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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타 Mar 15. 2023

응답과 기쁨

그 도덕성이란 것인데

1.

 무 것도 몰라서 아이는 그저 존재했다. 자고 먹고 놀았으며 지금 이순간만 있었다.

 커간다는 것이 '지금 이순간'이 줄고 자꾸 다른 곳에서 헤매게 되는 것인 줄,

 그저 있지 않고 '내'가 연거푸 출연하여  '나'와 '내'가 충돌하고 갈등하게 되는 과정인 줄 그녀는 미처 몰랐다.

 그렇게 어른이 되다니, 어른이 되는 일이 그처럼 슬픈 일인가.  

 그렇게 중첩되어 온 과거들이? 그렇게 도달한 현재가?


 그녀는 희미한 기억들을 더듬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조차 그 순간엔 무언가가 있었다.

 그저 존재하고 이 순간만을 사는 아이가 여전히 약동하므로.

 그 아이가 지금 그녀에게 나타나게 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거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단순하게 표현하여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작업이랄까.

 바다에서 주운 모래알과 같이 삶의 징수 하나를 알게 되는 과정이랄까.

 그녀가 아이에게 가고, 아이를 현재로 불러들이는 일이.

 

2.

 이들이 몰려 노는 곳 어디쯤

 공용 화장실이 있었고, 재래식 변기엔 누런 물이 고여 있었다.

 물을 내리고도 미처 씻겨내려가지 않은 똥오줌이 남아 있까.

 사내아이 곁엔 또래 아이 여럿 있었고,

 저만치 떨어진 곳에 사내아이보다 어린 사내아이가 있었다.

 사내아이는 어린 사내에게 다가가 제 엄지만한 새우깡을 내밀었고 어린 사내는 그것을 받아 먹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

 그리고 여자아이는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사내아이가 변기물에 새우깡을 찍어 저보다 어린 사내아이에게 주던 을.

 사내아이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어린 사내를 보며 낄낄댔고

 뭔가 큰 힘을 가졌던 그 사내아이는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저었다.

 여자아이는 본능적으로 말하지 말라는 뜻이란 걸 알았다.

 사내아이들의 놀이는 명함을 돌리던 놀이처럼 어딘가 모르게 떳떳하지 은 듯했지만

 새우깡을 맛있게 먹는 어린 사내를 보며 여자아이는 입을 닫았다.


  사실 여자아이는 아랫집에 사는 그 어린 사내를 알았다.

  여자아이는 가끔  어린 사내아이의 방에 가곤 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집도 낮엔 어른이 없었으므로.

  낮잠을 자고 있던 어린 사내는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비몽사몽 깨어

  제 곁을 돌며 나폴나폴 춤을 추는 여자아이를 신비로운 듯 바라보았다.

  여자아이는 어린 사내에게 말했다.

  "나는 천사란다,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

  

  천사는 어린 사내가 똥오줌이 묻은 새우깡을 먹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천사에겐 행위의 경중도 놀이의 구분도 모호하기만 했다.

  모든 놀이 정도의 위험이 들어 있었기에 더 구분하기 어려웠다.

  이를 테면

  여자아이를 따라 나섰던 여자아이의 동생이 제 언니를 따라 국기 게양대를 르다 미끄러져

  허벅지가 찢어지는 사고가 났 때처럼. 여자아이는 자지러지는 동생과 흐르는 피를 보며 울었다.

  겁이 났고 후에 그만큼 엄마에게 혼이 났지만  책임이 왜 저에게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놀이여서 놀았을 뿐인데.

 

  여자아이 동생의 허벅지엔 지금도 육센티미터의 꿰맨 자국이 흉터로 남아 있다.

  그런 사고를 겪고도 여자아이 동생은 제 언니를 따라 다녔고, 언니가 떼어 놓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을 느꼈다, 고

  후에 말했다.

  제 언니가 돌아다니는 세 피가 난무할 만큼 짜릿했으니 이해도 된다.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두 팔을 뻗으며 길을 막고 서서 "못 가"라고 말하는 곳었다.

  고 있던 요구르트나 우유를 건네야만 통과가 가능 만큼 무서운 .

  그랬지만 여자아이는 제 동생과 같은 이유로 집에 있을 수 없었다. 나가야 했다.

  "그건 나쁜 행동이야"라고 말하는 어른이 없서 무엇이든 어렴풋이 알아가던 세상 속으로.

 

3. 

  그걸 배운 건 유치원에 가면서부터였다.

  무서운 선생님과 규칙 속에서 아이는 기가 질렸다.

  말광량이 삐삐가 사라지고 말 없는 아이만 남았다.

  그러다 집에 오면 삐삐가 아왔다.


  아이는 기억한다. 유치원 선생님이 허리를 굽혀 어떤 아이를 혼내던 장면을.

  선생님은 하얀 바지를 입었고 아이는 하필 그 선생님 뒤에 있었다.

  아이는 기억한다. 선생님의 엉덩이가, 엉덩이의 골이 또렷이 패여 있던 장면을.

  하얀 바지, 엉덩이의 골.

  아이는 저도 모르게 검지를 들었다. 그러고는 엉덩이 골에 손을 대고 위에서 부터 아래로

  천천히 긋기 시작했다. 또렷한 선으로부터 닿을 듯 말듯 조금스레.

  왜 그랬는지 저도 모르게, 그렇지만 그건 그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라는 이유로.


  모두가 기가 죽은 그 분위기 속에서 선생님의 훈계는 계속되었고,

  아이의 선긋기도 계속되었지만

  피아노선생님이 아이를 보고야 만다.

  이 일까지 겉으로 드러나선 안된다는 피아노선생님의 깊은 뜻이었는지는 몰라도

  아이는 눈짓과 손짓으로 안된다는 말을 하던 피아노선생님을 보고

  행동을 그만두었다. 피아노선생님은 다정한 분이었는데 엄한 표정을 지어서

  뭔가 큰 잘못을 했나 싶은 생각이 아이의 머리를 스쳤다.


  그랬어도

  율동을 외우지 못한다고, 알려준 걸 모른다고 그렇게 혼낼 일은 아니지 않은가,

  라고 아이는 유치원선생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자체를 할 수 있을 만큼 크지 않았으므로.

  물론 엉덩이 골 긋기와 그건 별개다. 그건 아무 상관이 없고 그랬기에 아이는 피아노선생님에게 혼이 나는 게 옳다.

  아이에겐 뜻 모를, 저 자신도 모르게 몸이 가는 그런 행동들이 많다.

  그런 아이를 찬찬히 지켜보고 그 내면을 볼 수 있다면.

  다정하게 설명해주는 어른이 있다면 참 좋았겠다,고

  물론 아이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자체를 할 수 있을 만큼 크지 않았으므로.


4.

  그래서일까.

  아이가, 새삼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나 좀 한 번 봐봐, 라고 말하는 건지도.

  그녀는 조금 두렵다. 그런 아이를 보는 일이. 보다 보면 아프기도 할 텐데 싶어서. 

  이게 뭐라고.  

  이게 뭐라고 그녀는 용기를 내 보기로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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