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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자인간 Oct 19. 2024

두 번째 사선을 넘은 아들

아들의 전역

군인이었던 아들이 민간인이 되었다. 최고의 성능을 내는 시기의 사람이지만 자주포의 부속품으로서의 1년 6개월을 마친 것이다. 부대 앞에 차를 세우고 기다렸다. 연천의 쌀쌀한 가을바람은 철조망을 지나며 쇳빛이 섞인 회색빛을 띄었다. 멀리서 젊은 남자의 무리가 굳게 닫힌 철조망 문으로 다가왔다. 군복과 군화를 각 잡고 입은 건장한 그들의 모습은 살생과 파괴에 최적화된 워 머신 그 자체다. 그런데, 정장 입은 무리로 꽉 찬 사무실에서 흘러나오는 힙합 음악처럼, 그들의 얼굴에는 워 머신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아들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곧이어 철조망 문이 열리고 아들, 그리고 아들과 함께 전역하는 군인 - 아니 이제 민간인 - 한 명이, 남을 사내들 한 명 한 명을 얼싸안았다. 이어 두 민간인들을 남은 군인들이 헹가레 쳐 주고 단체사진 몇 장을 찍었다. 모두들 왁자지껄 화기애애한 것이 흡사 졸업식의 한 장면 같다. 남은 후배들은 칠 할의 부러움을 숨기고자 삼 할의 웃음을 더욱 환하게 짓고 있고, 나가는 선배들은 칠 할의 해방감을 숨기고자 삼 할의 아쉬움을 증폭시키려고 애썼다. 선배들이 사회로 나가고, 철조망 문은 다시 닫혔다. 돌아서서 병영으로 걸어가는 후배들의 얼굴에 아직도 웃음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들은 조수석에, 오늘 전역하는 한 명과 말년 휴가를 떠나는 또 한 명을 뒷자리에 태웠다. 원체 감정 표현을 잘하지 않는 아들이지만 그때만큼은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함께 전역하는 아들의 동기는 어색하게 각 잡힌 자세로 앉아 있었지만, 환희와 기대로 가득 찬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에게 덕담 한마디 해 주었다. "일생을 통틀어 지금처럼 건강한 나이에 시간하고 돈이 여유 있을 때는 없을 것이니 마음껏 누리세요." "넵, 열심히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마치 내가 사단장이라도 되는 듯 다나까체로 배에 힘주며 말했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아들이 군 생활을 하면서 어떤 힘든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워 머신으로 자신을 단련시켜야 하는 군인으로서의 삶은 그 자체로 이미 사선에 한 발짝 내딛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아들은 그 사선을 넘었다. 이 사선을 넘기 전에 아들은 그의 기억에 남아있을 리 만무한 어린 시절, 무시무시한 사선을 넘은 바 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사그라들기도 전에 태어난 아들은 백일도 되기 전에 종합병원에 입원했었다. 생후 몇 주면 사라져야 할 황달끼가 계속되었고 황금색이어야 할 변도 모래를 뭉쳐 놓은 듯 하얬다. 지방 소도시에 위치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는데, 병명은 '담도폐쇄증'이었다. 담낭과 장을 잇는 담도가 막혀서 담낭에서 만들어진 담즙이 장으로 도달하지 못하는 병이다. 만 명당 한 명 꼴로 발생하는 희귀 질환인데, '카사이 수술'로 불리는, 담낭과 소장을 바로 붙여버리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 100% 사망하게 된다. 카사이 수술은 시기도 중요해서 생후 3개월 이내에 시행하지 않으면 예후가 매우 안 좋다. 상당 비율의 담도폐쇄증 환아가 결국에는 간이식을 받거나 담도염으로 평생을 고생하게 되고, 일정 비율의 환아는 카사이 수술을 받았음에도 결국 사망하게 된다. 입원할 당시의 아들은 생후 3개월이 지나있어서, 담도폐쇄증 예후를 판가름 짓는 골든타임의 거의 막바지 시점이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담도폐쇄증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불안함은 커져갔다. 지방에서는 꽤 망명 높은 종합병원이었지만, 오가는 의사들이 한 번씩 아들의 병상에 들러서 아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불안했다. 보호자의 불안감이 투영된 것이겠지만, 소아과 의사들이 희귀한 사례의 환아를 잘 보고 경험을 쌓으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병원에서는 카사이 수술의 경험이 거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커졌다. 아무튼 아들은 며칠만 있으면 카사이 수술을 받게 될 것이었다. 그것이 유일한 살길이기에.


어느 날 밤 자정 무렵 담도폐쇄증에 대한 홈페이지를 발견하고, 그 페이지를 운영하는 서울 유명 병원의 소아외과 전문의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다. 그는 야심한 밤에 걸려 온 전화에도 화내지 않고 내 얘기를 차분히 듣고는 전원을 조심스럽게 권하였다. 그는 전국 각지의 많은 담도폐쇄증 환아를 치료하고 있었다. 나는 내 아들의 생사가 걸린 중요한 수술을 한 차례라도 경험이 더 많은 의사에게 맡기고 싶었다. 다음날 아침 바로 전원을 실행에 옮겼다.


옮겨간 병원에서는 아들이 특별하지 않았다. 병동을 가득 채우고 있는 비슷한 환아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몇 가지 검사 후 의사의 진단도 이전 병원의 진단과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특발성 신생아 간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담도폐쇄증과 신생아 간염은 증상과 영상의학적인 검사로 구별하기 매우 어려운 질환이지만, 예후는 천지차이로 달랐다. 담도염으로 평생 고생하거나 간 이식을 받아야 하거나 아니면 이른 사망에 이르게 되는 담도폐쇄증과는 달리, 특발성 신생아 간염은 대부분의 경우 그냥 저절로 완치되는 질환이었다. 


카사이 수술로 들어가기에 앞서, 담도폐쇄증인지 신생아 간염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인 복강경 시술을 우선 진행하기로 했다. 갓 생후 삼 개월 지난 자그마한 아기가 코에 튜브를 꽂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아들의 앞으로의 수십 년의 미래, 아니 현재의 생사를 가름 짓는 치명적인 주사위가 굴러가고 있었다. 내 울음은 삼키고 아내의 울음은 진정시키며 몇 시간이 지났다. 의사가 웃으며 나타났다. 그의 입에서는 '신생아 간염'이란 말이, 내 일생 들었던 가장 멋진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담도폐쇄증이었다고 하더라도 아들은 첫 번째 사선을 무사히 넘겼을 것이다. 현대 의학은 사람을 살도록 만드는 일은 정말 잘하니까. 그러나 두 번째 사선을 접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두 번째 사선을 무사히 넘어온 아들은, 누구나 겪는 일이라 치부할 수는 있어도, 내게는 너무 대견하다. 배에는 첫 번째 사선을 넘을 때 생긴 작은 복강경 자국이 있을 것이고, 얼굴과 팔은 두 번째 사선을 넘어오느라 꺼뭇꺼뭇해져 있다. 이제 그의 앞날에 어떤 사선이 있건 간에 아들은 잘 헤쳐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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