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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민 Nov 16. 2024

미식美食을 영화로 만나는 방법들

<흑백요리사>가 재미있었다면 한 번쯤 봐도 좋을 영화들

관심 없다고 썼지만 제법 잘 먹고 다녔던 여행의 사진들

보통 이런 단어들은 예상 밖의 한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지만 '미식'은 의외로 '아름다울 미美'에 '먹을 식'이라는 아주 직관적인 글자를 쓴다. 말 그대로 좋은 음식을 먹는다는 뜻이다.


나는 기본적으로는 먹는데 큰 취미가 없다. 잘 안 먹는다는 말이 아니라 보통 아무거나 잘 먹고, 쉽게 만족한다는 뜻이다. 수십 국가를 여행해 왔지만 식도락(食道樂)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아무도 그러라고 안 했지만 여행지에서 '먹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재고의 여지없이 '보는 즐거움' 쪽이다. 혼자 간 여행에서는 그냥 맥도날드나 편의점 샌드위치로 때워도 충분할 때가 많다.  30년째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치킨이고, 고기반찬 없이 김치나 나물 한두 가지로도 밥은 얼마든지 맛있으며, 일주일에 서너 끼 정도는 늘 똑같은 방울토마토에 뮤즐리, 두유를 먹는 게 거의 5년째 습관일 정도로 '맛'은 내 인생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이런 나에게 처음으로 '그냥 맛있는 음식'을 넘어서는 '미식'의 즐거움을 알려준 사람은 군복무를 마치고 떠난 여행지 파리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제빵사 형이었다. 그는 열흘 동안 오직 바게트만 먹기 위한 목적으로 파리를 찾았는데, 그의 지도에는 파리 시내의 이름난 빵집들이 빼곡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호기심에 내 하루 일정을 그를 따라다니는데 썼는데, 그는 들어서는 빵집마다 다른 빵에는 관심도 주지 않고 오직 바게트만 들고 나왔다. 나와서는 반을 쩍 갈라, 냄새를 한참 들이 맡고, 한 조각 떼어 내 입에 넣고 한 세월을 씹었다. 바게트마다 그렇게 했다. 내게도 똑같이 해보도록 시키면서, 바게트마다 재료는 무얼 썼는지, 어떻게 얼마나 발효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는데, 그렇게 하고 있자니 다 똑같아 보이던 바게트에서 저마다 은은하게 다른 풍미가 코와 혀를 부드럽게 지배하기 시작했다. 넓은 세상을 보러 나왔는데 정말로 내 세계가 넓어지는 기억이었다. 아, 맛으로 세상이 넓어진다는 건 이런 거구나.

모처럼 몇 주 동안 <흑백요리사>에서 현란한 음식의 향연을 지켜보고 있자니, 유독 내가 관심이 적은 '미식'을 기가 막히게 다룬 영화들이 겹쳐 보였다. '먹는 일'은 미각, 후각, 촉각의 일이지만, 영화와 드라마는 딱 그걸 빼버린 시각과 청각의 예술이다. 이 형식의 예술로도 '먹는 일'을 생생하게 담아냈다면 과연 볼 만한 작품이 아닐까.

사실 '먹방' '쿡방'은 이런 이름이 생기기도 전부터 유구한 미디어의 소재였기 때문에 먹는 일을 다룬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미식의 감각을 일깨워준 손에 꼽는 작품 네 편을 골라봤다. <흑백요리사>의 여운은 남아있고, '캐치테이블' 예약 전쟁에 뛰어들 순발력은 남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영화와 드라마들을 보면서 위안을 삼아 보는 것도 좋겠다.


1. <아메리칸 셰프>, 2014.

소개하는 네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작품. 그도 그럴 것이 존 파브로, 그러니까 <아이언 맨> 시리즈의 감독이자 극 중 '해피'역까지 맡은 그는 외모에서 느껴지는 기운처럼 성정이 유쾌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의 영화들도 꼭 그렇다.

그러니까 <아메리칸 셰프>는 할리우드 영화의 정석을 따른다. 주인공은 목적이 분명하고, 그를 가로막는 위기도 직관적이며, 그동안 억눌러 온 창의적인 기질과 열정으로 위기를 헤쳐 나가는 가운데 잠시 방황하는 순간에는 가족과 친구를 통해 각성하고 재기한다. 당연히 매 순간 위기도 잃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정공법으로 가득한 영화는 마치, 영화 도입부에 그가 기계처럼 반복하는 파인다이닝의 코스 요리를 닮았다. '그걸 먹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을 생각하는 사장)과, '그거 말고 새로운 걸' 하고 싶어 하는 예술인으로서의 셰프 사이의 갈등은 수많은 직업 창작자들이 늘 하는 고민이다. 식당은 늘 한결 같이 약속된 '아는 맛'을 제공해야 하지만, 똑같은 레시피를 수없이 반복하는 일은 때로 노동의 가장 끔찍한 면이 된다. 요리를 하나의 예술로 삼고 있는 파인다이닝의 셰프들이 왜 때때로 낯설고 이상한 메뉴를 내어놓는지 이해가 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공법으로만 가득한 <아메리칸 셰프>는 역시나 맛있다. 그게 이 영화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다. 무료함이 조금 느껴지고 기분이 처지는 날 '뭐 볼까' 했을 때 선택하면 꼭 만족할 영화. 다 보고 나서 그릴 샌드위치를 하나 먹는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정말 쿠바 샌드위치를 파는 곳은 찾기 어려울 테니.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티빙에 다 있다. 역시 흥행대작.


2. <더 베어>, 2022~

<흑백요리사>를 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드라마. 요리를 다루는 이야기들이 보통 치유와 행복을 다루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이 시리즈는 여느 스릴러 못지않은 도파민 폭탄이다.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스토브 리그>가 야구 자체보다는 야구 경영에 대한 드라마이듯, <더 베어>도 요리 그 자체보다는 식당 경영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고, 더 엄밀하게는 거기에 참여하는 인물들의 여러 병리적인 내면을 다루는 심리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안성재 심사위원이 온갖 빌런과 함께 '골목식당'을 찍었다고 하면 될까. 근데 이제 백종원처럼 솔루션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운영을 해야 하는.


미국 최고의 파인다이닝 출신인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형이 남겨 놓은 시카고의 작은 식당을 인수하게 되는데, 그의 기준에서 이곳은 운영이며 재정이며 위생이며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곳이다. 그걸 하나씩 정비해 나가며 자신의 식당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파인 다이닝과 일반 요식업의 주방이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를 간접 체험할 수 있으며,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자영업과 리더십의 지독한 스트레스도 같이 경험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요식업판 <위플래시>라고도 불리는 모양인데, 실제로 미국 요식업 자영업자의 상당수는 정기적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는 통계도 종종 같이 언급된다.


덕분에 <더 베어>를 본 눈으로 <흑백요리사>를 보면 파인다이닝 출신의 셰프들이 왜 저런 얼굴로 저런 요리를 하는지 좀 더 생생하게 발견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서사를 담아내는 방식이 상당히 낯설다는 것도 재미있다. 이렇게 '식당'을 배경으로 다양한 캐릭터의 식당 종업원들이 등장하는 시리즈의 경우, '식당을 제대로 만들어 내려는 주인공의 고군분투'라는 시리즈 전체의 큰 줄기와 함께, 매 에피소드마다 인물별로 혹은 요리별로 작은 이야기가 병행하는 피카레스크식 구성을 따르기 마련이다. 실제로 시리즈를 관통하는 갈등 외에 에피소드마다 크고 작은 갈등들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근데 이 드라마가 재미있는 점은, 에피소드별로 벌어지는 작은 갈등들에는 드라마가 시종일관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거다.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처럼 분위기를 잔뜩 잡아놓고는, 별안간 일이 다 끝난 뒤 시점으로 점프한다. 꽤 중요한 얘기일 것 같았는데 그게 어떻게 해결 됐는지는 보여주지도 않는다. 기존의 서사 구조에 익숙한 시청자들을 수시로 당황스럽게 하고 낯선 속도감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어 나 이런 거 본 적이 없는데' 싶은 당황스러움 속에서도 기꺼이 이 속도에 끌려간다. 특히 시즌1의 일곱 번째 에피소드는 영상예술을 통틀어 역사에 꼽을 만큼 놀라운 롱테이크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디즈니 플러스에 있다. 디플이 작품 수는 안 많은데 되게 열심히 고르는 것 같다. 라인업이 좋더라.


3. <프렌치 수프>, 2023.

네 작품 중 가장 탁월하게 '미식'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영화.


보통 미국 영화는 어지간하면 비슷한 제목으로 세계에 배급이 되는 것 같은데, 한국어 제목이 <프렌치 수프>인 영화는 프랑스 작품이다 보니 원제를 검색해 보면 나라별로 제각각인 번역 제목을 구경할 있다. 일단 프랑스어 원제는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도댕 부팡의 열정>이다. (영화를 보면 '고난'일지도) 왜 번역 제목이 제각각인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도댕 부팡의 열정>, 일단 한국에서는 분명히 더 인기 없을 것 같다.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라 이런 제목인 듯.

영어 번역 제목은 <the Taste of Things>. 번역이 마땅찮다. 이래서 요즘 영어권 영화 제목들은 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처럼 그냥 음차로 갖다 써 버리나 보다. 스페인어도 재밌는데 <El Sabor de la Vida>는 '인생의 맛'이다. 영어 제목도 한국어로 번역하면 이쪽이 더 그럴듯해 보이는데, 아무래도 <프렌치 수프>가 제일 나아 보인다. 수입사가 일을 잘하신 것 같다.

심지어 <도댕 부팡의 열정>도 프랑스어 제목이긴 하지만 실은 해외 배급 과정에서 바뀐 제목이고, 프랑스에서 원래 개봉했던 제목은 <The Pot-au-feu>(포토푀: pot on the fire)였는데, 극 중에서 등장하는 수프 요리의 이름이다. 이야기에서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원제이자 요리 이름인데 한국어로 '포토푀'라고 써놓으면 영화 보러 가기도 전에 읽기도 힘들 테니 그냥 '프랑스 수프요리'니까 <프렌치 수프>에 이르게 된 모양이다. (pot on the fire, 직역하면 '불뚝배기'...랄까. 갑자기 구수해지는 제목. 아 근데 극 중에서 딱 그 구수한 느낌이 맞기도 한데.)


말했듯 워낙 미식에 조예가 없는 나로서는, 그중에서도 미식의 왕이라는 프랑스 음식은 더더욱 감흥이 없는 편이었다. 몇 차례 프랑스 여행을 간 적이 있고, 일부러 미슐랭 식당을 찾아간 적이 있음에도 그랬다. 맛있는 건 알겠는데 이 돈으로 굳이? 아시아 음식이 훨씬 맛있는데? 라고 (아마 비슷한 경험을 한 여타 한국인들처럼)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권하건대, 이 영화를 보고 같은 날 괜찮은 프랑스 퀴진을 예약해서 먹어보면 아주 특별한 하루가 될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본 날은 아내와의 기념일이었고, 라이카 시네마에서 영화가 끝난 시간에 맞춰 동네의 그리 비싸지 않은 프랑스 음식점인 아뜨와떵을 예약해 찾아갔는데, 그날의 식사는 내 평생 손꼽을 만큼 풍요롭고 인상적이었다. 영화가 정성스럽게 차근차근 보여준 프랑스의 주방이 눈에 선연한 채로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자, 접시로부터 입속에 들어오는 음식들의 층과 결이 하나하나 그려지고 느껴졌다. 옆에서 설명해 주자 코와 혀가 깨어났던 파리의 바게트처럼. 미식도 역시나 배우는 것이다. 맛의 층위와 조합은 혀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상상력이 함께 만드니까.

영화는 단순히 요리를 풍성하게 보여주는 것을 넘어, 일견 사치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미식'의 쓰임을 알려준다. 가장 순수하게 생과 연결되는 감각으로서의 미식. 단순히 허기를 달래기 위한 목적이나, 말초적인 맛의 쾌락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먹고 요리하는 일이 때로는 누군가를 살게 한다. 먹는 즐거움을 위해 산다는 것은 그 말에서 느껴지는 가벼움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왓챠에서 볼 수 있다.

<프렌치 수프>가 입맛에 맞은 분은 같은 트란 안 훙 감독의 <그린 파파야 향기>도 추천. 자그마치 30년 전 영화지만 요리는 이쪽이 더 향긋하다.


4. <바베트의 만찬>, 1987.

실은 이 영화를 소개하고 싶어서 쓴 글에 가깝다. 40년 전의 이 덴마크 영화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예술로서의 미식'에 대한 영화다. 포스터를 보면 요리를 하는 '바베트'가 마치 성녀처럼 그려진 것 같은데 틀리지 않다. 한 끼의 식사가 거룩할 수 있다면 이런 장면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더 설명하긴 좀 어렵다. 스토리를 소개할 수는 있겠지만 큰 의미는 없다. 보는 내내 이게 무슨 영화인가 싶을 텐데 끝까지 묵묵히 보고 있으면 영화를 보는 내게도 아름다운 한 상이 차려졌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먹고사는데 필수적인 것'들 이상의 아름다움이 우리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만드는가.

<흑백요리사>의 박준우 셰프님이 추천해 준 영화. 요리사라면 추천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왓챠에서 개별구매로 볼 수 있다.

(역시 왓챠가 좋은 영화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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