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시속 80km 이상으로 달리던 우리의 속도는 부모가 된 뒤 시속 10km가 되었다. 일주일이면 해냈을 일을 몇 달에 걸쳐 겨우 해내기도 하고, 늘 이 정도 달리면 '성과'라는 휴게소를 보고도 남았던 것 같은데 가도가도 보이는 건 똑같은 풍경 뿐이다.
이쯤되면 나는 의심하게 된다.
내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내가 충분히 열심히 살지 않고 있나?
그게 아니라, 인생의 시기에 따라 적용해야 하는 타임프레임이 달라질 뿐이다. 부모가 된 후의 삶은 홀몸이었던 때보다조금 더 큰 타임프레임 안에서 봐야 그 움직임이 보인다.
작년 5월 부터 내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여다 보는 것이 있다. 바로 비트코인 차트이다.
내가 차트 공부를 시작하면서 참고하는 한 명의 인플루언서가 있는데 그 분이 방송에서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러분 분봉 끄세요~!
분봉 끄고 1시간 봉이나 4시간 봉이 좀 움직인다 싶으면 그때 보는거에요. 나중에 여러분이 고수가 되시잖아요? 4시간 봉도 잘 안 봐요~ 일봉이나 주봉 보지.
드래곤들(2017년 이전에 코인을 사놓은 거물들)은 아마 1년에 한 번씩 열어볼라나?"
분봉은 봉이 1분에 하나씩 만들어지고, 1시간 봉은 1시간에 하나씩 만들어지고 하는 개념이다.
5분 봉 disaster
4시간 봉으로 같은 구간을 봤을때 (저 박스가 9%면 왼쪽의 저 폭락은 몇 퍼센트였던거야...)
위와 아래 그림에 보라색 박스로 표시된 부분은 같은움직임을 5분봉으로 볼 때와 4시간 봉으로 볼 때의 차이를 보여준다.
위의 5분봉 차트로 보면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등락이 9%정도로 적지 않은 편이긴 했지만 아래 4시간 봉 차트에서 알 수 있듯이 전체 차트의 큰 타임프레임 상에서 볼 때는 별로 큰 움직임이 아니었다.
저 시간 동안 1분봉, 5분봉을 켜 놓고 보이는 급격한 움직임에 나만 놓고 출발하는 거 아닌가 싶어 급하게 사면 떨어지고, 대폭락이다 싶어 아차싶어 매도버튼 누르면 갑자기 오른다.
그렇게 정신없이 분 단위로 buy/sell을 반복하고 다음날 정신차려 보면 비트 가격은 제자리인데 내 계좌만 녹아내린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다.
나또한 그런 코린이 시절을 거쳐 계좌를 냠냠 맛있게 녹여먹고 1년 반 정도 차트를 매일 같이 들여다보며 매매도 꾸준히 하다보니 비트의 속도에 어느정도 적응해 가고 있는듯하다. 요새는 주로 주봉이나 일봉을 들여다 보고 진입시점을 잴 때만 시간봉을 활용하는 편이다.
비트코인의 속도에 적응했다는 것은
비트코인을 어떤 타임프레임에서 바라봐야 하는지 알게된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충분히 기다렸어도그것보다더 오래 기다려야 무언가 일어나게 됨을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상승을놓쳐도 나중에 기회는 또 온다는 걸 알고 섣부른 결정을 해서 가진 것을 잃는 바보같은 짓을 덜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나절 새 9%의 변동성을 보여도 쉽게 환호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맷집이 생겼단 뜻이기도 하다.
크게 바라보고, 크게 먹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부모가 된 후의 삶의 속도에 적응한다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
부모가 된 지 만 5년이 거의 다 되어 가도록 나는 내 개인의 인생에선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약 3년 전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발행한 글은 30개를 넘지 못했고, 6년전 시작한 심리학 학사 학위과정은 아직도 2과목을 더 이수해야 한다.
그런데 조금 더 큰 타임프레임으로 바라보면 난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약 30년동안 적지않은 등락을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성장했다. 지금은 엄마가 되고 6년째 지지부진하고 있다. 앞으로 나의 여명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30~40여년 남아있다. 느끼기엔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인생의 아주 짧은 시간동안만 멈춰있었다는 말이다.
조급해 질 때, 내 능력과 성실함을 의심하게 될 때 나는 그 70~80년이라는 큰 틀에서 바라본다.
당장의 9%의 상승이나 하락보다는 마지막에 나는 어느 지점에 있고 싶은 지를 바라보며 바닥이 나올때마다 좌절하거나 손절해 버리지 않고 조금씩 담는 것이다.
그렇게 부모가 된 후의 삶의 속도에 적응을 하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본전. 가족을 잃는 선택을 섣불리 하지 않을 수 있고, 그 길고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눈앞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조급함과 불행함에 찌들기 보다는 더 큰 것을 바라보게 된다.
마지막에 내 인생 차트와 함께 내 아이의 차트를 열어보면 내가 멈춰있는 이 기간 동안 아이는 평생을 가져갈 절대 깨지지 않을 바닥을 단단히 다지며 성장하고 있었기를.
내가 부모가 된 후로 멈춰서 다진 이 구간이 나머지 내 인생의 든든한 바닥역할을 해서 도약하는 삶을 살아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