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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타 Apr 27. 2020

지극히 개인적인 책읽기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내내 추운데 봄이 되어도 춥다.  불을 때서 루카스는 괜찮아졌다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그가 추울 것 같다. 잿빛밖에 떠오르지 않는 2차대전 전후의 헝가리가 또한 그렇다. 공간이 그렇고 시간이 그러한데 루카스가 춥지 않을 리 없잖아.  그의 지독한 외로움을 읽는 내내 가볍고 견디기 좋은 우울감을 느낀 내가 좀 미안해지려고 한다.

 

    헤어지고 죽는 일이 일상 중 하나인 사람에게 추위같은 건  아무 것도 아닐 지 모르겠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정도 외엔 무엇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보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덤덤하게 묵묵히 할 뿐이다. 아이일 때는 사악할 정도로 영특하게, 어른이 되어서는 차분하고 친절하게 자신과 관계된 모든 사람을 그처럼 대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싶게.   

     

      내가 읽은 까치 출사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책 표지, 에곤 쉴레, '자기 예언자'


  나는 자주 루카스, 루카스, 하고 중얼거렸. 조용하고 덤덤해도 클라라 앞에서는 저돌적이고, 사랑을 배우지 못했다고 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마티아스를 사랑하고 돌본 그였다. 당연하다는 듯 그가 사랑한 사람들은 모두 떠난다.  쌍둥이 형제 클라우스와 헤어지던 순간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분리'를 택했던 날부터 모든 이별은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자기의 분리, 자기가 사랑하는 존재와의 분리이므로.

   

   루카스와 클라우스가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작가는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1부의 속도감이 2부에서 원래속도를 찾다가 3부에선 잠깐씩 멈추기도 했던 건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관계와 그 속에서 돌고 도는 거짓말 혹은 진실들 때문이었다. 같은 장소와 같은 사람들이 비슷한 삶의 무게를 가지고 반복해서 등장한다. 자칫하다 광장에서 길을 잃을 것 같다.

  

  1, 2부에선 루카스가 고국에 남고 클라우스가 국경을 건너갔지만 3부에선 클라우스의 이름을 쓰는 루카스가 국경을 넘고 클라우스가 남았다. 클라우스가 이복동생 사라를 돌보고 사랑하는 방식도, 미쳐버린 어머니를 묵묵히 돌보는 과정도 모두 루카스를 닮았다.

  전시에 버려지고 여기저기로 옮겨 다녀야 했지만 그 혹은 그들은 수동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노력해서 학교에, 집단 시설에 가지 않았고, 살기 위해 혹독한 연습을 했으며 보편적 도덕성과 상관 없이 상대가 원하는 것을 자신이 해 줄 수 있다면 기꺼이 해 주었다.  사라와 헤어지고 병든 어머니를 택한 것도 그(여기선 클라우스)의 의지였다. 그 선택에 대한 대가가 혹독해도 그는 받아들였다. 그랬지만 말미에서 그는 자신의 삶이 결코 즐겁지 않았다는 것을 괴로웠다는 것을 고백한다. 죽음까지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심정이 이해가 된다.  그게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그들을 살게 했던 건 무엇일까. 여기를 선택하고 저기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루카스와 클라우스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는 사람은 살아갈 수 있는 걸까. 루카스와 클라우스가 한 사람일 때 자기 안의 다른 자기를 자꾸 소환하려고 하는 마음도 이해가 되는 것이다. 국경을 건너간 삶, 엄마에게 사랑받는 삶, 아프지 않는 삶...


  작가 크리스토프가 그랬던 것처럼 루카스와 클라우스는 글을 쓰는 방식으로  시간들을 보냈다. 견뎠다는 의미보단 살아갔다는 게 더 어울린다.  함께 쓰는 일기, 루카스 소설, 클라우스의 시가 모두 그렇다. 그것들은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거짓이면서, 동시 잔혹한 현실이면서 그들 자체였다.  

  그만큼 잔혹하지는 않더라도 무언가, 뭐라도 끼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루카스(클라우스)에게 강한 유대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루카스, 라고 부르며 견디기에 괜찮은 우울을 느끼며 헝가리 어느 역의 기차를 떠올려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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