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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타 Mar 27. 2019

세 아이와 네 멋대로 해라

# 막둥이의 생존투쟁

   처음이다. 아마도. 길바닥에 드러누워 울지를 않나, 밥그릇을 쳐서 식탁 밖으로 날려 버리질 않나, 이 닦자 기저귀 갈자 하면 도망 가고, 잠들었나 싶었는데 휙 돌아서 없는 걸 달라 하고, 잠바 위에 잠바를 입겠다 하고...아기가 다 그렇지 싶다가도 좀, 막.강.하.다.

  

  그렇게 보채다가 딸기라도 내 놓으면 바로 웃는다. 아기니까 가능다. 24개월이 지나고 말이 늘었다. 내게도 한 개 건네며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엄마도 맛있어?" 하고 묻는다. 몸을 흔들며 춤도 추고 눈을 마주치며 웃다가 뭔가가 틀어지면 바로 떼님이 오신다. '생'자를 앞에 달고.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잘 웃고 잘 울고 잘 떼부리며, 아기의 본분을 무척 열심히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거다.  태어나보니 위로 둘. 왜만하면 이들과 모든 걸 함께 하니 저도 모르게 전투력이 상승하겠지. 그래서일까. 별명이 아기장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두 살짜리를 제압해 본 적이 있는가. 온몸을 던져야 한다. 약이 올라 나쁜 엄마가 되어버린다.

   아니다. 사실 더 한 이유가 있다. 내가 진짜 나쁜 엄마였다는 거. 아들 딸이 이미 있기에 힘이 부칠 때마다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을 했다. 한숨이든 폭발이든 그게 어떤 형태로든 밖으로 나갔을 거다. 그럴수록 내게 더 안겨서 우는 이 아기가 그걸 모르진 않았겠지.

  

  그러니까 내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엄마의 크기가 작아서 아기에게 미안했던 날들이. '다시' 아기에게 모든 시간을 내어주며, 나는 새로 시작할 '다시'가 두려웠다.  '다시'를 내어주지 않았다 해도, 뭔가 대단한 내가 되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무지 예쁘거나 무지 떼쓰거나 중간이 없는 이 막강한 아기가 내게 오고 나는 살아가는 일의 다른 부분들을 배운다. '다시' 여도 다르다. 하여간 사는 건 배우고 또 배우는 일이다.


   아기의 떼는 여전히 고난이도의 인내와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지만 더는 '미안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 시절의 미안한 생각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두고 두고 사과해야겠다 생각한다. 아기와 시간을 보내며 정이 들어서지만, 계기를 떠올리자면 하나가 있다.

  바로  마저 내려 오지 않은 막둥이의 봉알 한 짝. 고것이 그러려고 내려오지도 않고 속을 썩였나보다. 잠복고환  수술로 이박 삼일 병원에 있으면서 막둥이와 나는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보냈고, 수술로 아픈 것보다 엄마와 둘만 있는 게 더 좋았던 막둥이는 순한 양이 되어 퇴원을 아쉬워했다. 보이지 않던 매듭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기의 타고난 이쁜 모습이 '진짜로'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도 막둥이는 누나의 장난감을 손에 들었다. 누나는 양보를 하는 대신 "똥뙈지."하고 화를 내며 돌아섰는데, 이 말을 들은 막둥이가 뭐? 하는 뉘앙스로 안마봉을 들더니 "똥때지~~!!"를 외치며 누나에게 달려 나갔다.

  무.서.웠.다.

  막둥이에게 똥뙈지는 심한 욕이었을까. 막둥이는 결국 엄마에게 혼이 나고 엄마 품에서 서럽게 울었다.

  기분이 풀린 것 같아 "막둥이는 누구 닮아서 이렇게 예뻐?"하고 물었더니 바로 "시러." 한다.

  "그런 말 하지마?"

  "응."

  "알았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알고 있지만 어렵다. 어려워도 예쁘다.

  이렇게 막둥이는 엄마 눈에 갈수록 예뻐지며 미안했던 날들에 대한 복수를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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