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에 접어들자 아이의 생떼가 눈에 띄게 늘었다. 그리고 '심술'이라는 능력을 새롭게 습득했다. "J 심술부려!"라고 친절하게 예고까지 해주면서 나를 테스트 하고 있다.
어제는 우유를 침대에 가지고 들어가더니 내 눈 앞에서 뚜껑을 열어 보란 듯이 이불에 콸콸 쏟아버렸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말았다. 아침부터 쌓인 화가 폭발한 것이다. 무서울 게 없다는 듯이 행동하던 아이는 내 사자후 한 방에 다시 연약한 어린아이 모드로 돌아가 울음을 터뜨렸다.
일단 우유를 급히 치우고 이불 빨래를 돌리면서 심호흡을 해보았다.'욘석이 엄마의 사랑과 인내를 시험해 보고 싶은가보네.'
다시 아이가 울고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아이를 꼭 안고 사과했다.
J, 엄마가 미안해.
무슨 일이 있어도 소리는 지르면 안 되는데 엄마가 못 참았어. 미안해.
갑자기 엄마 마음에 버럭이가 들어왔지 뭐야.
J는 엄마가 소리 지르니깐 마음이 어땠어?
슬펐어.
그랬구나. 그러면 엄마가 J한테 행복이 많이 줄게.
씩씩이도!
그래그래 씩씩이도 열 개 줄게!
J, 그리고 엄마가 항상 말하는 거 알지?
엄마가 J를 사랑하는 건 저얼대 변하지 않아. J가 이잉하고 짜증내고 으앙하고 울어도, 엄마는 항상 J 사랑해.
엄마가 화를 낼 때도 그건 변하지 않아.
그치만 엄마가 화를 내면 J가 슬프다고 하니깐 엄마가 더 조심할게
그렇게 화해를 하고 포옹과 뽀뽀를 한 스무 번 하고서는 으쌰으쌰해서 지내보고자 했건만 아이의 심술과 짜증은 곧 다시 시작되었고 나의 인내심도 다시 곧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코에서 용처럼 콧김이 뿜어져 나오려 할 때 아이에게 엄마 좀 안아 달라고 한 뒤 말을 건넸다.
J, 오늘 우리 참 힘든 날이다. 그치?
J도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고 엄마도 그렇네?
이런 날도 있는거지 뭐. 이런 날이 있을 수도 있어. 그런데 J, 내일은 괜찮을거야.
내일은 우리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날아갈 것 같을거야.
내일은 J가 너무 기분이 좋아서 블록놀이도 재밌고 책도 재밌고 모든 게 다 재밌을거야.
오늘은 우리 둘 다 힘드니깐 사탕이나 먹을까?
그럼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으니깐.
사실 아이에게 건네는 모든 말들은 슬픔밖에 기억나질 않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보내는 위로이다. 서른을 지나며 상담을 받고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보니 엄마에게 들어 상처 되었던 말들과 반대로 너무 듣고 싶었던 말들이 수도 없이 많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할 뿐이다.
듣기 싫었던 말은 절대 입밖으로 내지 않고 듣고 싶었던 말들은 많이 해주는 것 뿐이다. 아이에게 그 말들을 해 줄 때마다 내 안에서 아직 울고있는 어린 나도 같이 치유됨을 느낀다.
너가 어떻든 항상 널 사랑해. 오늘 참 힘든 날이네. 이런 날도 있는거지 뭐. 그치만 내일은 분명 괜찮아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