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시장을 좋아해

아장아장 정치부15│국민의당 안철수 천정배 시장에 가다

by 고승혁


흰 색 위생모를 쓴 만두가게 아주머니가 환호하며 달려왔다. 두터운 패딩 점퍼를 입은 옷가게 남자 사장님은 다짜고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어머"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 보다 잘 생겼네" "사진 찍어주세요" 곳곳에서 반가움 섞인 인사가 쏟아졌다.


安 "제가 머리가 커서 안 맞을 것 같은데ㅎㅎ" (실제 발언) / 뉴스1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어색한 미소를 띤 채 연신 "열심히 하겠습니다" 악수하며 인사했다. 정치 혐오와 불신이 만연한 세상이라지만 정치인을 보고도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진 한 번 찍자며 덥석 안 대표와 팔짱을 낀 아주머니가 소녀처럼 까르르 웃었다. 아주머니의 친구는 물결처럼 굽이치는 검은 머리칼을 목 뒤로 넘기며 분홍색 케이스로 꾸민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대도상가에서 겨울 옷을 파는 한 아주머니는 "철수 오빠 잘생겼다" 외치며 "장사 좀 잘되게 해주세요" 소리쳤다. 어찌 됐든 싱글벙글 웃는 상인들을 보니 안 대표를 취재하는 나조차 기분이 좋아졌다.


"현금 영수증 처리 해주세요" / 오마이뉴스


팝스타에게 콘서트장이 있다면 정치인에게는 시장이 있다.


정치인이야 시민들에게 말씀 좀 듣고 힘을 드리겠다며 시장에 가지만 실제로 시장에서 힘을 얻는 건 시민보다는 정치인이었다. 낡은 나무의자에 앉아 볕을 쬐고 있던 할아버지는 오른손을 들어 안 대표의 어깨를 두드리며 "잘 하라"고 격려했다. 국숫집 아주머니는 안 대표의 흰 손을 연신 쓰다듬으며 "장사가 너무 안 돼요. 잘 되게 해주세요"라 말하며 웃었다. 어느 영험한 산절에 가서 아들 낳게 해준다는 불상을 어루만지듯 사람들은 안 대표와 사진 찍고 그를 토닥이며 활짝 웃었다. 경기가 어렵다는 투정조차 말갛게 미소 지으며 하는 상인들 앞에서 안 대표는 고개를 숙이고, 손을 잡고, 다짐을 반복했다. 옆에 선 나는 상인들의 바람과 안 대표의 표정을 재빠르게 적어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어찌 됐든(?) 먹방으로 대통령이 됐다 / 뉴시스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치인의 소품'은 바로 '음식'이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정치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땀 흘리며 국 밥 한 그릇 뚝딱 비워 단숨에 소탈한 이미지를 얻었다. 진중한 표정으로 쌀 한 톨마저 귀히 여기는 자세로 밥을 죽기 살기로 먹는 자에게 돌을 던질 순 없는 법이었다. 배고픔은 서민의 정서였고 배고픔을 아는 자에게 표를 주고 싶은 게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물론 나랏돈으로 개인 땅을 사고 친형마저 부패 혐의로 구속된 이명박정권은 배가 고파도 너무 고팠었다.


음식을 남기면 엄마가 싫어한다 / 연합뉴스


반면 안 대표는 웬만해선 상인들이 준 음식을 다 먹지 않았다. 두어 번 입을 대고서 보좌관에게 남은 음식을 넘겼다. 대전 신도시장에서 상인이 준 고구마튀김을 남긴 그는 남대문 시장에서도 좀 체 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 한 분식집 사장님이 커다란 무쇠솥에서 튀긴 팥소가 든 도넛을 안 대표에게 건넸자 그는 두 번 정도 깨물더니 잔해를 보좌관에게 넘겨줬다. 그가 설탕이 묻은 손을 두 번 '탈탈' 털자 지켜보는 내가 민망해졌다. 다만 옆에 선 천정배 대표가 정말 맛있다는 표정으로 냠냠 빵을 전부 먹어치워 현장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넘어갔다. 안 대표는 만두집에서도 사진만 찍고 나왔다. 그는 남대문 시장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국수집에서 사장님이 "장사가 너무 안 되는데 국수라도 먹고 가요" 권하자 애매한 웃음으로 사양하기도 했다.


대권을 잡으시려면 아프리카 티비 먹방을 봐야 한다 / 뉴시스


나는 안 대표가 음식점에 인사하러 갈 때마다 민망한 상황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하며 혼자 조마조마해졌다. 동시에 그가 절실한 배고픔에 공감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당연하게도 시장에서 음식을 잘 먹는다고 '좋은 정치인'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시장에서 음식을 잘 먹는 정치인이 '성공한 정치인'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또한 배고픔을 이해하는 모든 사람이 좋은 정치인이 되는 건 아니지만 배고픔조차 모르는 사람이 좋은 정치인이 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음식을 바라보며 나는 상인들이 안 대표에게 건넨 호의를 곱씹어봤다.


환호하며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정신없이 인사하다 보면 소소한 사고(?)가 생기기도 한다. 천정배 대표는 골목길에서 시민들과 악수하다가 뜬금없이 자신을 수행하던 당직자 손을 잡고 인사를 해 취재진을 웃게 만들었다. 안 대표는 한 젊은 여성 손을 잡고 설 덕담을 건넸는데, 그녀가 너무 황당한 표정으로 일본어를 마구 내뱉기도 했다. 너누구야?!!! 어찌 됐던 사람들은 '안철수'를 좋아했다. 웃으며 힘내라고 손 잡아주고 탈당한 뒤 얼마나 고생이 많냐고 울먹이며 '공감'하는 지지자도 있었다.


국장! 저 일해요! / 뉴스1


정치인은 시장을 좋아한다.

시장 상인들도 정치인을 환호하며 반겨준다.


다만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도 자신들이 정치인의 '배경 소품'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만큼, 나는 정치인이 조금 더 진중한 자세로 시장에 가야 한다고 느꼈다. 작년에 안 대표가 전주 남부시장을 방문한 직후 한 청년 상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치인이 시장에 오는 거 싫어요. 도지사도 왔고 문재인 대표도 왔고 대통령도 왔는데 변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20분 사진 찍고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다들 시장시장 말로만 하지 아무것도 안 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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