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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타 Oct 04. 2019

세 아이와 네 멋대로 해라

# 여름아, 잘 부탁해

 (뭔가 정리도 하고 사진도 넣고 할 거라고 저장해놓고 방치했더니 10월 초입에 저런 소제목을 달고 앉았다. 모르겠다. 그냥 발행. 단어 참. '올리기' 그냥 이렇게 해도 될 것을 '발행'이라니. 여러모로 자존감을 높여주는 참 좋은 브런치다. 어쩄거나 다시 성실해지기로 한다. 보는 사람도 없다. 그냥, 완성도 따위도 고양이에게 주고 꾸준해보기로 한다.)

 

  삼미터 이미터 길이의 수영장을 샀다.

  신난 아이들이 아침 저녁으로 추위도 모르고 논다.

  여름이 신나는 아이들. 여름은 중요하지, 나는 중얼거린다.

  태풍이 올라오면서 소강하고 덥고 습한 날씨는 계속되었다.  이런 날씨에 내 신경은 잔뜩 예민해져서 아이들에게 온갖 화를 다 내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이 여름을 잘 견딜 수 있게 해주세요, 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내 모습도.


  여름은 그렇다. 풀과 나뭇잎이 갑작스러울 정도로 쑥 앞으로 다가오는 계절. 따 먹을 게 생기고 온습도와 하늘의 색이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 공기가 팽팽하게 부풀어서 몸의 구석구석 영향을 받는 계절.

 

 여름이 왔다. 주택에 와서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게 됐다. 그것이 주택의 매력이다. 햇볕과 물과 공기의 질에 온몸으로 반응한다. 그러니까 화 좀 그만 내자. 화 속에 온갖 감정과 상태와 수준과 그밖의 여러 가지가 섞여 있다. 그게 덥고 습한 시간을 만나면 팽팽해질 대로 팽팽해진다. 의식하지 않으면 사람이 사람을 점점 벗어버리게 되는 거다.    

  나는 믿는 사람이니 그걸 극단적으로 ‘악’이라는 한 단어로 말하고 싶다. 부정적인 생각의 씨앗이 커지는 일. 슬퍼지고 무기력해지고 화가 나는 상태.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적어도 그건 내게 나쁘다. ‘악’은 나쁘다.


 이토록 신나는 여름을 방치하게 만든다. 칠월 초,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동네의 친구들이 놀러왔다 갔다. 우리들은 오랜만이라는 특수성에 반가움이 더해져 무척 애를 썼다.   

 그러니까 모두가 애를 써서 놀았고 애를 써서 아이들을 놀렸다. 지금보단 덜 더운 여름의 초입이었지만 어쨌거나 여름도 한몫 했다. 더 많은 체력이 필요했고 놀 것들이 더 많았다.


 지금, 시간이 내게 돌려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겠다. 애를 쓰는 시간은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좋은 것들을 돌려준다. 활력 같은 것. 친밀한 느낌. 기분좋음. 그런게 이어진다.

 힘이 들어도 아이들에게 잘 해주려고 하고 시간을 들여 조금이라도 글을 써보고 책을 읽어야 하는 것도 그래서겠지. 애를 써서 운동도 해보고 기도도 해보고, 힘이 달리고 쉬고 싶어서, 가사와 육아가 화로 이어지더라도 순간순간을 진득하게 보내려고 애써본다면, 그러면 돌아오는 무엇이 꼭 있으니.


 열심히 살았던 그 순간의 시간들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사랑은 고맙게도 되돌아오는 속성을 지닌 게 분명하다


 남편이 바쁘니 수영장을 펼치고 청소하는 일도 내 몫이다. 물을 갈려고 하는데 개수구가 바닥에 붙어 있지 않아서 물이  발목까지 다. 남아 있는 물을 빼느라 온갖 사투를 벌다. 역시나 더위가 거다. 틈을 노리지 않고 모기가 물어다. 허리를 펴고 일어서서 바가지를 던진다. 핸드폰으로 펌프를 검색했다. 아...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폭풍 검색을 하니 배에 그럭저럭 알맞은 배꼽을 발견했다. 나중에 지르기로 하고 수영장을 들어 반쯤 뒤집은 다음 물을 버렸다. 영차도 아니고, 으읏차,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고 들어오니 뭐가 또 부족한지 막둥이가 보챈다.

  

 새벽이다. 오늘 아침은 좀 잘해보려고 한다. 충전된 에너지가 고갈되어도 날씨가 미친년이 되어도 좀 잘 해보려 한다. 애를 써서 이 순간을 사랑하려고 노력해보려 한다.            다짐했다가 무너졌다가 또 다짐했다가 그러면서 나가는 거지.

  정신줄만, 의식만 놓지 않으면 ‘악’에게 잡아먹힐 일은 없다. 나는 그것에게 나를 내어줄 생각이 없다.


  나를 수퍼우먼으로 다 만들고. 아이들은 여러 가지로 어마어마하다. 극단적인 단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면 이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었을 때 내게 돌아올 것 또한 그럴 것이다. 그게 아이의 속성이니. 돌아올 걸 바라는 건 절대 아니지만 바라지 않아도 애를 쓴 순간은 보답이 온다는 걸 안다. 세 녀석들의 천진한 웃음 같은 것. 그것으로도 족한 그런 것.

 

 그러니 여름아,  부디 잘 부탁한다. 오늘 하루도. 내일도. 매일, 매순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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