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타 Jan 17. 2023

응답과 기쁨

아이가 온다

1.

 현관문을 열고 나가 고개만 들면 뚫린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

 추운 밤에도 서늘한 밤에도 따뜻한 밤에도 띄엄띄엄 별들은 있다.

 그들은 빛을 낸다.

 수만 혹은 수백 광년 떨어진 그들이. 지금은 죽었을 지도 모르고 어떻게 되었는 지도 모르지만.

 그 아득한 거리를 가늠할 수가 없는데, 가늠할 수 없는 저것들이 버젓이 저기, 눈 앞에 있다.

 세상에. 가늠할 수 없는 과거가 내 눈 앞에 현재로 있다니.

 나, 매일의 기적 속에서, 매일의 신비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구나.

 

2.

당연한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녀가 일부지만 삶의 신비 속에서 살고 있다고 느꼈던 날,

그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그녀를 지나쳐 갔다.

밤을 훑는 바람처럼.

그녀는 그렇게 느꼈다.

그러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여자가, 노인이, 모두.

그녀는 이들을 불러보기로 마음먹었다.  

과거 즐겨 들었던 노래를 다시 틀면 그 시절의 모든 것들이 함께 딸려 오는 것처럼

과거는 언제든 현재에 올 수 있고 또 미래에 갈 수 있다. 그녀는 그것을 알지만, 그렇기 때문에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이, 또 현재가, 다가올 미래가 한꺼번에 그리워진 것이고,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서

조금 난감해졌다.


그녀가 먼저 떠올랐던 건 명함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자의 네모난 명함통과 그 안에 가득 찬 하얀 바탕의 명함.

그녀는 아니 아이는, 네다섯 살쯤 되었고, 글을 몰랐으므로 명함 또한 읽을 수 없었지만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그것을 줍는 순간부터

집집마다 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얀 색에 검은 색 글씨 그리고 그 아래 작은 글씨들이 무얼 뜻하는 지도,

심지어 명함이란 게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아이는 자신의 욕망을 따르기로 했다.

아이는 마을을 돌며 대문 아래, 혹은 대문 틈에 그것을 놓거나 끼워 넣었다.

그것을 돌리는 데만 꽤 많은 시간이 흘렀.

그것을 본 어른이 "뭐 하는 짓이냐." "하지 마라." 나무며 지나가기도 했다.

그 때부터 아이는 저의 행동이 떳떳하지 않 일이라고 직감했고, 어른이 지나가거나 눈에 띄면 잠시 멈춰 섰다.

어른이 지나갈 때까지 딴청을 부렸다.

그리하여 명함 한 통을 한 장도 남기지 않고 모두 돌렸을 때,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아이는 느꼈다. 뿌듯함이란 이런 것이구나.


아이는 왜 명함을 돌리고 싶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그녀의 답은 모르겠다 였다.

그저 놀이를 발견한 것인지도.

돌려야 할 것 같은 걸 돌리는 놀이.

누군가 명함을 건네는 걸 보았거나 모름지기 명함이란 뿌려야 하는 것이다라고 본능적으로 여겼는 지도.

그나저나 명함에 애써 새긴, 누군지도 모르는 그 이름은 왜 한꺼번에 버려졌을까. 니면 그건 누군가 흘린 이름이었을까.

아이는 그 이름을 굳이 되살려 마을 곳곳에 뿌렸다.  돌이켜보면 명함 주인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이후 그 일이 씨앗이 되어

무슨 일인가 생겼다더라 라는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이의 놀이는 무사히 지나갔다.


3.

사실 그녀에게 그 시절은 그리운 날들이 아니었다. 그저 떠올랐다고 해야 할까.

사오 세. 그리고 이후의 아이의 들은 그랬다.

별 것 아닐지 몰라도 어마어마한 날것의 사건들을  매일 마주했던 시절이라고.

사진을 보아도 아이의 얼굴은 기억에 없지만 고군분투했던 마음들 만큼은 렴풋이 남아 있다고.

그 중엔 놀이도 있었고 놀이가 아닌 일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이 곁엔 아이의 여동생이 있었다.

아이와 아이의 여동생에겐 엄마가 있었지만 그 시절에 대한 그녀의 기억엔

엄마가 없다. 눈을 뜨고 맞이하는 하루를 아이가 날것으로 여기게 된 데는 그런 이유가 있는지도 모른다.

자주 집을 비우는 엄마.


그 덕에 아이는 말광량이 삐삐처럼 온갖 놀이를 하며 자랐다.

그 속엔 무서움과 짜릿함이 있었다. 그 또한 아이의 권리라면 아이는 그 권리를 충분히 누렸다.

모험이 가득했지만 마냥 신나지만은 않은 기억의 얼개들.

그립지도 않은 그 시절굳이 떠올랐던 건 그 시절의 아이들 때문 것이었다.

손발과 볼이 튼 아이와 아무 것도 모르고 아이를 쫄래래 따라다니 아이의 여동생

어른거렸으므로.

그녀를 스 간 시간에 그 아이들이 있으므로.


4.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그 아이들이 있다.

손발이 트던 말던 뭐가 그리 재밌는지 땅바닥에 주저 앉아 무언가를 하는 아이들.

그녀는  이들을 본다. 그리고 아이들을 부른다.

소리는 아이들에게 가 닿지 않지만

저희를 지켜보는 시선을  어렴풋이 느낀 듯

아이들이 개를 든다.



















 






 



 





작가의 이전글 외롭고 높고 소소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