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의 기간 중 미리 예정되어 있던 여름 휴가 3일을 제외하고는 출근을 해야했다. 아이를 데리고.
아이는 이제 제법 (친)할아버지의 공장으로 엄마와 출근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거부를 하거나 하지 않는다. 참 감사한 일이다.
공장으로 야무지게 캐리어를 끌고 들어가는 아이
나는 둘째 임신 10주차의 임산부였다. 사산 이력도 있는데다 피고임까지 생겨 의사가 여름휴가는 생각도 하지 말고 집안일도 하지 말고 누워서 쉬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터였다. 근데 아이를 데리고 출근이라니...
나혼자 출근했을 때는 일처리를 하고 틈틈히 누워서 쉴 수 있었지만 아이와 함께있으면 그게 불가능하다. 일하는 중간에 끼니와 간식을 챙겨야 하고 아이가 혼자놀다 지치면 바닥에 앉아 뭐라도 하고 놀아주어야 한다.그렇게 길고긴 1주일의 셧다운 기간이 지나고 아이의 찐 방학이 시작되었다.
여름휴가를 가지 말라는 의사 두 분의 당부를 무시하고, 방학때 뭐했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가 서글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여행을 떠났다. 아이가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는 것 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
아빠도 신났네 고생했어 여보
여행에서 돌아오니 대여해둔 에어바운스가 도착해있었다. 에어바운스를 펼쳐주니 아이는 또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처음보는 활력으로 몇 시간을 뛰었다.
대단한 에어바운서
3일만에 나의 여름휴가는 끝났지만 아이의 방학은 끝나지 않았다. 또다시 아이를 데리고 출근했다가 집에 와서 노는데 혼자 노는 아이가 심심해 보여 친구네까지 불러 이틀동안 저녁을 해 먹이며 놀았다.
친구네가 떠나고 이젠 슬슬 연휴를 마무리 하려 했다. 나는 쇼파에 누워있고 남편이 모든 뒷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한이 들며 아랫배와 허벅지가 경련을 하기 시작했다. 배는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늘 그랬던 것 같다. 신기할 정도로 아프지 않다가 큰 일이 끝나고 나면 그 끝에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초음파를 보고 이것저것 검사를 하고선 유산방지 주사를 처방해주었다. 피고임이 작지 않고 아기집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쉬어야 한단다. 아마 피고임을 내보내려 자궁이 수축을 했을것이라 한다.
다음날 결국 피를 보았고 어제까지 6일을 꼬박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남편이 전적으로 아이를 케어했고 나는 먹고 누워있기만 했다. 누워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핸드폰으로 글을 써보려 했지만 누워서 글을 쓴다는 건 참 힘든 일이더라. 유튜브만 하루 종일 보았다.
결국 나는 아이 유치원의 셧다운, 방학, 임신 이벤트로 꼬박 3주간 나의 것을 전혀 하지 못했다.
지난 번 둘째 임신때는 임신과육아로 인해 나, '혜나'라는 개인이 사회적인 생산성을 상실하는 것에 큰 좌절을 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나의 생산성과 가치를 증명하려첫째가 잠들면 책을 펼치고, 글을 쓰고, 스트레스로 잠을 못 자고. 그러다 결국 거의 다 키웠던 뚠동이를배속에서 잃고 말았지...
그 후로 2년이 흘렀고, 엄마가 된 지 만 4년 반. 지금은 이런 것에 많이 초연해 진 듯 하다.
임신과 육아로 인해예기치 않게 3주간내 모든 계획이일시정지됐음에도 나는 조급해지거나 억울해지지않았다.
임신과 육아란 본디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가족과 나눌 것을 전제로 하는 일이니깐.
커리어 중심으로 돌아가던 예전의 삶 뿐만 아니라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지금 또한 내 삶이니깐.
조급함과 억울함 때문에 버둥거리며 양육자의 숙명을 거부하고 개인으로서의 '나'를 주장할수록 엄마가 아닐 수 없는 나도, 엄마나 아내를 필요로 하는 가족도 상한다는 것을 이젠 경험으로 안다.
그저 느긋하게 "허허"... 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 뿐이다.
그러다 이렇게 양육자의 의무와 책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틈이 생기면 기뻐하며 나 개인의 것을 재빠르게 행할 뿐이다.
해가 지날 수록 그 틈이 많아짐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둘째까지 좀 크면 내 삶이 자유로워 질 것이라고 쉽게 기대하거나, 진지한 '개인적' 계획을 세우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