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알다가도 모를 조직
가장 만만한 게 남편과 아내일까. 결혼을 하지 않은 나는 부부의 마음을 모른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나의 부모를 보면, 가장 만만하고 가장 편한 상대가 서로인 것 같다.
10년 전 아버지는 암에 걸리셨다. 엄마는 옆에서 아버지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세 끼 밥을 해 먹였다. 그러다가 폭발했다. 아버지도 아버지 나름대로 폭발했다.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와서 “내가 네 엄마 때문에 암에 걸렸다. 맨날 화를 못 내고 참다 보니까 암이 걸렸어.”라고 하셨다. 이후 엄마가 3년 전에 소뇌위축증 판정을 받았다. 엄마가 이야기 했다. “너네 아빠때문에 내가 병에 걸렸어. 너네 아빠만 아니었어도.”
상대를,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불안감과 두려움은 누굴 탓해야 삭혀지는 것이었나보다. 그렇게 자식에게 못난 말들을 내뱉으시더니만, 그래도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 되고 있다.
아빠가 아팠을 때 엄마는 나름 노력했다. 그래서 아빠는 말기암인데도 완치가 되었다. 이제 아빠가 노력을 하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아빠는, 2년 동안 엄마의 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2년의 자리에는 내가 있었다. 엄마는 병을 알게된 후 1년간은 정상인처럼 생활했다. 운동도 열심히 했고, 청소도 요리도 설거지도 모두 하셨다. 하지만 그 다음 해에는 나의 몫이 늘어났다. 엄마의 신발을 신겨드리는 것, 양말을 벗겨 드리는 것, 밤에 화장실을 갈 때 위험할 수 있으니 무드등을 곳곳에 켜두는 것, 무드등을 낮이 되면 충전하는 것, 우울해지기 쉬운 병이니 매주 꽃을 사다 놓는 것. 아빠가 아플 때는 이렇게까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니까…딸에게 엄마란 존재는 이렇게 무겁고 애틋한 것인지, 나는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했다. 그러나 아빠만큼 할 수가 없었다.
아빠는 옆에서 엄마를 지켜보면서 어느 순간 엄마의 병에 적극적으로 변해버렸다. 약이 없는 병임에도 불구하고 한의원을 찾아가고, 함께 운동을 하고, 엄마의 말벗이 되어주고 있다. 살면서 나의 엄마와 나의 아빠는, 서로를 많이 할퀴었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관점이다. 부부 사이에 흐르는 많은 것들은 오직 그 둘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심리학이, 정신의학이 이 둘을 분석하고 솔루션을 준다고 해도 소용없다. 부부의 일은 부부가 해결하는 결자해지 같은 것이었다.
아프기 전 엄마는 내게 꾸준히 결혼하라고 말했다.
“서진. 이 세상에 너 같은 또 다른 너를 만나는거야. 너를 하나 더 만든다고 생각해. 그건 남편이야.”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진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아빠의 40년 이상의 세월을 보면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흥미롭고 변수가 많은지를 깨닫는다. 죽을 때까지 모르는 게 인생임을 다시 한 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