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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모모씨 Jul 28. 2023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대학교 동기는 다 가짜고 가식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했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각자 다른 대학에 입학하면서 우정이 흐려질까 두려웠던 누군가 만들어낸 말일까. 대학교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온 지도 꽤 지난 지금 생각하면, 귀여운 말이다. 대학생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인이 된 후에 만난 사람과도 친해질 수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올해 초 모임에서 알게 된 친구가 있다. 처음에는 모임에서만 봤는데, 어느날 부터 모임 전에 미리 만나기도 하고 정말 가끔이지만 주말에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회사에서 대리라고 불릴 정도의 연차가 쌓이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사귄게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시기와 상관 없이 사람을 알아가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그럴 때면 내 나이를 인식하고 놀라곤 한다. 학창시절 새학기가 시작됐을 때, 같은 반 친구를 새로 사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그 친구의 첫인상까지는 기억이 날 리가 없다. 모임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겠지. 그 중에서 공감 가는 말도 했겠지. 옷도 입고야 왔겠지. 가방도 들고 왔겠지. 신발도 신고 왔겠지. 뭐, 당연히 그 정도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 카페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옆에 앉은 친구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의 피부가 보였다. 근데 너무 좋은 것이다. 자세히 보니 보조개가 있는데, 꽤 매력적인 것이다. 속쌍커풀도 예쁘네. 왜 이제까지 몰랐지. 생각해 보니 이 친구, 운동신경도 뛰어나다. 리액션도 좋아서 어떤 말이건 잘 웃으며 덩달아 나까지 신나게 한다. 얘기를 할 때 기분이 좋으면 눈이 반짝이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데 그게 꽤 귀엽게 보일 때도 있고. 생각도 건강해. 시니컬한 말투가 유쾌도 하지. 인사성도 좋고. 뭐야. 너무 괜찮잖아?


난 그 순간, 최근 내가 빠져있던 한 고민의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을 오랜만에 사귀어서 잊고 있었다. 볼 수록 그 사람의 다양한 면모를 알 수 있던 거였다. 특히나 매력들. 직업이나 나이 같은 것이 아니라 오래 봐야 알 수 있는 것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가니, 갈 수록 예쁘게 보이는 거였어! 내 주변 친구들만 어째서 죄다 이상한 남자에 빠져있는 지 도통 이해 할 수가 없어서 나름의 골머리를 앓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네가 훨씬 아깝다는 말을 어떻게 전해야 자연스럽고 친구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를 제일 자주 연구하고 있었을 때였다. 내가 내 친구들을 오래 봐서 좋게 보고 있던 거였다. 콩깍지라는 말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그러니 상대가 누구건, 내 친구들이 죄다 아까운 거였어. 그 이후로는 조금은 맘 편하게 친구들의 연애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게 됐다.


알고 지내는 친구들 중에서 이제까지 제일 오래 그리고 자주 본 이는, 나일 것이다. 대화를 가장 많이 한 사람도 나일 테다. 그런데도 한 때 나는 나를 오랫동안 미워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날 싫어하고 나와 싸워댔다. 툭하면 나를 부정했다. 사랑하고 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매 아침 눈을 떴을 때 내가 아니기를, 또 나로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잠을 청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나의 증오를 버텨야만 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하긴 여전히 어렵다. 난 아직 가끔 내가 싫다. 나를 속속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불완전함을 제일 잘 알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도 내가 싫은 날보다 좋은 날이 더 많아진 이유도 결국 그 때문이었다. 내가 나를 제일 잘 알아서. 내가 얼마나 불완전한지 잘 아는 만큼, 불완전한 나에게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선물하기 위해 어떻게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 지를 제일 잘 알아서. 불완전한 나 자신과 고통 속에서 어긋난 순간들도 놓지않고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순간순간의 나를, 나의 사소한 분투까지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내 자신이 꽤 사랑스럽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시시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끔은 과몰입도 하고 놀라고 감탄하고 새로운 세상에서 갈 길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가끔은 눈물나게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 덕분일까. 매일 아침 보는 내 얼굴이 갑자기 그리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나를 오래 봐야 알 수 있기에 나만 알 수 있다.


나만 알고 있는 나의 모습이 많고, 앞으로도 그렇기를 원하는 모습도 있기에 나의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모두 문장으로 묘사할 순 없다. 공개적으로 적기도 몹시 낯간지럽다. 내게 너무 많은 인간들이 반해버려도 문제고. 오직 날 오래 본 사람만이 이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나 또한 사람을 오래 볼 수록 그 사람의 여러 면을 알게 된다. 특히나 시간이 지날 수록 사랑스러운 면이 더 많이 보인다. 경험상 그렇다. 마음이 그렇게 된다.


그렇기에 기대되는 건 날이 갈 수록 자연스레 우리는 계속 서로의 사랑스러운 면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봐 줄 수 있다. 가능하다면 사람을 오래 알고 지내고픈 이유다. 나아가 내 자신을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하게 될 거라 믿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말은 어쩌면 모두에게 적용될 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나 보다. 제 눈에 안경일 수 밖에. 친구들을 보며  오지랖을 부릴 수 밖에. “누굴 갖다 놔도 네가 아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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