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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타 Apr 11. 2020

외롭고 높고 소소한

텃밭놀이

   주택에 오기 전에 나는 "삼시세끼"나 "효리네 민박"을 참 좋아했다. 내내 그런 삶을 동경했다. 주택에 온 뒤로는 시즌이 거듭되어도 보지 않았다.   tv 처럼 이상적이고 멋진 그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동경하던 것들이 충족 되어서다.


   뭐든 기르기만 하면 그것들은 내 속에서 죽어나갔다. 나는 망손이었다. 그런 내가 텃밭을 해보겠다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한 평 남짓 공간에 비료를 넣고 흙을 뒤집는 데도 허리가 나갈 것 같다.

  ...일단 웃고 본다. 나도 내가 고작 이 한 평에 이런 표현을 쓸 줄 몰랐다. 허리를... 보내버리다니...  농부님들 존경합니다.

  둔덕을 쌓고 검정비닐로 씌웠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면  희떡 벗겨진다. 바람이 잦아들면  보수작업을 한다. 분뇨 냄새가 폴폴 올라온다.


  상추 씨앗을 심을 자리를 깊이 팠더니 아들이 얕게 하는 거라고 알려준다. 벌써 뿌렸다. 며칠이 지나도  들이 올라오질 않는다. 아들 말을 듣고 뿌린 다른 줄은 싹이 텄다. 깊게 뿌린 두 고랑에 다시 씨를 뿌린다. 이번에 얇게 파고 흙을 솔솔 뿌린다.

 

    텃밭 옆 꽃밭엔 꽃을 심었다. 작년에 심은 꽃잔디가 번져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이것도 정성이라고 아침 저녁으로 휘 둘러본다. 날이 따뜻해지고 있다. 토마토와 가지, 고추를 심을 생각에 흐뭇하다.


    사람의 마음이 참 얄궂다. "삼시세끼"와 "효리네 민박"(이젠 하지 않기도 하지만)을 끊었는데, 어느 날 보니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 거다. 중증인가. 우리 집 울타리 저편이 농장이어서 꽤 시골스러운 풍인데도 산 아래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거다.

  -이리저리 삽질을 하거나 잡초를 뽑고 있으면 울타리 저편에서 트랙터가 쑤욱 지나간다.  나는 선망의 눈길을 보낸다. 차원이 달라...그러면서.-

  단조로운 나날 속에서 뭔가 허전할 때 산에 다녀오면 뭔지 모를 그 무엇이 채워지곤 했다.

 시간마다, 햇빛과 바람의 정도마다, 계절마다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숲. 더 곁에 두고 그 안에 있고  싶은 마음...무, 물론 자연인처럼 살 자신은 없다.


  땅은 지금 땅 아래서만 바쁠 뿐 밖은 고요하다. 여름으로 치달을수록 관리가 버거울 정도로 풀들이 무성하게 자란다. 고요했던 봄을 잊게 만든다. 억센 녀석은 낫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도  텃밭을 돌보는 일은 청소 설거지와 다르게 힘을 들이고도 힘들지 않다. 해를 받고 살이 타면서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게 할 일이 많아도 텃밭을 하는 또 하나의 매력인가 보다. 망손이지만 나는 거들 뿐 저 씨를 자라게 하는 건 내가 아니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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