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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타 Oct 04. 2019

지극히 개인적인 책읽기

# 황정은, 디디의 우산


 "조금씩 독을 삼키듯 상실을 경험한다. 일상에서 내 기도의 내용은 서수경의 귀가이다. 서수경이 매일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저 바깥에서, 매일의 죽음에서 돌아온다.(257p)


  황정은의 '아무 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속의 나는 서수경과 오래도록 함께 살았지만 동성인 데다 법적으로 관계가 없기에 서수경이 죽더라도 자기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을 공유하지만 어떤 권한도 가질 수 없는 관계. 그래서 하루가 더 소중하고 절박할 지도.


  그런 특별한 사이.

  누구에게나 어떤 가족에게나 그만하진 않더라도 그만한 만큼의 사연과 이유가 있기에 나는 저 문장이  와 닿는다. 아, 내 남편 또한 매일의 죽음에서 돌아오고 있구나. 늦은 밤 피로와 졸음과 싸우며 한 시간을 더 달려 집으로 오는 그이기에 나는 습관처럼 그러나 절실한 마음으로 늘 "안전운전 해" 라고 인사한다.  

  그가 들어오는 기척을 느끼고 아침에 자고 있는 그를 보면서 드는 매일의 안도.  나에게 주어진 평온한 하루가 얼마나 기적같은 순간들의 조합인지 그 매일의 신비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남편에겐  해도 해도 타고나게 운전이 서툰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가 내려 놓는 모든 순간이 죽음에서 돌아오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렇게 많은 이유들로 많은 사람들이 매일의 죽음에서 돌아오고 있구나...

  


"산다는 것은 우리보다 먼저 존재했던 문장들로부터 삶의 형태들을 받는 것......(314p)"


  그녀 또한 롤랑바르뜨의 '마지막 강의'라는 책에서 가져온 문장이지만 어쨌거나 내게는 힘이 나는 말이다.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나보다도 내 마음을 더 잘 표현한 것 같아, 혹은 막연하게 이게 뭘까 싶었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해주어서 나는 깜짝 놀라면서도 좌절한다. 나보다 내 마음을 더 잘 표현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반갑고도 쓸쓸하다.         

  이렇게 잘 쓰는데, 그녀뿐 아니라 그녀와 동시대의 몇몇 작가들이 그녀처럼 이렇게나 잘 쓰는데, 내가 굳이 무언가를 쓸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녀들의 빛나는 재능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우리 자매는 우리의 부모를 따라 종종 무기력했고 습관적으로 절망했으며 우리에게 어쨌거나 미래가 닥칠 거라는 것을, 우리가 그것을 맞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상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165p)"


   소설 속 그녀의 환경, 세월호와 박근혜 탄핵까지의 과정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에서도 그랬다. 아주 많이 다르겠지만 이 작가가 나와 조금은 비슷한 시절들을 보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부모에 대한 애증의 정도라든가...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섬세한 통찰력을 가진 이 작가가 참 마음에 든다. 그녀의 책을 여태 세 권 읽었는데 더 찾아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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