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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모모씨 Nov 20. 2023

너는 이상했다.

너는 이상했다. 처음부터 이상하지는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했다. 별일 아닌데 매번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그때마다 너의 친구란 이유 하나로, 애꿎은 나만 곤욕이란 곤욕은 혼자 다 치렀다.


너의 아버지는 직장에서 잘린 것 같았다. 넌 유달리 동생도 많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퇴직이 널 더 힘들게 한 것 같았다. 자존심이 센 너는 나에게 그 사실을 당연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너의 아버지 회사가 구조조정 한다는 뉴스를 우연히 봤으니까. 게다가 너의 씀씀이는 눈에 띄게 줄었다. 아르바이트도 두세 개 뛰기 시작했다. 사회의 이런저런 현상에 대한 비판도 잦아졌다. 나는 그런 너와 만날 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내며 밥을 샀다. 예전 같으면 이번엔 내 차례라고 돈을 억지로라도 내밀었을 너는, 고맙다는 인사로 이를 대신했다. 그 고맙단 말마저 하기 민망해졌는지 언젠가부터 말없이 식당을 먼저 나가있었다.


그런 변화는 나에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나와 친구 관계로 지내지 않고 싶은 듯 행동하는 너를 보는 일은 힘들었다. 넌 툭하면 성을 내기 시작했다. 기분이 나빠지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내 얘기를 잘 듣지 않았다. 항상 심드렁해 있었다. 결국 우리의 관계는 틀어져갔다. 나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 우리 관계를 개선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멀어져 있었다. 너는 변하지 않았고 변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난 지쳐갔다. 왜 시간과 돈을 쓰면서까지 널 만나야 하는지, 그 이유조차 찾아낼 수 없게 됐다.


그렇게 서서히 멀어진 널, 어쩌다 들린 카페에서 일 년 여만에 만날 수 있었다. 우연히. 너는 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더라. 반가웠다. 왜 진작 연락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밀려왔을 만큼.


너는 대학졸업 후에 취업준비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말했다. 대학시절에 아르바이트로 바빠서 학점관리도 못 하고 이런저런 스펙도 쌓지 못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취업이 쉽지 않다고 했다. 나의 기억 속에 너는 누구보다 자존심이 센 아이였다. 그래서 취업이 안 된다는 고백은 너에게 잠깐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너는 시간이 왜 이리 안 가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동생들이 빨리 커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든 게 버겁다고 했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너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런 나를 너도 빤히 쳐다봤다. 잠깐의 정적 끝에 네가 먼저 입을 뗐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우울한 얘기를 해서 미안하다 했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입고 있던 스웨터 품이 너무 커서 그랬을까. 네가 유독 더 왜소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지금 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그때, 난 한동안 널 미워했던 나 자신이 너무 미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널 미워하지 않기엔, 너에게 받은 상처를 감내할 만큼 내가 강하지 못하다. 내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널 혼자 사랑하고 위하는 일은, 옹졸한 나에겐 벅차기만 하다. 서운함을 참아가며 널 감싸 안으려 했던 나 자신이 가끔은 너무 딱했으니까. 그렇다고 널 미워하기엔, 너를 너무 많이 안다. 네가 느끼고 있는 고통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가끔은 안쓰러울 정도로, 너는 그 고통에 약하기까지 하다.


차라리 네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악인이면 좋겠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유 없이 악한 사람. 널 미워해도 맘이 편할 수 있게. 널 미워하는 나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도록. 좀 덜 딱했으면, 더 강하기라도 했으면, 널 마음껏 미워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모두에게, 사는 데 쉬운 게 하나 없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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