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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 Jun 17. 2020

엄마 셀프 돌봄

얘, 너 진짜 그렇게 살지마.
애한테 너무 매여서 그렇게 살지 말란 얘기야.

내 화장대를 들여다 본 시어머니의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휑한 화장대에서 들켜버린 것은 나를 지나치게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스킨과 에센스를 안 바른지는 1년이 넘어가고 있었고 J 로션만 치덕치덕 바르고 있었다. 미용실에 가서는 늘 "간신히 묶일 정도로 짧게요. 빨리 마르게 최대한 가볍게 잘라주세요."라는 주문만 했다. 잘하지도 못하는 인터넷 쇼핑을 주말 내내 해서 시킨 옷들은 항상 입지도 못할 거적때기들이었다. 그래서 매일 옷 입는 것이 고민이었다. 나 자신을 돌보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되었다. 시간과 돈을 나에게 쓰지 않으면 J한테 더 많이 쓸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이제는 조금 조절이 필요해 보였다. 


퇴사 후 첫 월요일 아침이 떠오른다. 아침에 세수하고 앉아서 스킨을 화장솜에 묻혀 정성껏 얼굴을 닦아내고 에센스를 듬뿍 떨어뜨려서 얼굴을 한 50번쯤 두들기고 로션도 한 50번쯤 두들겨 발랐었더랬다. 매일 아침 숙취로 간신히 로션만 바르고 회사에 가서 화장으로 덮던 날들과 비교되며 나 스스로를 돌본다는 느낌에 충만한 감정을 느꼈었다. 


얼마 후 미용실을 예약했다.층이 많아 손질이 어려운 컷을 부탁했고 염색도 했다. 머리만 바꿨을 뿐인데도 옛날의 폼이 나온다. 다음날은 백화점에 가서 화장품과 옷을 주워 담았다. 남편은 지루함에 짜증 내는 J에게 "엄마가 여태 너무 엄마 꺼를 안 샀어. 우리 엄마 것 좀 사게 해주자."라며 달랬다. 


요새는 아침저녁으로 화장품을 네 가지씩이나 착착착 몇십 번씩 두들겨가며 바른다. 머리도 매일 드라이하고 옷도 될 수 있으면 훌렁 입었다 벗는 원피스가 아닌 티셔츠와 바지로 챙겨 입는다. 샤워할 때마다 뒤꿈치의 각질도 충분히 시간을 들여 열심히 밀어 본다.


나에게 시간을 조금 더 쓰고 있다.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하거나 친구를 만난다거나 하는 것도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일이긴 하지만 그것들은 그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른답게 잘 보내는 방법들이다.


그런 일들로 빈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없는 시간과 돈을 쪼개어 나를 돌보는 데 애쓰고 있다. 조금 피곤하고 귀찮지만 나를 돌보아본다. 돌보아지는 느낌은 내 영혼을 충만하게 하고 그 충만한 영혼으로 내 아이를 돌본다.


나의 소중한 딸이 나중에 엄마가 되었을 때에 스스로를 소중하게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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