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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타 Mar 27. 2019

세 아이와 네 멋대로 해라

# 순간을 살아

  둘째는 딸이다. 사내 사이에 끼어 있는 유일한 딸이다. 게다가 올해 여섯 살이 되었다. 이게 뭐냐 하면 둘째에게 만큼은 객관성을 완전히 상실한 엄마가 되었단 소리다.

  

  다섯 살 땐 다섯 살 짓을 하더니 여섯 살이 되고 여섯 살 짓을 한다. 치명적이다. 그런데 그 이쁜 짓들을 돌아서면 깜박 하는 뇌를 장착한 탓에 모두 날려버렸다. 아, 모두가 웃었던 그 말들, 그 행동들. 엄마가 그걸 참 많이도 까먹고 말았구나. 반성하며 기록하기로 한다. '힘들어도 그 때가 예뻤다'는 어른들의 상투적인 말은 백프로 진심일 거다. 그게 와 닿았다, 닿지 않았다 하는 시간들을 나는 지금도 지나고 있다.

  오늘은 둘째의 하원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갔다. 아이와의 약속은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어제는 데리러 와 달라는 둘째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집 앞까지 차가 데려다 줘도 둘째는 엄마가 오는 게 좋아서 자주 데리러 오라고 한다. 엄마가 안 와서 속상했지? 라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둘째가 가만히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엄마가 올 줄 알고 계속 기다려. 그런데 엄마가 늦게까지 안 오면 안 오는 구나 하고 생각해. 그러면, 조금 슬퍼."

  "아이고 엄마가 내일은 꼭 데리러 갈게."

  이렇게 되는 거다. 아이고 소리를 절로 내며. 객관성을 상실한 엄마는 둘째를 '나의 디오니소스'라 명명해버렸다. 한 없이 신나고 한 없이 슬프고 끊임 없이 노래하다가도 사내들 사이에서 유격하듯 구르는 이 작은 아이가 나는 부럽다.

  

  작년 가을에 남편은 차가 전복되는 수준의 사고를 겪었다. 차는 폐차를 해야 할 정도였는데 고맙게도 남편은 다치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전복된 차 사진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어느새 다가 온 둘째가 사진을 보더니 말했다.

  "치, 아빠만 재밌. 나도 재밌게 타고 싶은데, 너무해."

  아냐, 넌 절대 타면 안돼. 남편과 나는 거의 동시에 아이를 말렸다.

  어쨌거나 남편은 차를 바꿨고, 둘째와의 대화 끝에 엄마도 언젠간 좋은 차로 바꿔 줄거야, 라는 말을 했다. 둘째는 싱긋 웃더니 "아빠 참 기특하구나." 하고 제 아빠를 칭찬했다.

  그러고 보니 칭찬도 잘 하는 딸이다. 카레나 짜장밥에 달걀프라이를 올려주면 엄지를 치켜들며 딸이 말한다.      "엄마 통 크다."
  하마터면 우쭐할 뻔했다.

  

  둘째는 이렇게 '기특한' 아빠와 '통 큰' 엄마 사이에서 철부지 같다가도 감동을 다. 새벽에 자주 깨서 보채는 막내를 달래던 날, 어둠 속이었지만 예민해 가던 신경과 굳어 가던 내 얼굴을 둘째도 알았던 거다. 둘째가 눈감은 채 살포시 웃으며, "엄마, 아기 귀엽지. 음, 해원이 귀엽다." 그러고는 다시 자는 거다. 그 순간의 마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거짓말처럼, 보채는 아기를 평온한 마음으로 달랠 수 있게 된 그 힘을.         


  매일의 난장판 안에 보석 같은 순간이 여기 저기 박혀 있다. 아니 매 순간이 그럴 지도 모르는데 참 많은 순간을 모르고 지나 보낸다. 이 엄마라는 깜박이가. 순간을 사는 일이 이토록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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