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장아장 정치부11|광주 전주에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을 이길 수 있을까
안철수 전주•광주 일정 취재일기
살랑거리며 하늘하늘 내려왔다. 스웨터의 보풀처럼 살포시 부푼 눈송이가 시린 볼에 닿았다. 차가운 공기가 날카롭게 콧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정안 휴게소에서 내렸다. 하늘도 땅도 온 통 비어있는 듯했다.
이제 곧 전주였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산 뒤, 빈 속에 버터를 발라 구워낸 모카번을 한입 물었다. 차임벨로 잔뜩 꾸밈음을 넣은 크리스마스 캐럴이 휴게소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뜨거운 버터가 입 안에서 질척거렸다. 그 사이 두꺼운 점퍼를 입은 안철수 의원실 비서관 선배가 아메리카노와 핫초코 등 차 5잔을 샀다. 한 일간지 선배는 뜨거운 아메리카노, 보도전문 방송 선배는 핫초코를 골랐다고 했다. 비서관 선배는 감기가 조금 나아졌다고 했지만 아직도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나와 선배는 뜨거운 음료를 종이 캐리어에 나눠 담아 고속버스로 돌아갔다. 몇몇 기자는 벌써부터 기사를 쓰느라 분주하게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창밖을 보니 하얀 눈송이가 모빌처럼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윽고 버스가 출발했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 흔들리는 와이퍼 너머를 바라보았다. 차창을 향해 달려드는 눈발 사이로 잔상처럼 고속도로가 흐릿했다.
안철수 의원은 전주에서 청년 창업가들을 면담하기로 했다. 기자들은 안 의원보다 먼저 남부시장에 위치한 '청년몰'에 도착했다. 곳곳에 레이스로 치장한 디저트 가게와 노란 문이 달린 소품점 등이 있었다. 좁은 가게의 선반에는 귀여운 복주머니들이 진열돼있었다. 카페 한쪽에 놓인 석유난로 위에는 주전자가 펄펄 끓고 있었다. 마치 옷장 문을 열고 들어간 동화 속 세상 같았다.
기자들은 '취재'란 본분을 잊고 관광객이 되어 사진을 찍고 소품을 구경했다. 모모 일보 선배는 현장 상황을 본사에 보고하기만 하면 될 뿐 기사가 잡히지 않았다며 만면에 행복한 미소를 띤 채 쿠키 쇼핑에 나섰다. 정론관에서 풀려난 국회 기자들은 성난 메뚜기떼가 되어 온갖 구경거리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집어삼켰다.
한 상인회 관계자는 이 모든 장면을 "정신없다"는 말로 정리했다.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이런 것 좀 그만했으면 싶다"고 했다.
그도 처음에는 정치인과 언론의 관심이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표도 오고, 도지사도 오고, 시장도 오고, 국회의원도 오고 다 왔지만 시장에서 무슨 말을 하든 듣는 척만 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정치인의 방문이 그저 피곤하기만 하다고 매우 정중하게 말했다. 나는 초코볼이 박힌 귀여운 쿠키를 와작와작 뜯어먹으며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 의원은 이곳에서 20여 분간 청년 창업가를 만난 뒤 광주로 떠났다. 청년들은 그에게 직설적으로 말했다. "정치인들이 여기 와서 예쁘니까 사진 찍고 우릴 이용하는 것 같다" "20분간 만나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겠냐" "5년간 같은 민원을 온갖 정치인들한테 했는데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정치혐오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었다. 안 의원은 청년들에게 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청년들은 그 말 또한 수 십 번 들었을 터였다.
고속버스에서 내리자 찬 공기가 빈 목을 급습했다.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멀리 흰 칠을 한 옛 전남도청이 보였다. 전두환이 국군을 동원해 시민들에게 총질을 한 곳이었다. 나는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장소를 실제 눈으로 훑어보며 이곳이 광주임을 실감했다. 아시아문화전당으로 재단장한 옛 도청은 할리우드에나 어울릴 법한 핀 라이트를 받아 도심 한가운데서 어색하게 빛났다.
살면서 단 두 번 광주에 와 본 나는 광주의 모든 것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첫 번째 광주 방문은 문재인을 따라왔고, 두 번째 광주 방문은 안철수를 따라왔었다. 반장은 내게 '야권 분열'에 대한 광주 민심을 르포로 써보라고 했다. 새까만 다이어리를 옆구리에 끼고 양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충장로와 금남로를 돌아다니며 행인을 붙잡고 무작정 '민심'을 물어보았다. 계속 같은 길에서 마주치는 '도를 아십니까'와 경쟁하며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야 했다.
다행히 사람들은 '도'보다는 '정치'를 덜 혐오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계속 거절당하는 '도를 아십니까' 옆에서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취재를 했다. 무엇보다도 광주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보다 대답을 잘 해줬고, 정치에 대해 잘 알았다.
다만 한결같이 '새정치민주연합'이란 단어만 들으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갓 성인이 된 19살부터 화려한 꽃무늬 점퍼를 입은 69세 할머니까지 마찬가지였다. 한 할아버지는 차마 글로 옮기기 민망한 쌍욕을 매우 빠르게 내뱉었다. 기사에는 그나마 약한 욕인 '개판'만 들어갔다. 그 할아버지의 친구는 난데없이 발로 뻥 돌을 찼다.
나는 차라리 '도를 아십니까'처럼 거절당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남 민심이 '새정치연합'에 대해 나쁘다는 여론조사는 나쁜 민심의 '양'만 알려주었지 '깊이'를 알려주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부분의 시민들은 '새정치연합'이란 당 보다도 '문재인 대표' 개인을 매우 싫어했다.
선배는 취재 결과를 보고 전화를 걸어 "대부분 사람들이 문 대표가 잘못했다고 말한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대부분이 아니고 전부입니다"라고 답했다. 정치기사는 균형이 중요한데, 민심이 균형적이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안 의원에 대해서 마냥 호의적인 건 아니었다. 물론 완벽히 좋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문 대표가 싫으니 일단 지지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결국 기사에는 '대부분의 시민들' '시민 상당수'가 '야권 분열'의 책임을 문 대표에게 물었다는 표현으로 정리했다.
내 기사 쫌 전진배치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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