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어샘은 왜 그 빌라에 살고 있었을까
“이번 학원 알바는 좀 멀어. 노원구야.”
“노원구? 한 시간정도 걸리려나?”
“응, 일주일에 세 번 아이들 가르치는데 50만원이나 준대. 엄청나지…”
“너무 몸 안 상하게 조심조심 다녀.”
노원구의 한 학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신촌의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신입생이라 했더니 바로 채용되었다. 약간 찜찜했다. 찾아가봤는데 이름만 학원이고 사실 가정집이었다. 빌라 가정집을 개조해 방마다 칠판과 책상을 놓고, 10명 정도의 아이들을 데리고 가르치는 공부방이었다.
원장은 혼자 사는 노처녀였다. 그녀는 주로 본인 방에서 이불을 펴 놓고 누워있거나 거실에 나와 아이들과 농담 따먹기를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건 나를 포함한 대학생 알바생들이었다.
“샘은 연애 해요?”
“그럼, 하지. 얼마나 뻑적지근하게 한다구.”
“으악, 진짜요~~~”
공부방 아이들은 순수했고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니 나도 꽤 말주변이 늘었다. 가끔 다같이 컵라면을 먹거나 아이들이 하는 원장 뒷담화를 듣기도 했다. 아이들은 각자의 여러 사정에 의해 오랜시간 봐주고 옆에서 밀착해 케어해주는 공부방에 오고 있었다. 나는 수학도 가르치고 영어도 가르쳤다. 가끔 원장이 시켜서 중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나도 몰랐지만 아이들은 더 몰랐기에 얼렁뚱땅 수업은 진행되었다.
“파인애플쌤, 요즘 수업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애들이 컴플레인을 해…”
가끔씩 원장은 나를 본인 방에 불러서 앉혀놓고 혼내고는 했다. 내가 설렁설렁 수업을 하거나 일정 때문에 좀 일찍 끝내버리면 어김없었다. 아이들은 문 틈 사이를 흘긋거리며 내가 혼나는 걸 몰래 구경하고는 했다. 나 뿐 아니라 선생님들은 돌아가며 원장 방에 불려가 기강이 잡히고는 했다. 몇 번 혼나고 나서는 나는 아이들의 원장 뒷담화를 말리지 않는 열혈 청취자가 되었다.
”쌤 예전에 여기 있었던 과학 샘이랑 영어 샘이 여기서 사귀고 같이 그만뒀잖아요…“
별 시덥잖은 가십들. 아이들은 까르르 거리며 서로를 욕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했다. 아주 작은 규모라 해도 그 역시 하나의 사회였고 위계와 관계도가 있었다. 우리 모두는 히스토리가 있었고 그 작은 관계에 푹 빠져 왜 그가 나를 싫어하고 왜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지 탐구했다.
”파인애플쌤, 다음주 중간고사라면서요?“
”아 영어쌤, 맞아요. 큰일났어요. 이번에는 학점 잘 나와야 하는데…”
“저도 그 때 학교 시험기간이거든요.”
“오 그래요?”
“그 날 애들 다 보내고 나서 학원에서 밤새 공부하고 시험 보러 갈건데, 파인애플 쌤도 그렇게 하셔도 되요.”
“아…그럴까요?”
다음날 ‘영화의 이해’ 수업과 ‘중국의 문화와 사회’수업 시험이 있었다. 둘 다 딸딸 외워야 하는 시험이었다. 그래, 밤새서 딸딸 외우면 될 것 같기도 해.
“그럴게요, 같이 밤새고 각자 시험 보러 가요.”
영어샘은 다부진 표정의 K대 여학생이었다. 이 학원의 일종의 ‘부사감’같은 포지션이었는데, 원장 오른팔처럼 각종 모든 실무를 챙기고 아이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챙기곤 했다. 그녀는 무척 무뚝뚝했지만 성실했다. 이 곳이 그녀의 집이 아닐까 혼자 추측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출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그녀는 항상 그 곳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훨씬 월급을 더 많이 받겠지?
“영어쌤, 커피 드시고 하세요.”
“아, 감사합니다.”
“늘 이렇게 시험기간에 학원에서 밤새고 바로 가세요?”
“네, 그렇죠 뭐.“
아이들이 앉아 영단어 쪽지시험을 보던 그 책상에 내가 앉아 교과서를 파려니 지루하고 짜증이 났다. 대학 합격 이후부터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력을 많이 상실했다. 학점을 잘 받아야 한다는 건 너무 막연한 목표였다. 딸딸 외워 객관식 주관식 시험을 보는 것도 즐겁지 않았다. 그래도 시험을 망쳐서 F를 받을 수는 없으니까.
”하아아아아암……”
새벽 4시가 넘어가자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그 꼬장꼬장하던 영어샘의 눈동자도 슬그머니 풀리기 시작했다. 오래된 MP3를 귀에 꽂고 뭔가를 열심히 듣는 것 같았는데, 아까부터 이어폰 한 쪽이 귀에서 떨어져 달랑이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는 게 확실했다. 원장 방에서는 요란한 코고는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쌤, 피곤하시죠?”
“어, 아니에요…”
“요 앞에 24시 감자탕집이 있던데 혹시 한그릇 어떠세요?”
“어…뭐 먹으면 더 졸릴 거 같은데…”
“그래도 뭘 먹어야 더 기운이 나죠. 영어쌤, 가요.”
영어쌤은 뭔가 망설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왜 망설이는지 알 것 같았다.
“오늘은 제가 살게요, 아까 쌤이 저 수업하는 거 도와주셨잖아요.”
“아…그럼 그럴까요.”
나는 그녀의 눈빛을 읽어낼 만큼 조금 성장해 있었다.
우리는 감자탕 집에 앉아 아빠다리를 하고 앉았다. 7,000원짜리 뼈다귀해장국은 튼실했다. 주문한지 30초만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뼈다귀가 눈 앞에 놓였다. 돼지고기 살을 발라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었다. 내가 호들갑을 피며 이 집 맛집이라고 좋아하자 영어쌤도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깐깐했던 평소보다 지금이 훨씬 예뻐 보였다.
“파인애플 쌤 감자탕 좋아해요?”
“저는 너무 좋아하는데, 부모님이 안 좋아하셔서 거의 못 먹었어요. 근데 이제 저도 돈을 버니 이렇게 사먹죠. 전 처음에 감자탕이랑 뼈다귀 해장국 구분을 못했었어요. 이게 대자 중자로 나오냐, 일인분으로 나오냐, 그 차이 맞죠?”
“아마 그럴거에요.”
영어샘은 뼈를 야무지게 발라낸 후 밥을 말아 먹기 시작했다. 내 뼈는 너덜너덜거리는데 영어샘 뼈는 깨끗 그
자체였다.
“파인애플 샘은 왜 이 학원에서 일하기 시작하셨어요?”
“뭐 그냥 구인공고 올라온 거 보고 왔어요. 오십만원이면 많아서요. 일주일에 삼일이라 생각보다 일하는 시간이 많기는 하지만…하하. 영어샘은요?”
“음…저는…”
“어…혹시 곤란하시면 말씀 안해주셔도 되요.”
“아…그런건 아니고요.”
영어쌤이 크게 한 숟갈을 뜬 뒤 발간 깍두기를 그 위에 올렸다. 호기심으로 충만한 표정의 파인애플을 보며 그녀는 가볍게 웃었다.
“여기가… 제 집이에요.”
“어……”
영어쌤은 깍두기와 해장국을 입에 넣고 오래오래 씹기 시작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더 궁금해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눈치 없는 내가 ‘더 물어보지 마’ 표정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어떤 이야기는 더 파고들어 물어봐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눈치를 배워나가고 있었다.
두 여대생이 후루룩 거리는 해장국 집 간판의 불은 꺼질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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