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앤더시티의 캐리가 되고 싶었어
“야, 이거 봐봐. 이 티셔츠 이쁘지?”
“응..예쁘다. 근데..”
“근데?”
“레비스가 뭐야?”
‘레비스’라는 말에 사물함 옆 거울을 비춰보던 일진 친구가 일시정지했다. 그녀는 찬찬히 몸을 돌려 나를 응시했다. 동시에 그 옆에 서 있던 다른 깻잎머리 친구들도 동시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교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야……전교 일드으으응~~!!!!”
깻잎친구가 나를 부둥켜 안았다. 영문 모른 채 나는 엉거주춤 서서 친구를 마주 안았다. 다른 친구들은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마주 안은 깻잎 친구의 티셔츠에는 빨간색 글씨가 선명했다.
“LEVI’S”
2005년은 모든 게 가능한 시기였다. 그리고 파인애플은 뭘 몰랐다. 대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LEVI’S 를 ‘레비스’라고 읽던 고등학생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샤넬도 루이 비통도 처음 알게 되었다. 대학교 친구들은 가끔 나를 앉혀놓고 짧은 강의 한토막을 진행하고는 했다.
”봐봐, 샤넬은 램스킨이 제일 예뻐. 역시 금장이 클래식이지. 루이비통은 태닝시켜서 다녀야 해. 그리고 프라다는 사피아노가 갑이야…“
영어를 배우겠다며 열심히 보던 미드 ’섹스앤더시티‘는 나의 소유욕을 부추겼다. 주인공은 남자친구에게 가방을 들이밀며 ’샤넬에 대고 맹세해!‘ 라고 외쳤다. 왠지 모르게 시크하고 쿨해보였다. 뉴요커들은 맨해튼에 살면서 저렇게 지미추 구두를 모으고 버킨백에 목숨을 거는구나. 멋있다. 나도 저렇게 멋진 남친에게 샤넬백을 눈앞에 들이밀며 샤넬에 대고 맹세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명품을 들고 다니고 싶어. 옆구리에 탁 끼고 다니면서 선글라스 끼고 커피 들고 다닐래.“
드라마 섭렵 후 원하는 이미지상을 획득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큰 난관이 있었다.
명품은 너무 비쌌다.
”이태원에 가면 짝퉁 명품을 살 수 있대.“
”홍콩에서 수입해 오는데, 진짜랑 차이가 안나서 전문가도 못 알아본대.“
풍문으로 편법을 전해들었다. 이태원에 가기만 하면 200만원짜리 명품을 10만원 언저리에서 살 수 있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섹스앤더시티의 명품을 내 손에 쥘 수 있다. 10만원이면 한 달 도시락 싸고 다니며 잘 아끼면 마련할 수 있는 돈이었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어느 거리에 가서 어떻게 사야 하는지 모르는데. 대학교 친구들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언니, 나랑 한 번 가보자 그냥.”
멋부리는 걸 좋아하는 동생이 부추겼다. 마음이 동했다. 동생과 함께라면 시행착오도 부끄럽지 않으리라.
“일단 가볼까? 이태원 역 지하철로 가면 되겠지?”
“그래! 가보는거야.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우리는 호기롭게 옷을 챙겨입었다. 짝퉁 상인들에게 허투루 보여서는 안 된다며 잔뜩 차려입었다. 검은색 투명 스타킹에 하얀 털잠바를 차려입은 나는 가장 힐이 높은 구두를 신었다. 응암역에서 구입한 5천원짜리 구두였지만 오늘 나를 위해 활약해 줄 터였다.
“가자 가자 이태원 짝퉁상점으로!!”
이태원역에 내리자 몇 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부터 헷갈리기 시작했다. 일단 사람들이 많이 나가는 방향으로 걸어나갔다. 대로는 스산했다. 피자집 몇 개가 보였다. 간간히 빅사이즈 티셔츠 상점도 눈에 띄었다.
“가방같은 거 파는 상점은 안보이는데?”
“아무래도 몰래 몰래 팔지 않을까? 좀 더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올 거 같은데.”
코난급 추리에 뿌듯해진 우리는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최대한 음산한 골목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아가씨들, 가방 필요해요?”
그랬다. 호객꾼이었다. 그리고 이태원 짝퉁상점은 그들을 통해서만 입장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태원 짝퉁상점의 입장권인 셈이었다. 우리가 서로를 마주보며 쭈뼛거리자 입장권 아저씨는 더 가까이 다가왔다.
“샤넬이랑 루이비통 있어요. 뭐 에르메스도 있고.”
왠지 무서웠다. 좁은 골목에서 모르는 남자를 따라가야 한다니. 하지만 나는 섹스앤더시티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호구잡히지 않도록 거드름을 피우며 물었다. 촌뜨기인걸 들키면 끝장이야. 다 아는 것처럼 물어보자.
“뭐…거기 바게트백도 있어요?”
“엥…뭐요? 바게…뭔 백?”
“바게트백이요! 섹스앤더시티에서 나오는데? 펜디꺼.”
주인공이 한몸인 것처럼 들고다니는 반려백이자 드라마의 진주인공인 바게트백. 그 백 이름을 언급하자 호객꾼 아저씨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모르겠는데요, 일단 같이 가 봐요. 종류 많으니까.“
”싫어요, 그거 없으면 안갈래요.“
나는 홱 돌아서서 동생 손을 잡고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두어 명 또 다른 호객꾼들이 등장했다. 나는 앵무새마냥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아가씨 백 찾아요? 좋은 거 있는데.“
”바게트백 있어요?“
”바……뭐요?“
그들에게 바게트백은 너무 최신상이거나 마이너한 취향의 백이 분명했다. 그들은 주로 샤넬과 루이비통만을 취급하는 것 같았다. 몇 명과 같은 일이 반복되자 차츰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동생은 내 옆구리를 쿡 쿡 찔렀다.
”언니, 그냥 집에 가자…“
”……그럴까?“
호객꾼에게는 콧대를 잔뜩 세웠지만 내심 동생의 제안이 반가웠다. 못이기는 척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패잔병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이태원 대로로 다시 돌아왔다. 내 주머니 속 현금 만 원짜리 열 장이 속절없이 구겨졌다. 아무래도 현금이 필요하겠지 싶어 우리은행 ATM에서 막 뽑은 따끈한 지폐였다.
”그냥 가긴 아쉬우니 피자라도 먹고 갈래?“
”그럼…그럴까?“
이태원 대로에는 어두운 색으로 인테리어 된 근사한 피자집들이 많았다. 밖에서 한참 서성이던 우리는 그 중 가장 저렴하고 깨끗해 보이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왠지 모르게 우리는 들어갈 때부터 쭈뼛거리고 있었다. 종업원은 가장 안 쪽 자리를 우리에게 안내 한 후 메뉴판을 가져다 주었다. 다 영어였다.
”마..르게리타? 이게 토마토 피자인가봐.“
”콤비네이션이랑 불고기 피자 같은 건 안 파는 거 같아.“
우리는 콜라 한 잔 씩과 마르게리타 피자를 주문했다. 난생 처음 보는 비주얼이었다. 도우가 얇고 고소했다. 위에는 토마토 소스와 치즈가 올려져 있었고 뭔지 알 수 없는 이파리들도 여러 개 올라가 있었다. 그게 루꼴라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재료는 심플한데 입에 넣자 깜짝 놀랐다. 피자가 신선하다는 게 바로 이런 뜻이구나.
”그 아저씨 안 따라가길 잘한거 같아.“
”어, 그러니까. 근데 이 피자 진짜 맛있다. 처음 먹어보는데.“
”난 들어봤어. 고르곤졸라 피자 유명한 집이 있는데 거기 메뉴판에서 본 거 같아.“
자매는 시시콜콜 맛평가를 하며 수다를 떨었다. 2년 더 살았다고, 대학 물 먹어봤다고 나는 동생에게 잘난척 하며 피자에 대해 아는 척하기 시작했다. 고르곤졸라 피자를 처음으로 먹어 본 지 겨우 2달 밖에 안 되었으면서. 동생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킬킬거렸다.
바게트백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내 주머니의 열 장 지폐 중 두 장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그 날은 꽤나 행복한 날이었다.
마르게리타를 처음으로 알게 된 날이었으니까.
오늘의 기부 : 용산희망나눔센터
김순자 할머님과 50분의 어르신께 뜨끈한 떡국을 나누는 설을 위해 기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