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은 사무실 이사하는 날이었다. 오전에 짐을 싸 놓으면 오후에 이사업체가 짐을 옮겨주기로 되어 있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팀원에게 피씨는, 택시기사에게는 택시, 포클레인기사에게는 포클레인과도 같은 존재인데, 이삿짐 박스 안에 들어가 있다. 사무실에 남아 있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대낮에 퇴근이라니. 이런 날에는 무얼 할까 다들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 마련인데, 오늘 내 선택은 아무도 없는 집 거실에서 오케스트라 음악 듣기였다.*
토마스 아데스, 단테 음반 커버
나중에 생각하면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오늘 건** 음악은 영국의 현대음악 작곡가 토마스 아데스(Thomas Adès)의 '단테'다.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를 생각했다면 맞다. 그의 <신곡>을 관현악 발레음악으로 만든 것이다. 이 음악의 첫곡은 지옥편의 서막을 여는 'Abandon Hope', 즉 '희망을 버려라'다. 이 곡을 들을 무렵, 트럼프 당선이 확실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이후로 계속 지옥편의 음악***이 재생되는데, 귀로 들리는 음악보다 뉴스로 보는 현실이 훨씬 더 지옥같이 느껴졌다. 이어지는 연옥편은 이스라엘 유대교 회당에서의 하잔의 노래에 관현악으로 살을 붙인 것이다. 작곡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트럼프의 당선으로 더욱더 기고만장해질 이스라엘, 특히 네타냐후의 얼굴이 떠올라 집중이 흐트러졌다.
뉴욕타임스에서 얼마 전 읽었던 기사가 떠오른다. 파시즘의 권위자로 추앙받는 로버트 팩스턴에 관한. 그는 파시즘이라는 말이 남발되는 것을 경계했지만,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사건 이후로 트럼프주의를 파시즘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견해를 수정했다. 파시즘이란 단어는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 있어서 마치 욕처럼 사용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그 의미를 충분히 곱씹으면서 상대방을 O새끼라고 욕하는 것은 아니듯이, 정치적 상대를 파시스트라고 칭하면서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파시즘이 무엇인지를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전문가가 트럼프주의를 파시즘이라고 했다면, 얘기는 다르다.
내일 출근을 위해 나머지 얘기는 다음에...
* 화창하고 선선한 가을날씨에 왜 라이딩이나 러닝 등 야외활동을 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음악을 듣느냐라고 한다면, 관현악곡 결핍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답하겠다. 집에 아내나 아들이 있을 경우 오케스트라 음악을 충분한 음량으로 듣기가 어렵고, 가족 눈치를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관현악곡 감상은 늦은 시간 아파트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대낮에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을 흔치 않은 기회가 생기면 소파에 홀로 앉아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을 꼼짝도 하지 않으면서 말러나 쇼스타코비치, 또는 브루크너 등을 듣기를 좋아한다.청승맞긴 하다.
** 음악을 '건다'는 표현이 지금도 어색하지 않고 입에 착 감긴다. 사실 내 경우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는 서버 피씨에 저장된 음원을 태블릿 피씨에 깔린 '룬'을 리모컨 삼아 스트리밍 기기로 보내는 것이고, 결국 탭 한다거나 터치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기는 하다.
*** 토마스 아데스의 '단테'는 현대음악 같지 않게 조성적이고 얼핏 들으면 말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썼을 법한 발레음악 같다. 1부 지옥편조차도 별로 지옥 같지 않고, 심지어는 감미롭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