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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민 Jul 10. 2023

어느 '직업인'의 거룩한 업무일지

다큐멘터리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https://youtu.be/LwkMQPDsZ9s

영화에 큰 관심 없는 사람도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고, 심지어 이름을 안 들어봤어도 그의 노래 최소 5곡 이상은 무조건 알고 있을 영화음악 작곡가 엔니오 모리꼬네를 다룬 다큐멘터리.


안 그래도 보고 싶던 영화였는데, 예고편 1분 59초에 나오는 트랙-인 샷 한 컷에 완전히 매료되어 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극장으로 달려갔다. 영화를 보면 같은 지휘장면을 엔니오의 시점으로 찍은 '시점샷'도 등장하는 만큼 다큐멘터리 안에서도 유독 영화적으로 연출한 독특한 샷인데, 아마 인서트를 찍던 작업실에 감독의 요청으로 보여준 퍼포먼스였겠지. 다분히 '시켜서 한' 퍼포먼스임이 명확한데도 그 한 컷이 이토록 강렬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그건 아마 그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배경의 작업실과, 수없이 휘두른 팔 근육에 새겨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정말 내용이 하나뿐인데, '자기 일에 엄청난 자부심과 그에 걸맞은 역사를 지닌 귀여운 할아버지와 그를 찬양하는 주변인들', 정말 그게 전부다. (그런데 할아버지 정말 귀엽다. 굉장히 전문적인 이미지와 달리 많은 뮤지션들은 자신이 쓰거나 연주한 곡을 입으로 따라다란~ 뿌뿌빠빠~ 부를 일이 굉장히 많은데, 90을 바라보는 노장이 자신이 쓴 수많은 곡에 일일이 몰입하며 뚜르르르 부르는 장면은 정말이지 귀여워 미친다.)  영화는 156분 동안 '엔니오는 천재예요'만 반복한다. 인물의 생애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평이함을 벗어나기 위해 흔히 취하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 속의 개인' 같은 관점도 거의 없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면 믿을 수 있을까. 나는 원래 영화를 보며 꽤 잘 우는 편이지만, 같은 줄, 앞뒤에 앉은 대부분의 관객이 훌쩍거리고 있었다. 내가 눈물이 차오른 순간은 내 인생 영화 열 편을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갈 <시네마 천국>의 음악이 흘러나올 때였고(이 다큐멘터리의 감독이기도), 누군가는 <미션>의 오보에 소리에, 누군가는 <원스어폰어타임 인 아메리카>의 반주를 연주하는 장면에서였다. 극장을 가득 채우는 그 음악 안에 푸욱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영화다.

https://youtu.be/WSkyoyyvnAY

내 싸이월드 시절 가장 오랜 배경음악이었던 곡.

반면 전혀 그럴 음악일 것 같지 않지만 <황야의 무법자>나 <석양의 무법자>(원조 '놈놈놈')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관객도 있었을 것 같다. 오래된 영화는 그 영화를 보던 시절의 기억과 도저히 분리할 수 없는 유기적인 결합으로 남으니까. '거대한 시대의 흐름' 같은 게 없다고 한 말은 실은 그래서 너무 박약한 표현인데, 엔니오라는 한 인물의 작업사를 훑어보는 것은 그대로 영화 역사의 한 축을 어르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https://youtu.be/J9EZGHcu3E8

이 영화가 <놈놈놈>의 원조라는 것도, 이 영화 자체도 모르는 사람도, 이 노래는 알겠지.


이 모든 이야기는 더하고 뺄 것 없이 그저 이 영화 자체에 대한 설명이겠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위안을 받은 부분은 엔니오가 보여준 '직업인'으로서의 태도였다. 끊임없이 '예술가'로서 스스로의 탐구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거장이 될 수 있었겠지만, 그 이전에 그는 '발주'를 받는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지켜 나갔다. 본인의 취향이나 삶의 태도와 무관하게 '작업할 영화'를 위한 최선을 고민했고, 심지어는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과 '클라이언트'인 감독이 생각이 충돌할 때도 끝끝내 싸우면서도 감독의 요구를 반영하려 애썼다. 그러면서도 '배경음악'으로 머무르지 않고 한 곡의 독립적인 '음악'으로서 존재할 수 있고자 했고.


실은 '예능PD'가 되고 싶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연출자로서의 재량이 가장 폭넓게 보장되는 분야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이 바닥도 사업이 확장될수록 점점 예산은 커져가고 역할은 분할되고 있다.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기획'을 그 모양대로 만들 수 있는 기회는 갈수록 요원해지는 분위기이고, 어찌할 수 없는 그 흐름 앞에서 조금 울적해지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쌓아 올린 '외주' 작업 위에 이토록 거대한 자신의 세계를 펼쳐놓은 거장이 있지 않은가. 어찌 보면 영화는 엔니오라는 거장의 '예술적인 외주제작 연대기'에 다름 아니다. 셰익스피어도, 클림트도, 이름을 떠올릴 수 있을 대부분의 거장들은 죄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받아 창작하는 사람들이었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도 어떻게 자기 매력을 펼쳐 나가느냐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 있어야 수주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을. 나 따위가 이 동네 팍팍해진다고 울적해하고 있을 사치는 어불성설이란 얘기다. 


어쨌거나 영화사의 가장 아름다운 음악들을, 어두운 가운데 소리로 충만한 극장에서 잔뜩 젖어 듣는 것은 황홀한 경험이다. 영화가 내리기 전에, 시간이 되는 이는 부디 이 황홀경을 놓치지 마시길. 돌비 애트모스 같은 음향시설을 갖춘 극장이라면 더 좋겠다. 아쉽게도 돌비용 믹싱은 지원하지 않은 것 같지만.


실은 이 영화가 156분이나 된다는 것도 이 글을 쓰면서 검색해 보고 알았다. 보고 나올 때는 100분 정도 된다고 느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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