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을 찾는 사람들

아장아장 정치부 14│다짜고짜 '안철수'를 찾는 사람들

by 고승혁

국민의당│안철수를 찾는 사람들


안철수의 책 / 출처미상


좁은 구멍으로 좁쌀만 한 알갱이가 몰려드는 모래시계처럼,

정당의 당사에는 수많은 목소리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검정 코트를 점잖게 빼 입은 노신사, 등산복 차림으로 붉은 얼굴을 들이미는 중년 남성, 목소리 톤이 미묘하게 화려한 여성 등 다양한 사람들이 '국민의당 당사'에 찾아온다. 키가 훤칠하고 몸이 마른 중년 남성 한 분은 "총선 필승 전략을 가져왔다"며 당직자에게 빠른 말을 더듬어 보인다. 긴 머리를 맵시 있게 올린 여성 자원봉사자는 기자실에 구운 계란을 내어놓으며 내심 기사가 잘 나가기 바란다. 당사 현관 데스크에는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당직자는 송화기에 대고 "국민의당이 아직 당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예비후보 등록을 하시기 어렵지 않을까요"라고 구구절절 설명한다.

급하게 쏟아내는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보니, 그동안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하게 살았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각자 마음속에 '말 보따리' 하나씩 품고 당사의 문을 연다. 누군가가 '새정치'를 한다고 하니 혹시 '말 보따리' 하나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입을 연다. 허무맹랑한 소리부터 진지한 탄식까지, 왁자지껄 쏟아지는 자음과 모음마다 각각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안철수 너 나와" / www.sinnanda.com


당사에는 특히 다짜고짜 안철수를 찾는 사람이 많이 온다.


빨간 점퍼를 입은 중년 남성 한 사람은 기자 브리핑 룸에 들어와 "안철수 어딨냐. 나도 국민인데 만나야지"라고 소란을 피웠다. 그는 당직자가 이곳은 기자실이니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자고 달래자 "나도 기자다. 1인 기자야"라고 소리를 쳤다. 한 여성은 수차례 전화를 걸어 "안철수를 혼자서 면담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만남이 어렵다고 하자 "안철수의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일정을 알려달라"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안타깝게도 당직자 역시 안 의원의 일정을 몰랐다. 자신을 총선 예비후보라고 소개한 또 다른 여성 한 분은 당사 빌딩 입구에서 당직자를 만나자 "안철수 오늘 오나요?"라고 끊임없이 물었다.


훈계짤 / zum 학습백과


안철수를 찾지 않는다면 총선 필승 전략을 알려주거나 훈계하러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떤 강마른 할아버지는 특이하게도 20여분 간 당직자 한 명을 붙잡고 "박근혜 대통령 정치 똑바로 하라"고 훈계를 늘어놓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각성해야 된다는 얘기도 했다. 당직자는 "할아버님. 이런 이야기는 새누리당 당사에 가서 하시면 더 좋지 않을까요"라고 누그러진 표정으로 토닥였지만 그를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곳에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에 화가 난 사람들이 종종 찾아오곤 했다.


안철수를 보여주며 유권자의 시선을 잠시 돌려 놓는다 / 패닉119


현관 당직자들은 '정치 심리치료사'라는 새 업종을 개척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으며 끄덕끄덕 토닥토닥, 수첩에 얘기를 적어가며 그저 듣고 대꾸했다. 나는 정치인들이 일방적으로 내 말만 들으라며 시끄러운 뽕짝과 연설을 거대한 스피커로 쏘아대는 것 보다 '정치 심리치료사'처럼 끄덕거리는 것이 더 효과적인 선거운동이 아닐까 생각했다. 노련한 현관의 치료사들은 공감 섞인 웃음과 투정 섞인 한탄으로 말 보따리 상인들을 훌륭하게 접대했다. 그러나 당사의 나이팅게일들의 활약이 현실 정치의 변화로 연결될지는 미지수였다.


국립 4.19민주묘지 / blog.daum.net/joingi61


4.19 민주혁명회│당사에 와서 한상진을 찾다


여느 때와 같이 민원인이 소란을 피우는 줄 알았다.


국민의당 출입기자 단톡 방에 "술 마신 할아버지가 당사에서 고성을 지른다"는 메시지가 왔다. 괘념치 않았만 의아했다. 온갖 사람들이 당사에 찾아왔고 소란은 잦았기에 굳이 알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기사를 다 쓰고 나니 현장 상황이 정리된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할아버지는 4.19 민주혁명 참가자라고 했다. 심상치 않았다. 바로 전 주에 한상진 국민의당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이 4.19 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에게 '국부'라고 해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술 마신 할아버지에게는 한쪽 팔이 없다고 했다. 열여덟 살에 4.19민주혁명에 참가한 그는 경찰이 쏜 총에 맞아 팔을 잃었다. 이날 경찰은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사람들에게 사격했다. 서울 시내에서 시민 185명이 총에 맞아 죽었고 1500여 명이 다쳤다.


할아버지는 술에 취한 채 이승만을 '국부(國父)'라고 표현한 국민의당 한상진 공동창당준비위원장에게 소리를 질렀다. "감히 역사를 왜곡해! 이승만이 국부라고?" "내가 팔에 총을 맞아서 외팔이야. 근데 한상진이가 이승만이가 국부라고?" 고성이 끊이지 않았다. 함께 동행한 다른 할아버지가 "이렇게 하면 술 먹은 것 밖에 안돼"라며 간곡히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분노로 일그러진 불콰한 얼굴로 할아버지는 "내가 얼마나 열 받으면 이렇게 오겠어. 한상진이, 이승만이 국부라고? 이런 개새끼가 있냐 이 말이야. 한상진이는 기회주의자야. 위선자야"라고 외쳤다. 당직자는 "나가서 이야기하시죠"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간략하게나마 보도된 내용이다.


보도되지 않은 내용은 이렇다. 할아버지는 한 위원장만을 나무라지 않았다. 나가는 길에 기자들을 향해서도 쏘아붙였다. "아침 5시부터 여기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어. 너희들 취재 한 번 했어? 너희들 왜 하고 있냐고 말 한마디 했어?" 그는 "젊은 놈들 역사를 공부해"라고 기자에게도 일갈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1월 마지막 주 정치기사



더 읽어볼거리


이전 13화연말, 정치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