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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 Sep 29. 2020

어린 나에게 보내는 위로

이런 날도 있는거지 뭐. 내일은 괜찮아질거야.

30개월에 접어들자 아이의 생떼가 눈에 띄게 늘었다. 그리고 '심술'이라는 능력을 새롭게 습득했다. "J 심술부려!"라고 친절하게 예고까지 해주면서 나를 테스트 하고 있다.


어제는 우유를 침대에 가지고 들어가더니 내 눈 앞에서 뚜껑을 열어 보란 듯이 이불에 콸콸 쏟아버렸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말았다. 아침부터 쌓인 화가 폭발한 것이다. 무서울 게 없다는 듯이 행동하던 아이는 내 사자후 한 방에 다시 연약한 어린아이 모드로 돌아가 울음을 터뜨렸다.


일단 우유를 급히 치우고 이불 빨래를 돌리면서 심호흡을 해보았다. '욘석이 엄마의 사랑과 인내를 시험해 보고 싶은가보네.'


다시 아이가 울고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아이를 꼭 안고 사과했다.


J, 엄마가 미안해.

무슨 일이 있어도 소리는 지르면 안 되는데 엄마가 못 참았어. 미안해.

갑자기 엄마 마음에 버럭이가 들어왔지 뭐야.

J는 엄마가 소리 지르니깐 마음이 어땠어?


슬펐어.


그랬구나. 그러면 엄마가 J한테 행복이 많이 줄게.


씩씩이도!


그래그래 씩씩이도 열 개 줄게!

J, 그리고 엄마가 항상 말하는 거 알지?


엄마가 J를 사랑하는 건 저얼대 변하지 않아.
J가 이잉하고 짜증내고 으앙하고 울어도,
엄마는 항상 J 사랑해.


엄마가 화를 낼 때도 그건 변하지 않아.

그치만 엄마가 화를 내면 J가 슬프다고 하니깐 엄마가 더 조심할게


그렇게 화해를 하고 포옹과 뽀뽀를 한 스무 번 하고서는 으쌰으쌰해서 지내보고자 했건만 아이의 심술과 짜증은 곧 다시 시작되었고 나의 인내심도 다시 곧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코에서 용처럼 콧김이 뿜어져 나오려 할 때 아이에게 엄마 좀 안아 달라고 한 뒤 말을 건넸다.


J, 오늘 우리 참 힘든 날이다. 그치?

J도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고 엄마도 그렇네?


이런 날도 있는거지 뭐.
이런 날이 있을 수도 있어.
그런데 J, 내일은 괜찮을거야.


일은 우리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날아갈 것 같을거야.

내일은 J가 너무 기분이 좋아서 블록놀이도 재밌고 책도 재밌고 모든 게 다 재밌을거야.

오늘은 우리 둘 다 힘드니깐 사탕이나 먹을까?

그럼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으니깐.


사실 아이에게 건네는 모든 말들은 슬픔밖에 기억나질 않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보내는 위로이다. 서른을 지나며 상담을 받고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보니 엄마에게 들어 상처 되었던 말들과 반대로 너무 듣고 싶었던 말들이 수도 없이 많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할 뿐이다.


듣기 싫었던 말은 절대 입밖으로 내지 않고 듣고 싶었던 말들은 많이 해주는 것 뿐이다. 아이에게 그 말들을 해 줄 때마다 내 안에서 아직 울고있는 어린 나도 같이 치유됨을 느낀다.


너가 어떻든 항상 널 사랑해.
오늘 참 힘든 날이네.
이런 날도 있는거지 뭐.
그치만 내일은 분명 괜찮아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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