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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타 Apr 06. 2019

세 아이와 네 멋대로 해라

# 아이라는 나라의 오해

  미세먼지와 함께 불쑥 봄이 왔고, 첫째는 기다란 핀셋으로 꿀벌 일곱 마리를 잡아 작은 지퍼백에 넣어 왔다. 나는 안방에서 쉬고 있었다. 신이 나서 보여주는데 이젠 놀랍지도 않아서, 집 안에만 들이지 말아라 건성으로 말했다. 밖에서 둘째와 셋째가 첫째를 따라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시끄러웠다. 잠시 뒤 첫째가 요리당을 들고 들어왔다.

  "엄마 이거 단 거 그거 맞죠?"

  난 맞다고 대답했다. 그러곤 뒤를 생각하지 않았다.         일요일이니까. 눈을 뜬 뒤로 계속해서 움직였으니까  쉴 권리가 내게도 있다. 그래서 한참 뒤에 생각했다. 요리당을 지퍼백에 따라 넣었을까. 꿀벌 일곱 마리는 어떻게 됐을까.


  쉬고 싶은데 아이들이 돌아가며 들어온다. 이번에는 둘째가 들어와서는, 유자차에 쌀과자를 먹으며 나만의 시간을 좀 가져야겠다고 말한다. 어이가 없다. 나만의 시간이라. 내가 쓴 말이겠지. 나는 우지끈 소리를 내며 일어나 부엌으로 간다. 유자차에 쌀과자를 주며, 너만의 시간을 잘 가져봐, 라고 말한다. 둘째가 싱긋 웃는다.   그러곤 조잘거리기 시작한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얼토당토 않지만 감동을 주는 내용의 노래도 지어 불렀는데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무래도 둘째는 유자차를 먹고 취한 것 같다. 둘째는 나의 디오니소스니까. 나는 가끔 둘째에게 묻는다.

  "취했어?"

  그러면 둘째가 말한다.

  "취 안했어. 어린이가 어떻게 취를 해."

  그래, 어린이는 취를 할 수 없지.  그러고 보니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취를 못 해본지가 얼마나 오래 됐는지. 예전엔 나도 취를 잘 했는데. 술은 못해도 술자리를 좋아했고, 음악에, 문학에, 도시의 밤 거리에, 취를 했는데.


  그 감성이 그리웠던가. 미러볼 블루투스 스피커를 틀고 아이들과 춤을 췄다. 친척동생이 아이들의 춤을 보고는 색색이 조명이 돌아가는 스피커를 보내주었다. 그 덕에 암막커튼을 치고 음악을 틀면 아이들이 흥분한다. 나는 이십 대에 한참 들었던 음악을 틀었다. 그 시절,  발연주 실력에도 하고 인내심 많은 팀원을 만나 취미밴드를 잠깐 했더랬다. 베이스를 매고 홍대 거리를 걸으며 들었던, 언니네 이발관, 레드핫, 플라시보 을 틀고 나는 아이들 보다 더 흥분했다.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었더니 세 녀석이 나를 보며 서 있었다. 둘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쫌, 다른 거 틀어줘!

  취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아기 상어에 맞춰 춤을 춘다. 정말이지 모든 음악 위에 '아기상어'다.

  춤까지 췄는데 취를 못해본지 오래 됐다는 말은 취소해야겠다. 미세먼지는 우려스러워도, 싹이 돋을 거고 꽃이 필 거다. 챙이 긴 모자를 쓰고 장갑도 끼고 작년에 그랬듯 아이들과 상추 토마토도 심고 토끼풀도 뽑으며  해 가겠지. 뭔가 애를 써 놓으면 거실을 어지르듯 아이들은, 특히 우리 첫째, 온갖 것들로 마당을 채울 것이고, 나는 어디까지 하게 하고 어디까지 하지 못하게 할 지 고민을 할 거다.

 "저렇게 놀라고 여기 온 건데 그냥 하게 둬."

  내 눈엔 고물상이 따로 없는데 첫째 아이 눈엔 멋지기만 한 아지트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그래...잘 정리된 화단과 잔디...내려 놓아야지. 내려 놓아야 한다. 내가 잘 하는 나 괴롭히기를 그만두기로 했으니.

  

  그래도 타협점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나는 소심하게 생각해본다. 세 아이와 함께, 따로, 또 이,  멋대로 살기로 했으니까. 사랑에도 연습이 필요하듯 멋대로 살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마음의 고요를 찾을 즈음 어김 없이 우리 셋째가 등장한다. 제 발보다 작은 샌들을 들고 와서 꼭 신어야겠단다. 난리가 나서 신발에 아기 발을 욱여넣는다. 아프기도 할 텐데 우리 셋째, 좋다고 돌아다닌다. 잔디보다 먼저 나온 토끼풀을 뜯어와서 "이거 바바" 하며 내게 건넨다. 나는 "우와, 고마워."라고 말하며 토끼풀과 머잖아 치를 전쟁을 떠올린다.

  기다려라, 봄! 우리는 무장을 할 테다!       

                

*소 제목은 박판식 시인의 시 '쿰이라는 나라의 오해'에서 따왔다. 덕분에 오랜만에 읽어봤는데 다시 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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