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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이방인 Jul 18. 2021

잘 소화되지 않는 독일 생활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더니

남편과 함께 있고 싶어서 독일행을 결정했지만 사실 나는 독일이라는 나라에 살고 싶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독일로 이주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었고 이주한 후 지금도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다.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 동안 독일에 있었을 때 속성으로만 경험해 불편하고 불친절한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살기란 쉽지 않겠다는 느낌이 확 와닿았다. 핀란드에 있었을 때도 남편이 보고 싶어서 독일에 왔다가도 이내 도망치듯 핀란드로 돌아가곤 했었다. 그랬는데 이제 여기에서 계속 살게 된다니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고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날뛰었다. 어느 나라든 적응이 쉽진 않겠지만 실제로 한국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독일에 이민을 왔다가 몇 달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내가 독일로 옮긴 이유는 우선 남편이 독일에서 일하고 있었고,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일자리의 기회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핀란드에 살면서 행복 지수 세계 1위인 핀란드이지만 어쩌면 그건 자국민에게만 적용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핀란드 물론 살기 좋다. 깨끗하고 고요한 자연, 정직하고 검소하며 친절한 핀란드인들,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라이프 스타일 등. 그런데 그건 기본적으로 먹고 살 걱정이 없을 때나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핀란드는 외국인에게 많은 취업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진입 장벽이 높은 나라 이기도하다. 넘사벽급으로 어려운 핀란드어는 취업의 가장 큰 장벽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학을 온 많은 외국인 학생들은 언어가 크게 필요 없는 청소나 우편물 배달, 물류 창고 등에서 일을 하며 생활하기도 한다. 졸업 후 전공 쪽으로 취업을 하지 못해 풀타임으로 청소일을 해서 취업 비자를 받아 핀란드에 계속 머무는 석사 졸업생들도 있다. 핀란드에서 석사 과정을 졸업한 후 핀란드인과 결혼해 살고 있는 내 친구도 계속 취업이 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한 공장의 생산직에 지원했더니 그제야 면접 연락을 받았다며, 그곳에서라도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복잡한 심경을 말하기도 했다. 핀란드어를 잘 하지만 취업이 되지 않아 서머 잡이나 가이드로 생활하는 고학력자 외국인들도 많이 봤다. 그렇다면 핀란드어가 문제가 아니고 외국인이라는 것 자체가 채용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My first job interview as a master’s graduate was for a warehouse and I was... (foreigner.fi)

"I had only four interviews in six years after sending almost 2,000 job... (foreigner.fi)

나도 마찬가지였다. 졸업 후 여러 핀란드 회사에 지원했지만 면접까지 간 적이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다. 뭐랄까 정말 견고하게 쌓은 그들의 튼튼한 벽에 무모하게 부딪히며 들이대는 기분이랄까. 처음에 핀란드에 왔을 때는 핀란드에서 살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국민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면서, 외국인이라는 장벽을 감내하면서 이곳에 머문다면 과연 나는 행복할까?라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최근 Statistics Finland에 따르면 가장 많은 일자리가 있는 수도 헬싱키가 있는 우시마(Uusimaa) 지역의 외국인 실업률이 2020년보다 28% 증가했으며, 외국인 실업자 수는 전년보다 4,600여 명이 증가해 21,000명을 넘는다고 한다. 안 그래도 어려운 외국인들의 취업이 코로나로 인해 더 어려워진 것이다.

Long-term joblessness rising but slightly brighter situation for young people | Yle Uutiset | yle.fi




물론 독일 취업도 독일어를 해야 취업할 가능성이 높으니 장벽이 높긴 하다(아... 이럴 땐 정말 적어도 영어권 국가로 이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핀란드에 있었을 때 운 좋게도 독일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인해 계약을 종료하게 되었지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할 수 있었다. 독일로 넘어온 후에도 면접을 보자고 연락을 주는 독일 회사들이 있어서 적어도 맨땅에 헤딩하고 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생활에는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니, 적응을 하기 싫은 마음도 같이 있었다. 뭔가 독일은 매일 투쟁하는 느낌이었다. 불편하고 느린 시스템, 갑자기 맞닥뜨리는 괜히 불친절한 사람들과 소소하게 쌓여가는 불쾌한 경험들로 인해 기분이 언짢아질 때가 많았다.

한국에 있을 때 괴로웠던 것 중 하나가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들, 일에 개인적인 감정을 섞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핀란드에서 살 때 내 마음이 편했던 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 딱히 기분이 상할 일도 없었던 핀란드 사람들의 성향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웬만하면 감정을 섞지 않고 쓸데없는 말 없이 필요한 말만 하는 핀란드인들이 개인적으로는 나와 잘 맞았고 사람들을 대하기가 마음이 더 편했다. 그런데 독일에 오니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잘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끔씩 마주치는 공격적이고 감정적인 사람들의 모습에서 여유와 행복이 잘 보이지 않다. 만약 한국에서 독일로 이주했다면 더 여유롭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깨끗하고 자연 그대로인 풍경과 더 평화롭고 여유로운 사람들이 있었던 핀란드에서 독일로 이주해서인지 마치 후진국으로 이주한 듯한 느낌이 들어 우울했다.

그리고 독일의 겨울은 나를 참으로 우울하게 만들었다. 독일의 겨울을 경험한 사람들은 독일에서 왜 철학자가 많이 탄생했는지 알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핀란드도 어두운 날씨의 끝판왕 중 하나이지만 이상하게도 핀란드에 살 때는 날씨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아마도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서 어둠 속에서도 그렇게 어둡거나 우울하지 않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영하 20도 정도로 기온이 확 내려가는 날은 오히려 해가 쨍쨍한 날들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독일에서보다 햇빛을 더 많이 받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독일의 겨울 하늘은 대부분 구름으로 뒤덮여 있어 해를 보기 정말 힘들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별로 없어 눈 대신 비만 추적추적 내린다. 이주하기 전에도 독일에서 겨울 보낸 적이 있었는데 하루하루가 정말 우울해서 하늘을 덮은 구름을 다 찢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겨울에 왜 다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 남쪽으로 내려가서 휴가를 보내는지, 여름이면 왜 다 옷을 벗어던지고 햇빛 아래에 몇 시간이고 누워있는지 절절하게 와닿았다.

하얗게 뒤덮인 핀란드의 겨울(좌) 우울함의 끝판왕 독일의 겨울(우)

독일로 이주한 후 작년에는 이런저런 생각들로 인해 마음을 잡기가 참 힘들었다. 괜히 독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남편을 원망하기도 했고 같이 한국으로 돌아갈까 싶은 생각도 참 많이 들었다. 그래도 올해는 다행히 조금씩 점점 나아지고 있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그래도 여기에서는 미세먼지를 걱정할 필요 없는 깨끗한 공기 속에서 살고 있고, 다른 문화를 경험하면서 좌절도 하지만 또 배우는 것도 있고, 그리고 적어도 내 눈에는 이곳에서의 장, 노년층의 삶이 한국보다는 더 안정적이고 건강해 보인다. 그래서 손을 놓고 있었던 독일어도 즐기면서 공부하고 있고, 꼭 독일에서만 살게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 마음을 좀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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