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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g Feb 17. 2018

올 더 머니 : 부(富)가 가진 빈(貧)의 속성






대부호 진 폴 게티의 손자의 납치사건을 영화한 '올 더 머니'는 충격적인 실화를 통해 부(富)가 가진 빈(貧)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제목(all the money)처럼 세상의 모든 돈을 가진 진 폴 게티지만, 그는 납치된 손자의 몸값을 지불하는데 꺼려한다. 영화의 핵심 플롯은 그런 진 폴 게티에게 아이의 몸값을 받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지만 영화의 주제는 익히 알려진 실화만은 아니다. 수년간 무방치 상태로 버려두었던 가족을 데려오는데도 일자리로, 사람을 고용하는데 있어서도 믿음이 아닌 계약관계로, 손자의 몸값에도 적당한 값이 있다며 손사래를 치는 진 폴 게티의 모습에서 우리는 '올 더 머니' 뒤에 존재하는 자본주의 천박한 모습을 발견한다. 



납치범들이 요규한 몸값은 1,700만 달러였다. 누군가에게는 큰 돈 이지만, 부자로 기네스북까지 오른 진 폴 게티에게는 그야 말로 껌값이다. 그 보다 더 큰 돈을 미술품을 사는데 소비하는 진 폴 게티의 모습을 보며 왜 그가 그렇게 아끼던 손자의 몸값을 지불하는데 꺼려하는지 의문이 든다. 납치 실화를 다루기에 영화는 스릴러 장르의 형태를 취할 것 같았지만, 영화는 이내 진 폴 게티의 내면에 침참하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15달러의 장식품을 오랜 협상 끝에 11달러 사고, 그것을 다시 값 메길수 없는 고가의 미술품으로 둔값시켜 손자에게 전달하는 진 폴 게티. 그는 자신의 가진 부를 뽑내지 않는다. 되려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 설명하고 실행한다. 떄떄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을 고수한다. 오랫동안 절충된 손자의 몸값을 끝끝내 전달하면서도 세금과 양육권을 협상의 카드로 제시한다. 거래와 협상이 일상화된 진폴 게티의 일상에서 거래화 되지 않는 것은 없다. 그가 하는 모든 대화와 행동은 거래를 위한 협상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는 지극히 바람직한 행동이지만, 그런 그의 모습에서 오히려 빈자의 궁색함이 느껴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세상의 모든 돈을 가진 진 폴 게티의 모습이지만, 그의 모습은 전혀 풍요롭거나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 든다. 돈이 없어 아들을 구하지 못해 피폐해지는 게일 해리스. 또 돈을 가졌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점점 궁색해 지는 진 폴 게티. 모든 것을 화례로 계량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둘 사이 간극은 엄청나지만, 행복의 정도에서 둘은 별반 차이가 없다. 이러한 간극과 대조를 통해서 영화는 승자없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맹점을 그린다. 가진 자도 가지지 못한 자도 모두가 불행해 지는 세상. 마치 영원을 소유할 것 처럼 돈은 우리들을 유혹하지만 그것은 한낱 숫자놀이이라는 것. 세상의 모든 돈을 가진 진폴게티 1세의 허망한 죽음을 통해 우리는 그 유혹의 허상을 꺠우친다. 영화 속 납치는 이탈리아 마피아에 납치된 진폴게티 3세만이 아니다. 돈과 자본에 붙잡혀 끝끝내 벗어나지 못한 진폴게티의 모습 역시 영화가 그러내고 있는 또 하나의 납치사건이다.



자본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영화는 공권력과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도 보인다. 진 폴 게티가 고용한 전 CIA요원보다 덜한 정보력으로 헛발질을 하는 공권력. 진전성 있는 보도없이 흥미성 가십과 속보경쟁만하는 언론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제대로 된 가치정립없이 무질서한 행위자들로 구성된 시스템을 바라본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 폴 게티3세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진폴게티3세의 엄마와 그를 납치한 친콴타이다. 이미 실화로 많은 내용이 밝혀져 있고, 대부분의 캐릭터가 교과서적이어서 영화의 재미가 덜했지만, 친콴타와 진폴게티 3세의 캐릭터의 의외성은 영화의 백미다. 세계 제일의 부호의 손자로 태어났지만 그는 영리하고 감정적이다. 물론 약간의 약물에 중독되어 있어보이지만, 그는 그를 납치한 이탈리아인 친관타 감정적인 교류를 이뤄낸다. 꽤나 건강하게 납치상황을 이겨내며, 떄로는 용감한 결정을 통해 어려움을 헤처나간다. 진폴게티 3세를 납치한 친콴타의 모습 또한 의외다. 자신이 납치한 진폴게티3세를 옆에서 돌봐주며 그와 인간적인 정서를 교류한다. 그 역시 돈을 벌기 위해 납치를 벌였지만, 그는 최대한의 비극을 막기 위해 협상하고 노력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끝끝내 자본의 결박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진폴게티와, 주변의 도움으로 자유를 찾는 진폴게티 3세의 극명한 대조를 통해 영화는 선명한 주제의식을 전한다. 돈은 자유를 선사할 것 같았지만, 끝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진폴게티는 결국 파멸하였다. 그뿐 아니라, 영화 속 돈에 집착한 모든 이들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파멸하였다. 모든 것에 가격표가 메겨지는 세상. 그것이 당연해진 시스템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은 다시 한번 '돈'의 의미를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 역시도 소중한 가치를 돈때문에 유예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역시 돈의 포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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