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나 Sep 24. 2022

부모의 타임프레임

비트코인이 나에게 알려준 것

늘 시속 80km 이상으로 달리던 우리의 속도는 부모가 된 뒤 시속 10km가 되었다. 주일이면 해냈을 일을 몇 달에 걸쳐 겨우 해내기도 하고, 늘 이 정도 달면 '성과'라는 휴게소를 보고도 남았던 것 같은데 가도가도 보이는 건 똑같은 풍경 뿐이다.


이쯤되면 나는 의심하게 된다.


내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내가 충분히 열심히 살지 않고 있나?


 아니라, 인생의 시기에 따라 적용해야 하는 타임프레임이 달라질 뿐이다. 부모가 된 후의 삶은 홀몸이었던 보다 조금 더 큰 타임프레임 안에서 봐야 그 움직임이 보인다.




작년 5월 부터 내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여다 보는 것이 있다. 바로 비트코인 차트이다.


내가 차트 공부를 시작하면서 참고하는 한 명의 인플루언가 있는데 그 분이 방송에서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러분 분봉 끄세요~!


분봉 끄고 1시간 봉이나 4시간 봉이 좀 움직인다 싶으면 그때 보는거에요. 나중에 여러분이 고수가 되시잖아요? 4시간 봉도 잘 안 봐요~ 일봉이나 주봉 보지.

드래곤들(2017년 이전에 코인을 사놓은 거물들)은 아마 1년에 한 번씩 열어볼라나?"


분봉은 봉이 1분에 하나씩 만들어지고, 1시간 봉은 1시간에 하나씩 만들어지고 하는 개념이다.

5분 봉 disaster


4시간 봉으로 같은 구간을 봤을때 (저 박스가 9%면 왼쪽의 저 폭락은 몇 퍼센트였던거야...)


위와 아래 그림에 보라색 박스로 표시된 부분은 같은 움직임을 5분봉으로 볼 때와 4시간 봉으로 볼 때의 차이를 보여준다. 


의 5분봉 차트로 보면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등락이 9%정도로 적지 않은 편이긴 했지만 아래 4시간 봉 차트에서 알 수 있듯이 전체 차트의 큰 타임프레임 상에서 볼 때는 별로 큰 움직임이 아니었다.


저 시간 동안 1분봉, 5분봉을 켜 놓고 보이는 급격한 움직임에 나만 놓고 출발하는 거 아닌가 싶어 급하게 사면 떨어지고, 대폭락이다 싶어 아차싶어 매도버튼 누르면 갑자기 오른다.


그렇게 정신없이 분 단위로 buy/sell을 반복하고 다음날 정신차려 보면 비트 가격은 제자리인데 내 계좌만 녹아내린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다.


나또한 그런  코린이 시절을 거쳐 계좌를 냠냠 맛있게 녹여먹고 1년 반 정도 차트를 매일 같이 들여다보 매매도 꾸준히 하다보니 비트의 속도에 어느 정도 적응해 가고 있는듯하다. 새는 주로 주봉이나 일봉을 들여다 보고 진입시점을 잴 때만 시간봉을 활용하는 편이다.


비트코인의 속도에 적응했다는 것은


비트코인을 어떤 타임프레임에서 라봐야 하는지 알게된다는 것이다.


가 느끼기에 충분히 기다렸어도 것보다  오래 기다려야 무언가 일어나게 됨을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승을 놓쳐도 나중에 기회는 온다는 걸 알 섣부른 결정을  가진 것을 잃는 바보같은 짓을 덜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나절 새 9%의 변동성을 보여도 쉽게 환호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맷집이 생겼단 뜻이기도 하다.


크게 바라보고,
크게 먹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부모가 된 후의 삶의 속도에 적응한다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


부모가 된 지 만 5년이 거의 다 되어 가도록 나는 내 개인의 인생에선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약 3년 전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발행한 글은 30개를 넘지 못했고, 6년전 시작한 심리학 학사 위과정은 아직도 2과목을 더 이수해야 한다.


그런데 조금 더 큰 타임프레임으로 바라보면 난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약 30년동안 적지않은 등락을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성장했다. 지금은 엄마가 되고 6년째 지지부진하고 있다. 앞으로 나의 여명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30~40여년 남아있다. 느끼기엔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인생의 아주 짧은 시간동안만 멈춰있었다는 말이다.


조급해 질 때, 내 능력과 성실함을 의심하게 될 때 나는 그 70~80년이라는 틀에서 바라다. 


당장의 9%의 상승이나 하락보다는 마지막에 나는 어느 지점에 있고 싶은 지를 바라보며 바닥이 나올 때마다 좌절하거나 손절해 버리지 않고 조금씩 담는 것이다.


그렇게 부모가 된 후의 삶의 속도에 적응을 하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본전. 가족을 잃는 선택을 섣불리 하지 않을 수 있고, 그 길고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눈앞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조급함과 불행함에 찌들기 보다는 더 큰 것을 바라보게 된다.


마지막에 내 인생 차트와 함께 내 아이의 차트를 열어보면 내가 멈춰있는 이 기간 동안 아이는 평생을 가져갈 절대 깨지지 않을 바닥을 단단히 다지며 성장하고 있었기를.


내가 부모가 된 후로 멈춰서 다진 이 구간이 나머지 내 인생의 든든한 바닥역할을 해서 도약하는 삶을 살아냈기를.


이게 비트코인이 나한테서 거금을 삥 뜯어가고 알려준 지혜인가보다.

비트코인....복수할거야
이전 09화 양육의 본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