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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 Aug 03. 2020

이런 세상에 아이를 왜 낳아요?

당신도 대단한 이유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는걸요.

가끔 미혼 친구들로부터  질문이 있다. 표제처럼 자극적이고 예의 없는 질문은 아니지만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결심한 이유 같은 게 있었어?"라는 꽤나 진중한 질문이다.


음, 그런 거 없었는데.




비혼과 저출산의 기사에 꼭 달리는 질문 형식의 댓글이 있다.

"이런 희망 없는 세상에 내가 미쳤다고 애를 낳냐?"


1+1로 따라오는 비난도 있다.

'이런 세상에 아이나 싸질러 놓는 무책임한 것들'


읽을 때는 '에휴 저 등신~' 하고 말지만 그 질문과 비난은 사실 꽤 큰 무게로 다가온다. 연일 이어지는 시끄러운 세상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울 때마다, 미세먼지 때문에 하루 종일 창문을 열 수 없을 때마다 한없이 아이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걸 보면 그렇다.


그래. 나는 무책임한 짓을 해버렸다.


수능 비문학 지문에 단골로 등장하던 '엔트로피'가 떠오르는 요즘이다. 질서에서 무질서한 것으로 변해가는 그 속도감이 유난히 잘 느껴진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얼마나 더 혼돈스러울 것인가?


모험을 극도로 지양하는 내가 어쩌자고 이 불확실한 세상에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던가?


꽤 오래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는 그저 이끌렸을 뿐이다.'한낱 인간'이라는 수식어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상황이 있을까?


잔혹하게 접근하자면 '유전자의 생존 기계'에 불과한 한낱 인간이기에 종족 번식의 욕구에 이끌렸을 뿐이다. 그래도 생각을 좀 할 수 있는 동물에 속하는지라 무분별하게 번식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 안도한다.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주님의 계획하심에 이끌리어 순종하였다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완전무결한 이유도 존재한다.


우리는 자녀 계획을 세운다고 표현하지만 그저 시기와 방법만 계획할 뿐이다. 계획안의 1번 항목으로 적혀야 할 목적 조차 알지 못한 채 무언가에 이끌려 계획을 세운다. 그 목적은 유전자 혹은 조물주만 아는 것이다. 웃기지 않는가?


사실 목적이 있어서 아이를 낳았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이를 낳는 것에 아이를 위한 목적이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좋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말이 받아들여질 만큼 좋은 세상이라면 모를까. '가족의 완성'을 위해서라는 이유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얼마나 부모 중심적인 발상인지 생각해보라. '배우자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어서'라는 이유도 같은 관점에서 참 별로다.


손쉽게 '모든 것은 주님의 계획이십니다. 아멘.'으로 낼 수도 있는 문지만 내 믿음이 연약한 탓일까 자꾸 형이하학적인 접근을 하게 된다.


사실만 놓고 보았을 때 우리는 뚜렷한 목적도 대책도 없이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이전 몇 개의 글에서도 내비쳤듯이 나는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부모의 의사와 행위에 의해서 세상에 태어남을 당했다'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아이에 대한 우리의 '원죄'인 것이다.


이 '원죄'가 없어지는 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두 가지 방안이 있었다.


주님께서 너의 탄생과 삶을 모두 계획하셨다는 확고한 신앙을 아이에게 물려주던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이 고되어도 행복하다고,
그래도 태어나 살아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던가.



서두에서 언급한 댓글들을 쓰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고하고 싶다.


당신 말대로 나는 이 살기 힘든 세상에 대책도 없이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당신이 태어날 때에도 그렇게 세상이 녹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 부모님이 당신을 낳았듯 우리도 별 이유 없이 아이를 낳았다.


혹시나 당신이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된 내 아이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면

나는 내 아이가 이 험하고 불안한 세상에서도 감사함과 행복함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그렇게 키울 테니, 그것을 우리가 누구보다 더 간절히 바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그리고 나의 딸 J와 동시대를 살아가게 될 친구들의 부모님께도 말을 건네어 본다.


미세먼지와 코로나로 마음껏 뛰어놀 수는 없지만,

언제고 전쟁이 날 수도 있지만,

지구가 언제까지 인간을 견뎌내 줄지 알 수 없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이지만


당신과 내가 인생의 매순간 작은 행복의 부스러기를 찾아 해맑게 기뻐할 줄 아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들이 이 세상을 사는 것이 고되어도 행복하다고, 그래도 태어나 살아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을 우리를 통해 배울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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