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표정들, '밀당'

아장아장 정치부 10. 안철수 문재인 양초의 노답 밀당

by 고승혁

12월 6일. 안철수 기자회견


톤이 높았다. 말의 높낮이가 구릉처럼 비탈져 급해 보였다. 조명을 받아 번들거리는 얼굴이 조금씩 붉어졌다. 이따금씩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는 거절당했던 과거의 말을 카메라 앞에서 반복했다. 목소리는 말린 북어포처럼 딱딱했고 주저앉은 입꼬리 때문에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그의 지그럭대는 소리가 모래알처럼 입속에서 굴러다녔다.


"욕은 안 썼겠지?" / 국민일보


쨍쨍한 방송용 조명 아래서 안철수 의원은 우두커니 서서 원고를 읽었다. 나는 그가 기자회견장으로 걸어오는 걸 처음 보았다. 그는 기자를 찾아오기 보다는 기자를 부르는 사람이었다. 의원회관의 널찍한 간담회실에 앉아 준비한 말을 여유롭게 한 뒤 이런저런 질문에 답하곤 했다. 늘 넥타이가 목선 아래로 바르게 떨어졌다. 입을 모아 수줍게 웃었다. 가느다란 눈매가 선해 보였다.


"리슨 내 이야기를 들어봐" / 국민일보


벌써 네 달 째 문재인 대표와 안 의원은 날 선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흔한 정치였다. 문 대표가 '혁신'하자고 제안하면 안 의원이 '혁신'하자며 거절했다. 안 의원은 '혁신'을 달라고 했고 문 대표는 '혁신'을 줬다고 했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지루한 장대비가 언제 그칠지 나는 알지 못했다. 둑이 터져 마을이 잠길 때까지 퍼부을 모양이었다. 잠깐 비를 그을 곳도 없었다.


안 의원은 자신이 준비해온 말이 끝나자마자 기자회견장을 나섰다. 질문을 받지 않았다. 방송용 카메라와 수십 명의 취재기자가 부나방처럼 그에게 달려들었다.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왼손에 쥔 녹음기를 안 의원 턱밑까지 갖다 붙였다.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복도에 주저앉아 안 대표의 대답 없음을 보고했다. 다리가 저렸다. 요즘은 잠시만 쪼그려 앉아도 힘이 들었다. 왼쪽 종아리에 감각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복도에 가만히 서있었다. 신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철수는 '장고'를 위한 '칩거'에 들어갔다.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 국민일보


12월 8일. 문재인 관훈토론회


질문은 공격적이었다. 한숨이 끊이지 않았고 자주 고개를 떨구었다. 발작적으로 큰 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여울에 접어든 강물처럼 급하게 쏟아져나오는 말들이 생각을 앞질러 가기도 했다. 목과 턱이 만나는 평평한 곳부터 귀 밑 언저리까지 붉어졌다. 혀 아래 침이 고여 말소리가 뭉개졌다. 시종일관 진지했고 진지해서 딱딱했다. 말과 말이 부딪을 때마다 새빨간 폭음이 어금니를 떨리게 만들었다. 나는 그의 말을 모니터에 옮겨 적기 위하여 연신 키보드를 두드렸다. 리듬이 깨진 격앙된 말은 받아치기 어려웠다. 키보드 위의 손을 그대로 건반 위로 옮긴다면 초조한 불협화음이 흘러나올 터였다. 어쩌면 고저가 깨진 파열음이 문재인의 말보다 그의 마음을 더 잘 드러낼지도 몰랐다.

꽁치 하나를 고양이 다섯에게 던져주면 안 된다 / 국민일보


문재인 대표는 솔직하게 날 것 그대로의 반응을 보였다. 사실 관계가 잘못된 질문을 던진 사회자에게 질문을 거둬달라고도 했다. 큰 소리로 버럭 말하기도 했다. 같은 시간 주승용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표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했다. 도미노처럼 문 대표에 등 돌리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 와중에 '친노'라 불리는 노영민 의원은 사무실에 신용카드 단말기를 두고 자신의 시집을 공공기관에 판매해 논란이 됐다.

문 대표는 시시각각 녹고 있는 빙판 위에 서있었다. 입지는 점점 좁아지기만 했다. 카메라 앞에서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 의원이 요구한 전당대회를 절대로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신 자신과 안 의원이 함께하는 공동대표 체제는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표 역시 안 의원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어제의 신문이 오늘 신문 같았고 내일의 신문은 그제의 것과 같을 터였다.

우앙!! 내꺼야!!/ 국민일보


이날 저녁 문 대표는 합정역 근처 카페에서 열린 국민 TV의 토크콘서트에 참석했다. 그는 얼굴 가죽이 흘러내린 듯 울상이었다. 피곤해 보였다. 목이 잠겨있었고 말수가 적었다. 눈에 띄게 천천히 말했다. 당대표는 그러니까 무척이나 힘든 직업인 모양이었다.

나는 카페 구석에 앉아 터덜터덜 그의 말을 주워 담았다. 토크콘서트 사회자가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웠다. 도종환 의원에게 시를 낭송할 것을 부탁했다. 도 의원은 흔쾌히 자신의 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를 읊었다. 사회자가 문 대표를 향해 웃어 보이며 "역사상 이렇게 흔들리는 당대표가 또 있었을까요" 농담을 던졌다. 사람들이 깔깔대며 박수를 쳤다. 문 대표는 작은 소리로 "요즘 간당간당합니다"라고 되받았다. 행사가 끝난 뒤 문 대표는 녹음기를 내미는 기자들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수행비서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말했다. 문 대표는 떠났다. 남은 당직자와 기자는 말린 대구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셨다.


이날 밤에는 "간당간당"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갔다.


"철수야 어금니 꽉 물어라" / 국민일보


그게 그 기사 같겠지만 기자 책임이 아니다. 둘이 맨날 똑같이 싸워서 그런 거다.



*아장아장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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