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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사람 Jan 14. 2021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과 관계 맺기 4

한걸음 한걸음 내가 다가갈게

1. 관계 개선을 위해

 (1) 애들아 뭐 좀 먹었니?

      아이들의 가정환경을 알아보니 한부모 가정인 경우도 많고, 부모님이 다 계셔도 제대로 돌봐줄 수 없는 형편인 경우가 많아서인지 아이들은 아침 등굣길에 학교 앞 편의점에 들러 먹을거리를 사 와 교실에서 먹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이 때문에 지각도 잦고, 먹을거리를 뺏어 먹으며 다툼도 일어나고 1교시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아침을 못 먹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조사해 보니 70% 이상이었고, 그래서 교실에서 빵을 굽기 시작했다. 토스터기와 식빵, 딸기잼을 준비해 놓고 아이들이 아침에 오면 구워서 우유와 함께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왔을 때 나는 고소한 빵 냄새와 선생님의 반가운 아침 인사가 좋았다고 한다. 빵을 준비해 놓으니 아침에 편의점에 들를 필요가 없어졌고 또, 늦게 오면 먼저 온 친구들이 빵을 다 먹어 없는 날도 있어서 자연스레 등교 시간이 빨라졌다. 또 친구들의 음식을 빼앗아 먹지 않아도 되니 다툼도 줄고 점차 다른 친구를 위해 빵을 남겨놓는 자제심과 배려심도 배울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자신들을 위해 매일 아침 빵을 사 오고 구워놓고 기다리는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신뢰를 갖게 되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는 아침에 따뜻한 차와 함께 빵을 먹게 하고 싶어 코코아를 사다 놓았고 아이들에게 종이컵 말고 개인 컵이나 텀블러를 사용하도록 하면서 환경교육과 자기 물건에 대한 관리 능력을 기르도록 했다. 질서와 규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빵 코너 이용에 제한을 하자며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서로 바른 이용을 독려하기도 하였다. 작은 선심이 불러오는 나비효과를 느꼈다.      

 (2) 자리에 앉아야 뭐라도 할 수 있겠다.

  수업이든, 교육이든, 이야기 나누기라도 하려면 우선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교사를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제각각 교실에서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고 겨우 모두를 잠시 앉게 하여도 자기 이야기를 큰소리로 하는 통에 교사의 이야기가 묻혀버렸다. 수업을 하기는 하는데 교사의 말을 듣는 친구는 잘해야 두세 명이었다. 먼저 자리에 앉아 교사에게 집중하는 교육이 필요했다. 

  2학기 초에 우리 반의 규칙을 정하는 과정에서 친구에게 잘못했을 때 사과하는 법을 주제로 수업을 하게 되었고 참고 영상으로 ‘어쩌다 어른’의 ‘손경이-진정한 사과 위드유’ 편을 보여주었다. 사과는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할 때까지 해야 진짜 사과라는 내용의 동영상인데 영상을 보는 동안 아이들이 굉장한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아! 이거다.” 싶었다. 바로 차승민 선생님이 운영하는 카페와 책을 통해 영화 수업 자료를 선정했다. 

  우리 반 학생들이 가족관계에서 받는 상처가 많음을 알기에 ‘장강 7호’ 영화를 보며 가난과 가족 간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더’를 보며 아픔을 나누고 서로 힘이 되어주는 가족 간의 노력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폭풍우 치는 밤에’를 보며 세상에 친구가 되지 않을 사람은 없다는 것과 우정에 대해 제법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영화를 볼 때는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중간중간에 이해도를 확인하며 함께 보았고, 영화를 본 후에는 이야기 나누기, 토의하기, 글쓰기 시간을 가졌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도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을 정확하게 지켰다. 영화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수업시간에도 바르게 앉아 교사의 말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자연스레 수업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수업이 제대로 되기 시작하니 아이들의 변화가 조금씩 빨라졌다. 

  영상자료의 효과가 큰 것을 알고 매일 아침 이야기 나누기 시간에 뉴스 영상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한 예로 아이들이 무심코 하는 욕 중에 특히 손가락으로 욕하는 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마침 ‘김비오’라는 골프선수가 경기 도중 갤러리에게 손가락 욕을 한 것에 대해 굉장히 큰 벌을 받는 것이 보도되었다. 뉴스 영상을 함께 보며 손가락 욕도 사회적으로 이렇게 큰 지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았고 아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물론 영상 한 번에 모든 아이들이 손가락 욕을 바로 고친 것은 아니지만 눈에 띄게 줄어든 효과는 분명 있었다.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슈들을 뉴스 영상으로 보여주고 국어수업과 연계하여 수업을 하니 아이들이 스스로 뉴스에 관심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아침에 뉴스 영상을 틀어주니 어제저녁 뉴스 보면서 선생님이 이 이야기할 것 같았다고 자기 예상이 맞았다고 기뻐하는 학생도 있었다. 매일 핸드폰 게임만 하지 말고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세상과 소통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3) 선생님이 너의 보호자야

  6학년 3개 학급 중에 유난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들이 많고(정부 지원 대상자가 20명 중 13명) 결손 가정이 많은데 특히 K는 아버지가 주로 중국에 가서 일하고 누나는 공부와 아르바이트로 바빠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 아침은 학교에서 빵과 우유를 먹고 점심 급식을 먹고 저녁은 지역아동센터에서 먹는다. 평상시엔 혼자 씩씩하게 잘 생활하지만 몸이 아플 때 아이는 급 우울해한다. 이때가 나에게는 기회였다. K가 고열로 힘들어할 때 병원에 가라고 하니 혼자서는 못 가겠다고 한다. 병원비도 없고 병원에 가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단다. 오후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차근차근 증상을 말하고 주사를 맞히고 병원비 1000원을 계산했다. 약국에 들러 약도 무료로 받았다.     

  “지금 약 한 봉 먹고, 저녁 먹고 저녁 약 꼭 먹고 자라.”

  “네, 쌤. 근데....  오늘은 힘들어서 집에 바로 가서 쉬고 싶은데....  저녁 먹으러 센터 또 나오기 귀찮은데.....  저녁 먹을 것 좀 사주면 안돼요?”

  “ 그래, 그러자.”     

  함께 도시락을 사러 편의점에 갔다. 나는 편의점 도시락이 가격순으로 진열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K는 이것저것 만져보더니 맨 끝에 가장 값이 싼 도시락을 골랐다.      

  “근데 만두가 있네. 만두는 좀 싫은데...”

  “가격 생각하지 말고 먹고 싶은 거 골라.”

  “정말 그래두 돼요?”  

  “ 응.”    “아싸! 개꿀!”

  아이는 오천구백 원짜리 도시락을 골랐는데 겉면에 컵라면을 공짜로 준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와, 오늘 완전 운 좋아요. 제가 쌤한테 컵라면 쏠게요.”

  “아니야, 라면 선물 받은 거로 할게. 집에 가서 컵라면이랑 도시락 따뜻하게 먹고 약 먹어. 내일은 열이 떨어지면 좋겠다.”

  “네, 그럼 제가 쌤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갈게요.”

  “몸도 아픈데 무슨...  선생님 학교 가는 길 잘 알아. 걱정 말고 집에 바로 가라”

  “네, 감사합니다. 쌤.”     

  교실에서 송곳과 쇠줄과 몽둥이로 아이들을 위협하며 먹을 것을 빼앗아 먹던 K가 순한 양이 되었다. 그런데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염치를 모르는 아이가 아니라 염치도 사치인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닐지....  

  대한민국의 모든 6학년 학생은 여학생은 4가지, 남학생은 3가지의 예방접종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Td, 일본뇌염, 독감, 자궁경부암) 우리 반 아이들도 안내장을 가지고 개별적으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는다. 혼자 병원 가는 걸 싫어하는 K에게 이제 다 컸으니 스스로 병원도 갈 줄 알아야 한다며 안내장을 들려 보냈다. 병원에서는 나이가 많아서 무료접종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K는 2년 전에 이 예방주사를 맞았어야 했던 것이다. 보건소와 주민센터를 통해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허사였고, 약 20만 원의 비용이 든다고 하였다. 전산상으로 K의 예방접종 기록을 보니 갓난아기 때 두세 가지 예방접종을 한 게 다 였다. 화가 났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들도 수십만 원의 비용을 들여 예방접종을 하고 건강관리를 한다. 하물며 존엄한 인간이다. 내가 비용을 내기로 마음먹고 주사를 맞히려 병원을 알아보던 중 인근에 의료 협동조합 병원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 병원에서 아이의 사정을 알고 무료로 예방접종을 해 주었다. 일주일 간격으로 2회에 걸쳐 4가지 예방접종을 해 주고 비염 치료도 해 주었다. 마지막 접종일에 감사의 마음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서 아이와 함께 방문했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와 함께 걸어가는데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어머니, 아드님하고 함께 방문해 주세요.” 한다.

  “쌤이 우리 엄만 줄 알았나 봐요.”

  “내가 니 보호자 맞잖아.”

  “네-에?”     

순간 흔들리는 아이의 눈빛이 안쓰러워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는 비싼 딸기맛 쉐이크를 사주고 말았다. 


 (4) 기다리고 들어주고 손잡아주고

  Y의 가장 큰 문제는 화가 날 때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마구 폭력을 휘두르거나 욕설을 내뱉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친구들도 그를 멀리하게 하고, 교사들에게도 그를 최고의 문제아로 여기게 만들었다. 분노 폭발은 상대를 가리지 않았는데 한 번은 복도에서 자신을 놀리고 도망가는 M을 쫒아가는데 M이 계속 욕을 하고 놀리자 분노가 폭발하여 복도에 있는 소화기를 들고뛰게 되었다. 이 모습을 본 3학년 교사가 기겁을 하며 아이들을 불러 놓고 생활지도를 하였는데, Y는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반항을 하다 도망쳐 교실로 왔다. 의자와 책상을 발로 차며 계속 화를 내기에 밖으로 데리고 나와 심호흡을 하게 하고, Y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도록 했다. (결론은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혼낸 3학년 교사를 패 버리고 학교를 못 다니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3학년 선생님이 너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혼내서 화났구나?”

  “네, 제가 화낼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어떤 선생님이라도 소화기 들고 친구 때리려고 하는 장면을 봤는데 야단치지 않을 순 없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인 건 너도 알지?”

  “누가 진짜 소화기로 때린대요? 그냥 겁주려는 거지요.”

  “너의 그런 마음을 사람들이 알까? 그리고 잘못해서 진짜 사고가 나면 어쩌지?”     

  여러 가지 질문과 대답을 하며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정말 마음이 아팠지만 Y가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선생님은 항상 Y 네 편이지만, 네가 화가 나서 학교폭력을 하거나, 물건을 부수면 네 편을 들어줄 수 없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런데 넌 네 편 들어줄 엄마가 없잖아. 학교에서 문제 생기면 바로 달려와서 네 편 들어줄 사람 없잖아. 선생님은 그게 늘 걱정이야.”

  “......”     

한참을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던 Y는 쉬는 시간이 되자 3학년 선생님에게 가서 버릇없이 굴어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이 세상을 헤쳐나가려면 현실과 당당히 마주 서야 한다는 걸 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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