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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색가 G Oct 08. 2021

내 아이의 초상권

아기 얼굴을 인터넷에 그대로 올려도 될까?

아기 얼굴을 그대로 올려도 될까?

몇 주 전 KBS <편스토랑>를 보면서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다. <편스토랑>에 출연한 배우 정상훈이 세 아이의 얼굴 공개에 앞서 아이들에게 TV에 얼굴이 나와도 괜찮은지 물어보는 장면이다. 정상훈은 아이들이 부끄러우면 얼굴 안 나와도 된다고 다정하게 말한다. 금방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여기서 아빠로서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TV에는 육아 예능이 넘쳐나는데 이렇게 아이들에게 TV 출연 허락을 받는 장면을 보는 건 처음인 듯하다.


<아빠 어디 가>부터 <슈퍼맨이 돌아왔다>까지 스타와 그들의 자녀 출연은 늘 화제성 있는 소재다. 연예인 입장에서도 육아 예능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자랑할 수 있고 또 자신의 가정적인 모습을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방송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가공하여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시청자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들의 모습을 소비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작 아이들에게 자신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며, 앞으로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본인 의사결정을 아직 제대로 못하는 아이 대신 부모가 방송 출연 여부를 대리로 결정하는 것 역시 먼 훗날 아이가 커서 문제 삼을 여지는 충분히 있다.


흥미롭게도 일부러 방송 출연을 해서 아이들의 얼굴을 공개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필사적으로 아이들의 얼굴이 공개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의 초상권에 대해 이렇게 상반되는 두 입장이 있는 와중에 과연 아이의 얼굴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위험이 따르는지 궁금하게 되었다. 기술과 문화의 발전에는 새로운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인터넷의 사용이 점점 보편화되면서 이제는 인터넷 사용자 본인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초상권 문제가 새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할리우드/국내 스타들의 아이 얼굴 모자이크 처리

국내보다 아무래도 초상권 개념에 더 민감한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할리우드 스타들이 파파라치 사진에 아이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길 부탁해왔다. 아이들이 연예인 부모의 자식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것도 있고 파파라치들이 연예인들의 아이들의 사진을 이용해서 잡지나 신문사에 파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미국의 유명 모델 Gigi Hadid (지지 하디드)의 예를 함께 살펴보자. 지난해 9월에 가수 Zayn Malik (제인 말리크)과 지지 사이에 딸이 태어났다. 그런데 유명 연예인 두 명 사이에 태어난 아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는지 지지와 제인은 태어난 지 몇 달이 지나도 아기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지지는 이후에도 딸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기 위해 사진을 같이 찍을 때도 얼굴을 꽁꽁 숨기거나 사진을 스티터로 가리는 등 여러 노력을 해왔다. 근데 올해 7월 자신의 노력에 한계를 느꼈는지 파파라치와 팬 계정에게 아기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해주길 부탁하는 장문의 편지를 본인의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국내 스타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고소영-장동건 커플이 두 아이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누군가의 2세'라는 수식어가 계속해서 아이들을 따라다닐 것이 분명하기에 자녀 얼굴 공개에 민감하고 또 조심스러운 것이 이해가 된다. 아이들이 단순히 ~의 아들, ~의 딸로 남지 않고 하나의 개인으로서 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노력이 불가피해 보인다.


물론 브래드 피트-안젤리나 졸리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졸리-피트 (당시...) 부부는 아이들 사진을 잡지에 넘겨 자신들의 자선 재단인 '졸리-피트 재단'을 위한 기금을 마련했다. 누구는 아이들을 방송 출연시키기 위해 애를 쓰지만 또 누구는 아이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여러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걸 보면 같은 문제에 있어서도 교육관과 철학에 따라 부모가 다르게 접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Teen Vogue (틴 보그)의 기사와 지지 하디드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올린 편지 내용

Nirvana 앨범 아기 소송

최근에 또 봤던 흥미로운 뉴스 중에 90년대 락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밴드 Nirvana (너바나)의 전설적인 2집 Nevermind의 표지를 둘러싼 이슈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앨범 표지의 아기가 알몸으로 헤엄치고 있어서 '아 이거 괜찮은 거 맞나?'라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표지의 주인공이 최근 아동 포르노 혐의로 밴드에게 소송을 걸었다.


왜 이제 와서 30년도 더 된 앨범 때문에 소송을 거는지 그 의도는 의심스러워 보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밴드가 너무 유명해져서 너바나를 생각하면 누구나 헤엄치는 알몸 아기를 생각하는 것만큼 앨범 표지는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알몸 아기 사진으로 자신의 이미지가 소비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진 속 주인공의 주장이다. 30년이 지나도 자신의 알몸 아기 사진이 인터넷을 둥둥 떠다니고 있으면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걸 원하지 않는다.  


가족 유튜브 채널

이토록 아이의 얼굴 공개를 꺼려하고 나중에 초상권 침해 때문에 소송도 거는 마당에 유튜브 세상은 아이들을 어떻게 다룰까? TV에 육아 예능이 있는 것처럼 유튜브에는 가족 채널이 존재한다. 해외 가족 유튜브 채널로는 크고 작은 논란거리와 자극적인 타이틀로 유명한 미국의 Ace Family가 그 대표다. 브이로그 형식의 영상을 주로 올리는데 혼자 브이로그에 나오는 다른 유튜버들의 영상과 달리 가족 채널은 온 가족이 함께 영상에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는 강남에 빌딩을 산 것으로 유명한 장난감 리뷰 채널 '보람튜브'가 있다. 채널의 운영자인 부모가 아이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시켜 영상을 찍는다는 이유로 아동학대 혐의로 고발당한 적이 있고 실제 2018년에는 서울 가정법원의 보호 처분을 받았다. (유튜브 사과에 대해서는 비슷한 패턴이 자꾸 보이는데 사과 영상에 대한 포스팅은 여기로). 역시나 그들의 근황이 문뜩 궁금해져 채널을 확인하니 현재 댓글창을 막았지만 계속 영상을 찍으며 활동하고 있다.


왜 이렇게 유독 가족 유튜브 채널에 논란이 자꾸 생기나 살펴보면 아이들이 나오는 특성상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의 파급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른과 같이 행동을 가려서 할 수 없다. 또 행동에 대한 통제력이 없기 때문에 돌발행동을 하기 쉽다. 마지막으로 다른 유튜브 채널과 마찬가지로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위해 영상을 찍는 문제가 있는데 그 대상이 아이들이다 보니 아이들이 굉장히 안 좋은 환경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아직 정서적으로 발달하지 않았기에 사소한 해프닝이 큰 마음의 상처로 이어질 수 있다.


인터넷 세상 속에서는 사생활을 찍는 것은 늘 윤리적 딜레마를 가져오는 일이지만 미성년자들이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은 아이들의 정서와 미래에 있어 상당히 치명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가족 채널을 보고있으면 아이들을 콘텐츠의 대상으로 상품화하여 돈을 버는 것이 꺼림칙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아기 얼굴을 인터넷에 그대로 올려도 될까?

아직 결혼도  했고 아이도 없는 입장에서 지금 당장 나에게 해당되는 일은 아니지만 인터넷 사회  우리는 아이들의 초상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여러 생각이 든다. 연예인이 아닌 대다수의 일반인들 지지 하디드처럼 파파라치에 의해 자녀들의 얼굴이 공개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자기가 직접 아이들의 사진을 SNS 계정에 올리기 때문에 '미성년자 초상권 침해' 문제는 비단 유명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자식 사진 올리는  무슨 문제인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으로부터 파생된 생각이다.


지난번 휴가 때 호텔 후기를 찾아보느라 블로그 리뷰를 읽고 있는데 (모자이크 처리는 했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들의 알몸 욕조 사진 때문에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다. 자꾸 개인 카톡으로 아기 사진을 보내서 짜증 난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반대로 인터넷 피드를 아이 사진으로 도배하는 사람의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아이들 사진이 인터넷에 넘쳐나는데 한 발짝 멀리 서서  모든 걸 사진 찍어서 올리는 세상에 속 아이들의 초상권에 대해 분명히 생각해봐야 한다고 느낀다. 아이가 나중에 커서 '엄마/아빠는 왜 이런 창피한 사진을 남들 다 보라고 올렸어'라고 말하는 걸 듣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들과 아이들의 이미지를 단순히 나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개별적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 또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아직 세상에 보이는 자신의 이미지가 남들에게 어떻게 소비되는지 결정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인해 자주 볼 수 없는 조카의 사진을 마음껏 볼 수 있지만, 또 늘 그렇듯 이렇게 인터넷은 계속해서 새로운 문젯거리를 창조해낸다. 가까운 친구들과 사진 공유를 하는 계정이라면 매번 아이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것은 어쩌면 조금 오바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 사진을 아이들이 올리는 것을 괜찮아 할까?' 혹은 '아이 입장에서 이런 창피한 에피소드를 이모 삼촌들이 모두 아는 걸 괜찮아 할까?' 정도는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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