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이었다. 친한 후배의 말만 듣고 ‘소설 쓰기’ 수업을 들은 건. 당시에 난 마지막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졸업을 앞둔 보통의 사람처럼, 남들이 다 쓰는 것 같은 기업의 이력서를 닥치는 대로 썼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수 없이 쓴 이력서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던 글이 바로 소설이었다. 현실 보다 가상세계를 좋아하던 내게, 상상을 문장화하는 과정 자체는 즐겁기 그지없었다. 결과가 처참했을 뿐. 첫 합평 시간에 내가 처음 들은 말은 ‘재미없어서 10일간 읽었다’였다.
보통의 대학생들이 소설을 잘 써봤자라며 자만했다. 주변에 소설을 즐겨 읽는 친구도 많지 않았고. 당연히 내가 중간 이상은 되겠다며 학점이나 따보려 선택한 수업이었다. 근데 웬걸. 국문학과는, 그래, 넓게 쳐서 문과인 행정학과까지는 인정하는데 화학공학과나 물리학과 친구들이 이렇게 소설을 잘 쓰는 건 반칙 아닌가. 심지어 잘 쓰는 친구들끼리 저렇게 티 나게 몰려다니는 건 위화감까지 조성하는 거 아니냐고.
내게 상대적인 절망감을 안긴 그 패거리에는 A도 있었다. 그는 다른 학교의 문예창작학과 학생이었는데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만 우리 학교에 왔단다. 그래도 a는 과를 들으면 소설을 잘 쓰리라 예상되는 사람이었다. 이는 내게 그나마 위안을 줬다. 어쨌든 그는 나와 같이 조모임도 하고 발표도 했지만, 친해지진 않았다. 대신 소설을 잘 쓴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나는 그게 몹시 슬펐다. 노력과 열정만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은 그때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서글픈 마음은 어쩔 수 없더라. 수업이 끝날 때마다 매번 삼삼오오 모여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매주 목요일 나는 씁쓸했고 속상했다. 그들을 가끔은 미워하기도 했다. 내게 말을 걸지도 않고 아무 관심도 없는, 나를 껴 주지 않는, 그들을. 때때로 일기에 서러움을 토해내곤 했다.
졸업 후 몇 년이나 지났을까. 글과는 거리가 먼 영역에서 밥벌이를 한창 하고 있었을 때였다. 책과 영화의 평점을 기록하는 앱인 ‘왓챠피디아’에서 익숙한 이름을 보게 됐다. A였다. 그가 쓴 평가를 읽어봤을 때, 당시 나와 같은 수업을 들은 그가 맞았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고 몰래 시샘까지 했던 그였기에 망설여졌다. 고민하다가 어차피 비대면이니 큰 용기를 내지도 않아도 되어 안부를 물어봤다. 그때 소설 듣기 같이 들었던 사람인데 반갑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가 남긴 댓글이 놀라웠다. 나보고 덕담을 해준 사람이 맞냐고 묻지 않던가.
내 기억엔 이미 지워진 일이었다. 내게 a는 슬픔과 속상함 그리고 씁쓸함을 남겼던 사람인데. 그는 나를 꽤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다니. 돌이켜 보니 생각이 나긴 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난 후였다. 내가 그때도 망설이다가 소소한 응원을 건넸었다. 그냥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는 실제로 소설을 잘 썼고 그의 열정도 대단했으니까. 마음은 늘 있었는데 입 밖으로 한 번 냈을 뿐이다.
그런데도 A는 내 댓글을 보고, 제일 먼저 떠오른 기억이 그 덕담이었던 것이다. 나는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그 말 한마디. 물론 용기야 냈던 일이지만, 금방 잊힌 걸 보면 내가 크게 에너지를 쓴 일도 아니었다. 조금의 노력으로 그 사람에게 몇 년이 지나도 좋은 이미지로 남다니.
생각해 보면 나 또한 그렇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가끔은 날 살게 했다. 작은 친절에 기대곤 했다. 전화영어 강사의 ‘이번 주에 했던 대화 중 가장 즐거웠다’는 한 마디가, 매 아침 날 일으켰다. 납득이 가지 않는 소식에 여행지에서 벤치에 앉아 펑펑 울고 있을 때, ‘아이고. 뭐가 그리 서러워’라며 다독이던 아주머니의 친절이 여행을 무사히 끝마치게 했다. 언니의 글과 생각이 너무 예쁘다는 카톡은 지금까지 자판을 두드리게 해주는 힘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고 잊고 싶지 않은 말들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a에게도 나의 한마디가 그랬어서, 조금이나마 힘이 된 듯하여, 당시의 나 자신을 꽤나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게 됐다. 이제까지 소설 쓰기 수업을 듣던 막학기 대학생의 나는, 조금 서럽게 기억됐기 때문이다. 내게도 좋은 일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나보다 실재의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었다는 걸 늦게나마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지쳐 쓰러지고 싶을 때, 조금 낯설고 깊지 않은 관계의 사람이 전하는 말 한마디가 우리를 지탱하기도 한다. 한 사람이 작은 응원을 보내주는 것만으로 내가 괜찮은 삶을, 더 나아질 삶을 살고 있단 생각을 들게 하니까. 괜히 힘이 난다. 반대로 그 말 한마디를 건넸을 때 상대방이 보이는 기쁨과 행복이 나에게 전파되기도 하고.
말은 공짜다. 그렇게까지 큰 용기가 들지도 않는다. 조금 쑥스럽기야 하겠지만 눈 딱 감고 잠깐의 쭈볏쭈볏함만 극복하면 되지 않는가. 꽤 가성비가 좋다.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전하고 또 듣고 살고 싶다. 그런 말이 넘치는 곳에서 살고 싶다. 그런 곳이라면 세상이 좀 너무해도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수많은 이들의 작은 친절에 빚 지고 이를 갚으며 말이다.
A의 소설을 베스트셀러에서 보고 싶다며 꾸준히 써달라는 내 마음을 그에게 제 때 전하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