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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이방인 Feb 07. 2021

마이크로어그레션(미세 차별)에 대한 단상

쉽지 않은 해외 살이

많은 한국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사는 것을 꿈꾸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만, 고국을 떠나 해외에서 조금 살아본 사람이라면 해외살이의 또 다른 힘듦과 고단함을 느끼게 된다. 나 또한 한국에 있을 때 해외에서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유럽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친구에게 부럽다고, 나도 한국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을 때, 씁쓸한 뉘앙스로 여기에선 자기는 여기에서 그냥 외국인 노동자라고 했을 때, 그땐 그 말이 와 닿지 않았고 마냥 부럽기만 했다. 한국만 떠나면 내 인생은 앞으로 잘 풀릴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한국을 떠나 처음 해외살이를 막 시작했을 때는 그저 자유로웠다. 나름 다사다난하고 고단했던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뒤로하고 마치 내 인생을 리셋한 듯, 인생 제2막이 펼쳐진다는 기대감과 설렘이 나를 가득 채웠다. 한국에 있을 때는 사람에 대한 기대나 관심이 없었는데, 새롭고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게 다시 즐거워졌다. 한국 사람들과의 틀에 박힌 뻔한 대화 순서가 아닌,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새로운 주제와 형식의 대화를 나누는 게 좋았다. 하지만 새로움과 신선함 뒤에는 더 거대한 무지와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그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에 갇혀버린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리고 초반에 사람들의 호기심이 지나가면 다시 무관심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해외에서 산다는 건  자유로워지는 것보다 또 다른 사회와 문화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사회에 적응하고 맞춰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다행히 코로나 이후에 대놓고 공격적인 인종차별을 당한 적은 없지만, 일상생활에서 이뤄지는 미묘한 차별인 마이크로어그레션(미세 차별)은 자주 경험하게 된다.


아시아를 컨셉으로 한 핀란드의 Fazer 초콜릿. 그런데 초콜릿 이름이 '게이샤?' (사진 출처: www.fazer.com)


우선,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생각보다도 한국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 BTS를 비롯한 K-POP, 한국 드라마, 영화를 좋아하는 몇몇 외국인들 생각보다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놀랄 때가 있었다. 한국 문화뿐만 아니라 한국어까지 유창하게 잘하는 핀란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해서, 그럴 때면 한국이 많이 알려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사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고 별 관심이 없다. 아니, 나아가서 아시아에도 크게 관심이 없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이 있다. 함께 공부를 했던 나이지리아에서 온 친구는 나에게 한국과 일본이 같은 나라가 아니냐는 충격적인 질문을 했었다. 하긴 나도 나이지리아가 정확히 어딘지, 아프리카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 외에도 한국어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냐, 일본어를 쓰냐, 아니면 중국어를 쓰냐,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늘 받는 질문인 남한이냐 북한이냐 등등. 이상하게도 북한의 김정은에 대해서는 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는데, 뉴스나 신문을 보면 북한에 대한 뉴스나 기사가 자주 나와서 그런 것 같았다. 생각보다 북한에 관한 뉴스가 많아서 내가 오히려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아시아인들은 영어를 잘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어를 잘하면 신기해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토론식 수업보다는 주입식 수업에 익숙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토론식 수업 시간에 다른 학생들보다 발표나 말을 적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시아인들이 자신감이 없거나, 영어를 잘 못해서 말을 안 하거나 적게 한다고 생각하는 편견에 갇힌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되는 진정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 다행히 침묵을 좋아하고 중요시하는 핀란드에서는 그런 것을 느낀 적이 없었다. 핀란드 학생들도 꽤 과묵한 편이었으니까. 그런데 교환 학생으로 독일에 갔을 때 한 번 확실하게 당한(?) 적이 있었다. 교환 학생을 시작한 후 어떤 과목의 첫 번째 시간이었다. 교수가 한 학기 동안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쭉 설명을 해준 뒤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교수가 갑자기 나한테 다가오더니 아주 천천히 영어로 "내가. 하는 말. 잘. 알아들을 수. 있었나요?"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 수업에는 나를 포함해 아시아인은 단 두 명이었고, 그 교수는 그 두 명의 아시아인 중에서 내가 더 못 알아듣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굳이 나에게 다가와서 이런 황당한 질문을 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각자 돌아가면서 얘기하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나는 평소보다 더 빠르고 길고 유창하게 영어로 얘기를 한 뒤 그 이후로 그 수업을 취소해버렸다.


사실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상관없이 그냥 여기선 아시아인으로 인식된다. 사실 나도 요즘은 저 사람이 한국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 아리송할 때가 많다. 같은 아시아인도 이런데 유럽 사람들은 오죽할까. 그냥 다 똑같은 아시아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에는 약간 시선 공격을 받는다고 느끼기도 했다. 코로나가 막 유럽으로 확산되기 시작할 때 공항에서 어떤 대만 커플이 가방에 '나는 중국인이 아니고 대만인입니다'라고 붙인 것을 보고 동병상련의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여기선 그냥 아시아인으로 후려쳐지는 느낌이랄까. 한국을 떠난 후 시선 강간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생김새가 다르니 마치 깊게 새겨진 주홍글씨처럼 끊임없이 또 다른 시선과 주목을 받게 된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 한국에 갈 때면 오히려 익명성의 자유로움을 느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다.

그 밖에도 여러 소소한 미세 차별로는 마트에 갔을 때 나한테만 멤버십 카드가 있냐고 물어보지 않을 때, 마트 직원이 내 물건을 계산하기 전에 손에 소독제를 마구 바를 때, 앞사람에게는 인사를 하는데 나한테만 인사를 안 할 때, 길거리에서 홍보하거나 전단지를 주는 사람들이 나만 비켜갈 때, 남편과 같이 걸어가는데 나만 빤히 쳐다보면서 지나갈 때, 처음부터 자국어를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영어로 말을 걸 때 등등 많다.


작년에 향수병이 너무 심하게 오기도 했고, 외국인으로서의 한계, 코로나로 더욱더 어려워진 취업 시장 등, 다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초반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한 건, 이곳에 살면서 내 인생이 잘 풀리고 있는지는 아직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보다는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크게 보면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비슷하다. 직장에서 늘 또라이가 존재하는 것처럼 어디든 천국은 없다.


(사진 출처: Simple Strategies for Combating Microaggressions in the Workplace - ACEP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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