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나에게 이렇게 무거운거야?
“나는 늙으면 요양원 갈거다. 뭐하러 자식 고생 시키니”
라고 건강할 때 말하던 엄마는, 갈대같은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듯, 나이가 들고 아프니 나에게 의지한다.
“너가 일 안하고 그냥 집에 잇으면 좋겠다. 일해봤자 2,300 벌텐데 그 돈 벌려고 나가서 일하느니 집에서 엄마랑 있으면서 그 돈 받으면 더 좋지 않을까?”
라고 아픈 엄마가 나에게 말을 했다.
결혼 하지 않은 미혼의 자식, 독립할 돈이 없어서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자식인 나는 그 말을 듣자 마자 화가 났다. 그저 돈 때문에 일을 하는 게 아니니까. 일은 결국 나를 보여주는, 나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길인데 그걸 막아버리는 느낌이었다. 부모란 그런 것이었다. 자식을 너무 사랑하지만, 너무 사랑하기에 제일 크게 의지해버리는 사람이 부모란 사람들 같았다. 게다가 자식의 독립 보다는 자식의 공양이 지극히 당연했던 유교사회 국가인 한국에선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는, 요양원에 보내려는 요즘의 ‘자식들’이 60대의 부모에겐 서럽고 불안한 존재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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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식탁과 부엌을 오갈 수 있다. 냉장고와 아일랜드 식탁, 식탁 의자 등받이를 잡으면서 움직일 수 있다. 움직이는 것이 엄마 몸에는 더욱 좋다. 그래서 주중에는 엄마가 먹을 한 끼와, 퇴근하고 오는 아빠의 끼니를 엄마는 차린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때는 힘에 붙이는 모양이다. “요즘은 왔다갔다 내 밥 챙겨먹는 것도 힘들어” 라고 이야길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럼 나 일 관두고 엄마 옆에 있어?” 라고 답정너 같은 질문을 한다.
“아니, 그건 아니야.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라고 엄마가 말을 하는데 그래도 화가 나고 속이 상한다. 의미 없는 질문들을 한다.
‘왜 애들 다 키워놓고 남편과 놀기만 하면 되는 가장 좋은 때에 엄마는 아픈거야’라며 엄마에게도, 하늘에게도 할 수 없는 질문을 속에서 마구 생산한다. 눈물이 나지도 않는다. 막막함, 불안함, 분노, 미안함들이 마구 뒤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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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보다 젊고 건강한 나는 부모님의 이런 저런 심부름을 도맡아 할 때가 있다. 방에서 책을 보려고 하면 세시간에 한 번은 부르는 데 그게 화가 난다. 화를 내는 나도 참 염치가 없다. 나는 생활비 한 푼 내놓지 않는다. 몸으로 가사일을 때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열 받으면 내가 독립하면 되는 일이다. 근데 엄마가 아프다. 엄마가 아파도 독립하라고 하던데, 어떤 사람들은, 나는 그 말이 가시마냥 아프다. ‘말이 쉬운 거에요’라고 쏴붙이고 싶다. 하지만 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안다. 독립하는 것이 더 나으니 하는 말이겠지. 결국 그럴 자신이 없는 내가 계속 나를 아프게 하고 있다.
이런 쳇바퀴 같은 하루들을 보내다가, 틈틈이 읽었던 논어를 완독했다. 공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야 타인의 사랑도 실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가족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인과 예가 그것이었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시대였다. 서양심리학과 다른 부분이 있다. 서양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나를 힘들게 한 부모라면 멀어지고 버리라고 했다. 안봐도 된다고 했다. 나를 힘들게 한 부모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이렇게 까지 해야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공자와 참 대비되는 부분이었다.
나는 공자의 말을 따라야할까. 아니면 서양심리학에 손을 들어야 할까. 엄마가 미우면서도 좋다. 엄마는 나의 감정을 힘들게 했고, 그만큼 나를 예뻐했고,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살았던 사람이었다. 엄마와 나는 인정하기 싫지만 깊은 애착으로 묶인 상태였다. 역시 내가 일찍 독립을 했어야했나보다. 막내라고 품안에 끼고 돈 자식은 나이가 들어 부모가 무너지면, 이처럼 패닉 상태를 경험한다. 지금이라도 바로 서고 싶다. 아픈 엄마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고, 나도 편안해지고 싶다. 방법을 찾고 있다. 방법은 있을 것이다.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