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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 May 25. 2020

이유가 없다는 것

26주 4일 내 아가를 보내며

유난히 서러 기분이 들던 한 주였다.

네가 갈 때가 되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던 걸까?


화요일


이틀간 태동이 거의 없어서 어린이날 오후 병원에 가서 태동검사를 했다. 다행히 수액을 맞자 는 다시 뱃속을 통통거리며 차기 시작했고 나는 안심을 했다.


주치의가 아니어서 그런지  크기를 엉망으로 재는 것처럼 보였다. 는 지난주 정기검진 때보다 50g도 채 늘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가 작고 양수가 적으니 물을 잘 마시고 잘 쉬라는 이야기를 듣고 매일 포카리스웨트 한 병과 루이보스 차 1L를 마시던 중이었다. 푹 쉬지 못한 탓에 네가 자라지 못한 것 같아 속상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양수 양은 늘었고  심장도 잘 뛰고 있었다.


수요일


그래도 안심이 안 되어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또 병원에 가서 주치의 진료를 보았고 주치의는 의 탯줄 혈류까지 꼼꼼히 확인해주었다. 다시 사이즈도 재어주었다. 어제 측정한 것보다 훨씬 크게 잡혔지만 그래도 여전히 예정일 기준 열흘 정도 늦은 크기였다.


잘 먹고 잘 쉬는 수밖에 없다는 말에 왜 그렇게 서럽고 눈물이 나던지. 는 잘 먹을 수도 잘 쉴 수도 없는 처지인데...


돌아오는 길에 정말 오랜만에 먹고 싶었던 만두를 2인분 사서 운전하며 거의 다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너를 가지고 내가 너를 위해 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저 첫째처럼 별 탈 없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임신은 병이 아니라는 말을 되새기며 안일하게 굴었지.


졸음은 쏟아지는데 J를 봐야 하니 커피를 입에 달고 살고, 입맛도 없다며 밥도 거르고... 고기를 챙겨 먹은 적도 없구나.


너를 위해 먹은 것이라고는 고작 포카리스웨트랑 루이보스가 다였네. 우리 아가가 먹고 싶다고 신호를 보낸 게 많았는데 밖에 나갈 수가 없으니 사러 갈 수도 없었고 괜히 돈도 아꼈어 아가야. 너무 미안해.


옷도 다 물려 입힌다고 하며 언니의 흔적이 가득한 옷들을 삶아서 지퍼백에 담아 챙길 때 많이 섭섭했겠다.


책들도 교구도 본전 뽑는다며 좋아할 때, 둘째는 이쁜 백화점 옷 안 사 입힐 거라며 우스갯소리할 때, 내가 첫째라서 첫째 더 챙길 거라고 말할 때 서운지?


금요일


그날 밤엔 유난히 서러웠다. J의 재접근기는 극에 달했고 만삭처럼 불러있는 내 배 위에서가 아니면 잠들지 않은지 몇 달이 지나고 있다.


남편 회사의 프로젝트도 임신 초기부터 새벽 6시에 출근해도 밤 9시에 퇴근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갔다.


나는... 나는 코로나가 터진 후로 J와 집에서 둘이 아침 7시부터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임신기간 내내  너무 힘들었다.


일주일에 하루라도 눕고 싶을 때 누워있다가 해주는 밥 먹으며 J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번듯한 친정이 있었다면  가 잘 컸을까 하는 생각에 새벽에 이불을 부여잡고 꺽꺽 울었다.


엄마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도 나는 왜 정말 정말 힘들 때 도와달라고 할 수가 없을까. 내가 너무 불쌍해서, 그저 내가 불쌍해서 꺽꺽 울었다.


네가 잘못되어 가는 줄도 모르고, 그 깜깜한 뱃속에서 혼자 외롭게 사그라들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저 내가 불쌍하다고 울고 있었다.


모자란 년.


울다가 문득 임신 내내 딴딴하던 가슴이 물렁해지는 기운이 들었다. 배도 꺼지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네가 가는 것도 못 느끼고 다음 검진일까지 2주를 기다렸다면... 내 새끼 죽은 것도 모르고 밥을 2주 동안이나 처먹은 둔한 년이라고 자책할 거리가 하나 더 늘었었을 텐데.


'난 그래도 너를 느끼고 있었어.'라는 생각로 애써 나를 그래도 너의 엄마였다고 우겨본다.


눈물이 그치지 않을 때 남편이 깨서 왜 그러냐고 물었나는 말했다. "아가 잘못됐을 거야."


남편은 믿지 않았고 그저 내가 기분이 안 좋아 막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무언가 굉장히 잘못되었다고.


다음날 아침 또 서둘러 병원엘 갔다.  왔냐는 의사의 말에 느낌이 이상해서 왔다하고 초음파 보러 들어갔다.


의사는 손쉽게 너의 얼굴을 찾아냈고 "여기 잘 있네요."라고 얘기했지만 난 눈물이 터졌다. 너의 표정은 이미 영원히 잠든 표정이었다.


의사는 우는 내게 네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 거야. 의사는 초음파로 심장을 찾았고 네 잎 클로버 모양의 심장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살면서 내가 보았던 장면 중에 가장 고통스럽고 참혹한 장면이었다. 당황한 의사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통곡하기 시작했다.


정말 죽었냐고 물어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의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 시기에 잘못되는 것에는 어떤 이유도 다고 했다.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고, 엄마가 잘못한 건 없다고 했다.


이유가 없으니 자책할 것도 없다고 말하는데, 이유도 없이 세상을 떠나게 된 너는 얼마나 억울할까.


정신도 없이 그날 입원해서 닫힌 경부를 하루 동안 천천히 열고 5시간 정도 진통을 한 뒤 너를 낳았다.


옆으로 누운 횡아여서 양막에 싸인 채 나와야만 네 몸을 상하게 하지 않고 온전히 꺼낼 수 있다고 했다. 양수 주머니가 터질까 봐 의사가 힘을 주라고 하면 주고 그만 주라고 하면 멈추고 숨도 못 쉰 채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정말 마지막 일이어서 그랬어. 널 온전하게 낳는 일.


미끄덩 양막이 빠져나오고 긴장이 풀리며 하루 동안 참았던 울음이 삐져나오기 시작할 때 의사는 나를 재웠다.


일어나서 널 보여달라고 했다.


겉싸개에 배냇저고리도 없이 쌓인 너를 안아 들었는데 그냥 잠든 아기 같았어. 마취에서 덜 깨서 그런 건지 정신을 붙들려고 해서 그런 건지 담담했다.


새빨갛던 입술, 그 작은 손가락들과 그 손가락 위의 손톱들. 벌써 새까맣게 나고 있던 곱실거리는 머리카락들. 아직도 그 이미지와 감촉이 하루에 수십 번도 더 생생하게 떠오른단다. 근데 네 얼굴은 기억이 나질 않아.


급하게 시킨 배냇저고리와 인형, 그리고 너를 품었던 동안 건넸던 태담보다 훨씬 길었던 편지를 담아 보내주었다. 분골은 생각보다 많았고 분골을 뿌리러 가기 전 하루 동안 품고 있었다.


뿌려주러 가겠다는데 분골이 담긴 봉투를 한참을 안고 보내질 못했다. '이건 이제 진짜 보내는 건데... 진짜 보내는 건데...'


이제 2주가 흘렀다. 그 2주 동안 엄마는 너를 품은 채 매일같이 고치고 또 고치면서도 발행할 용기를 못 냈던 글들을 3개나 발행했다.


누워서 가만히 인터넷을 하기엔 죄책감이 들었고, 울고만 있자니 그러기도 싫어서. 그런데 그렇게 글을 쓰고 밥을 먹고 하는 모든 일상이 죄스럽게 느껴진다.


그럴 필요는 없겠지. 너의 죽음엔 이유가 없고 내 잘못도 아닌 일이라고 들 말하니깐.


그런데 아가야,

네가 죽었는데 이유가 없다는 게 참 싫다.


그래서 미친 듯이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본다.


우리가 아직 너를 맞이할 만큼 성숙한 부모가 아니어서 그걸 깨닫게 해 주려고,


생명을 잉태하는 것을 손쉽게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려고,


우리 부부의 삶의 중심에 다시 '부' 아닌 '가족'을 놓게 하려고,


그리고 엄마 스스로도 좀 더 아끼고 돌보게 하려고,


그래서 네가 잠시 세상에 오는 걸 미뤘다고 생각한단다. 다음에 오는 아기도 분명 너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단다. 그렇게 믿는단다.


아가야, 다음에 오면 정말 소중하게 조심해서 널 품어줄게.


엄마 씩씩하게 잘 먹고 운동도 잘하면서 널 기다릴게.


그래도 혼자 쓸쓸히 뱃속에서 죽어간 걸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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