄마가 초면에 하는 질문이 "(공부는) 뭐 시키세요?"였으니 더 볼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어린이집에서는 당연히 특기 수업에 영어를 넣었고, 나는 굳이 쓸데없는(쓸데가 아주 없진 않겠지만, 딱히 장점을 못 느껴서) 영어수업을 해야 하나 싶어 안 시켜도 되냐고 어린이집에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아이가 그 시간에 따로 책을 읽으면서 보낼 수는 있는데, 딸 빼고 다른 모든 아이들이 하는데 아이가 괜찮겠냐'는 것이었다. 딸과 의논했더니 그래도 친구들 하니까 자기도 하겠다고 하길래 (내키지 않았지만) 영어수업을 하는 걸로 했다. 


몇 개월이 지나 영어수업이 어떠냐고 6살 딸에게 물었더니 '이해 못할 때가 많다, 선생님이 너무 빨리 수업을 진행해서 그냥 애들 하는 거 따라서 한다'는 식으로 대답을 했다. 교재를 봐도 영어유치원을 다니거나 열심히 영어를 배운 아이들이 아닌 이상 우리나라 6살 아이가 하기엔 문장도 길고 글밥도 많았다. (우리나라 4-5살이 책을 읽는다고 생각해보면 -사실 그 나이에 책 읽는 애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아이들이 읽는 책은 문장이라기보다는 몇 개 단어 배열에 가까운데, 문장이라니. 그것도 몇 줄씩!) '그냥 애들이랑 뭔가 같이 하는 것에 의의를 두자'고 생각하며 그렇게 다음 해를 맞았다. 7살에도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니 아이는 영어수업을 당연히 들어야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이가 조금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적어두었던 게 있어서 아래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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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5일

어느 순간 영어 지진아에서 잘하는 아이가 된 딸래미.


사연은 이렇다. 

작년, 목동 아파트 단지 내의 구립 어린이집을 다니게 된 딸래미는 일주일에 2번 영어 수업을 해야만 했다. 조기보다는 적기교육이 맞고, 어린이집에서 하는 영어수업은 거의 효용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안 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친구들이 하는 거라 딸래미도 하겠다고 해서 그냥 친구들과 노는 것에 의미를 두고 지난 일년을 지켜보았다. 사실 나는 영어를 좋아하고 지금 일을 하는 곳도 영어로 아이들 수업하는 곳이라 마음만 먹으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도 있지만 10살 전까지는 별로 영어를 가르쳐줄 생각이 없어서 하나도 안 가르쳤는데 문제는 우리가 사는 곳이 목동이라는 거다. 


딸래미 친구들은 기본 3-4개의 학원(학습지)을 다녀서 놀이터에서 보기에도 힘들다. 영어유치원 다녀본 친구들도 있고 영어학원 다니는 아이들도 있어서 수준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고, 이러다 보니 원장님은 파닉스를 가르쳐야 하나 하는 고민도 하시고.. 아는 영어라곤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배운 애플, 타이거, 핑크 정도인 우리 딸래미는 수업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선생님이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들어서 힘들다고, 다른 애들은 그래도 잘한다고 얼핏 이야기했었다. 나는 그런 딸래미가 안 쓰러워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했지만,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 딸래미는 그냥 계속 영어수업에 들어갔고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올해 3월이 시작되면서 1년 영어수업 계획안이 왔다. 아이들이 배우게 될 간단한 단어들이 적혀있길래 딸래미가 영어수업을 힘들어했던 생각이 나서 한 주가 시작될 때쯤 딸에게 그 표현들을 읽어주고 간단하게 뜻만 설명해줬다. "mom은 엄마, tall은 키가 크다는 뜻이야.." 그래 봐야 한 5분? 정말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2-3주가 지났다. 어제 어린이집 하원길에 딸과 같은 반인 아이 엄마들을 만났는데 한 엄마가 날 보자마자 이야기한다는 게, "oo인 뭐든 다 잘한다면서요? 영어시간에도 대답 잘한다고 우리 딸이 그러더라고요."  "뭐 시켜요? 혹시 집에서 영어만 쓰는 거 아니에요?"  헐... 그렇게 우리 딸래미는 한순간에 영어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 


왜 엄마들이 선행학습을 시키는지 알 것 같다. 정말 선행이라고 하기엔 너무 보잘것없는 5-10분의 설명이었지만 어쨌든 선행은 선행이었으니 우리 딸도 선행학습의 효과를 톡톡히 본 거니까. 그렇지만 선행이라는 게 장기적으로 아이들한테 정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수많은 교육관계자들도 선행의 효과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않고 나는 입시학원은 정말 보낼 생각이 없다. (학교도 보낼까 말까 생각 중인데 학원은 볼 것도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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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5분 '선행학습'은 3번인가 하고 더 하진 않았다. 내가 까먹기도 했고 애가 요청하지도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내 아이는 있었던 일을 먼저 이야기하는 편은 아니어서 그 이후로 영어가 어려웠어도 어렵다고 나한테 이야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별 다른 일 없이 그냥 잘 지나갔고 어린이집 졸업하고 9살이 될 때까지 아이 영어 학습 따윈 잊고 살았다.    



ps. 얼마 전 집에 있는 IPTV의 아이들 영어 코너를 보았더니 7살 때 어린이집에서 썼던 교재를 가지고 노래와 파닉스를 만든 프로그램이 있었다. 보여줬더니 이제야 다 이해하고 재밌게 보았다. 어린이집에서 영어 가르치느라 애쓰는 선생님들과 집중하려고 몸부림쳤을 아이들이 안쓰럽다. 10살에 하면 양쪽 다 편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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