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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승혁 Jul 27. 2020

퇴근하고 초밥 한 점

퇴근하고 초밥 한 점

동네 오마카세에서 호기롭게 가장 비싼 '스페셜'을 시켰다. 처음이었다. 꼬리를 길게 뺀 농어 초밥을 간장에 담갔다. 대바늘로 코를 찌른 듯 비강이 아렸다. 붉고 기름진 참치뱃살. 치즈처럼 입 속에 엉겨드는데. 아. 어른이 되었구나. 밥벌이도 하고. 비싼 밥도 먹고. 스트레스도 받고. 찡그리며 훈계하는 어른이 되었구나. 싶은 것이었다. 이제는 혼밥도 잘하는 나이.

전화통을 붙잡고 받지 않는 상대를 기다렸다. 시장이 죽었는데 수돗물에서 유충이 나왔고, 여성부가 회의하는데 소방청은 자료를 냈다. 뒤죽박죽. 머릿속에서 이 모든 일이 치즈처럼 엉겨붙어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서넛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볼 때면 무참히 부러웠다가, 갑자기 화가 났으며, 나중에는 죄책감이 들었다. 둑에 난 구멍을 양손과 양발로 막고 있는데 계속 구멍이 많아졌다. 어찌되었든 뚫린 구멍은 온전히 나의 탓이었다. 뇌가 땀에 절어 곤죽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젓가락으로 겨자색 성게알을 집었다. 뒷목에 에어컨 바람이 닿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저 가만히 바람이 지나길 바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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