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도 각자의 집에만 가고, 여행도 따로 다니고 같은 집에는 살지만 방도 따로 쓰는 쇼윈도 부부들을 보면서 '저렇게 살 꺼 왜 같이 살지?'라는 철없는 생각을 했더랬다. 지금은 안다. 아이가 있는 경우, 그 결혼을 놓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출산 전까지만 해도 이 노래엔 특별한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곰 세 마리의 아빠, 엄마, 애기의 구성이 아이들에게는 무너져선 안 되는 세계라는 것을 안다. 이 세계가 무너졌을 때 아이가 느낄 상실감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아이가 인지가 발달하면서 부모가 싸우는 상황에 공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 아이는 28개월. 나도 참 자제심 부족하고 못된 것이 아이에게 "엄마랑 살 거야? 아빠랑 살 거야?"라고 물어봤다. 아이는 앞을 쳐다보며 "엄마, 아빠 둘 다. 엄마, 아빠랑 같이 살 거야"라고 말했다. 바로 옆에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는 남편에 따르면 아이의 얼굴이 너무 슬퍼 보였다고 한다.
그 날 당일 아이는 자다가 놀라 소리치면서 몽유병 환자처럼 방안을 기어 다녔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던지라 나나 남편이나 매우 놀랐고, 아이는 그다음 날까지 그렇게 자다가 놀라 소리치며 울었다. 원래 나는 그 날 처음으로 '협의이혼의사 확인신청서'라는 것을 밤새 썼다. 양육권과 재산분할에 대한 합의서 초안도 만들었다. 정말 끝낼 생각이었고 아침에 바로 문구점에 가서 출력하고, 월요일에는 재산분할에 대해 변호사 상담을 받으려고 예약까지 했다. 그러나 아이의 이틀에 걸친 경기를 보고 그 생각을 일단 접었다.
나는 이혼한다고 해서 아이를 안 보는 것도 아니고, 아이는 엄마, 아빠와 각자 만날 수 있으니 이렇게 싸우며 사느니 따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양육에 대해선 평일과 주말로 나눠 공동양육권을 행사하는 것과 매주 면접교섭권을 갖는 것 중 무엇이 나을지도 고민했다. 남편이 양육권을 절대 포기 못한다고 하였고, 나는 아이가 여아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엄마가 옆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양육권 분배가 가장 난감하다 고민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한 게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아빠와 나, 엄마와 나 이렇게가 아니라 곰 세 마리의 가족처럼 아빠, 엄마, 나 셋이 동시에 같은 공간에서 웃으며 즐겁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아이는 우리가 웃으며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아빠!, 엄마!, OO이!" 이러면서 세 명이 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며 좋다고 웃는다. 나는 이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라고 물었던 그 날이 아이에게 큰 충격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 특별히 엄마를 많이 찾지 않던 아이인데 엄마가 안 보이면, 다급하게 찾는 모습도 요즘 들어 자주 보였다. 애 아빠가 집에 있어서 잠깐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길인데도 애가 같이 나간다고 소리를 치며 울었다. 아이는 엄마가 집을 나갈 수 있다는 불안을 갖고 있는 듯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어렸을 때 엄마가 집을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엄마 말을 잘 들었던 유년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도 엄마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엄마 껌딱지 시기인 28개월은 더할 거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나는 아이가 마냥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그냥 시끄러운 소음 정도로 듣겠지 했지만, 아이는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유심히 다 듣고 있었다. 실제로 자기 한데 물어본 게 아닌데도 대답할 정도로 귀를 쫑긋 세우고 엄마, 아빠 말을 듣고 있기도 했다.
정말 잘 자라고 있는 아이가 부모의 이혼으로 큰 결핍을 느끼게 될 거라는 게 확실했다. 물론 한 편으로는 더 머리가 자라기 전에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한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엄마, 아빠는 따로 보는 것으로 아이에게 인지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란 것이다. 하지만 편부모 가정의 환경을 전혀 고려치 않는 우리나라의 정서나 교육 내용상 아이는 알게 모르게 교과서 속의 아빠, 엄마, 아이가 모두 한 집에 있는 그림 안에서 슬픔을 느낄 것이었다.
화해로 생긴 잠깐의 평화가 지나고, 여느 때처럼 같은 패턴으로 또 싸우고 있는 부모를 보며, 아이는 "싸우지 마"라고 했다. 남편은 또 내 탓만 했다. 발단은 여느 때처럼 아내를 인격 모독하는 본인의 발언이었으면서도 말이다. 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여자만이 참아야 한다는 건가? 본인이 말잘못하고, "가뜩이나 야근해서 피곤한데"라는 말을 하는 건 뭔가? 자기가 일하고 그래서 피곤하니, 너는 내가 하는 말을 듣기나 해? 이것도 아니다. 내가 싸우기 싫어서 대답 안 하면 "OO!"이러면서 대답을 강요한다. 이럴 땐 정말 미쳤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아이에게 가정을 유지시키기 위해 나는 얼마나 더 감정의 억누름을 강요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 날 결국 싸웠고, 남편은 적반하장으로 본인이 성을 내길래 나는 "그냥 나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마"라고 했다. "투명인간 취급을 해라"라고 했다. 나에 대해 어떤 감정 표현, 평가 일절 하지 말라고. 아이의 아빠 또는 엄마 이상의 관계는 서로에게 기대하지 말자고 말이다. 남편도 동의했다.
나는 그날 아이를 재우고 안방에서 나와 작은방에서 잤다. 어찌 됐건 밖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오는 사람이니 침대에서 자라는 것도 있었지만, 안방에서 아이가 자고 있기 때문에 내가 안방에서 자면 남편이 아이를 들여다보다 부딪힐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의 인기척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귀마개를 끼고 작은방에서 잤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싸우면 나는 집을 나간다는 식이고, 남편은 나보고 집을 나가라는 식이었다. 남편은 이 집에선 아내만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런데 나는 아이의 지난 사건 이후 집을 나간다는 생각은 정말 자제하려고 하고 있다.
내가 아이를 그다음 날 깨우는데, 아이는 침대에 아빠가 없으니(화장실을 가서) 아빠를 찾았다. 엄마가 없으면 엄마, 아빠가 없으면 아빠를 찾는 식으로 엄마, 아빠가 둘 다 있는지를 유독 요즘 들어 확인하는 경향이 많아진 아이다. 이런 모습에 또 마음이 약해지고 아이에게 미안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고민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