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장아장 정치부12│안철수와 내부자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의 당명 개정
대선주자는 성기를 드라이버 삼아 스트레이트 잔으로 도미노를 했다. 부정한 언론인은 도끼로 오른손이 잘려나갔다. 참신한 더러움이 시도 때도 없이 스크린에서 흘러나왔다. 캄캄한 영화관에 앉아 짭쪼름한 팝콘이나 먹으며 한 세월 즐겨보겠다던 내 야망은 가차 없이 무너졌다. 영화는 적나라했고 불편했으며 지저분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함께 보는 관객(?) 구성이 부적절했다. 송년을 맞이해 영화나 한 편 보자는 안철수 의원의 말을 순진하게 믿었던 내가 죄인이었다. 새정치를 하겠다는 안 의원은 '구정치'를 보여줄 요량으로 기자들을 CGV로 유인했다. 트랩에 걸려든 기자들은 꼼짝없이 '내부자들'을 봐야 했다. 재미는 있었다.
그리하여 전 대선주자 안철수와 전담기자(마크맨)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대선주자와 언론인이 난교 파티를 벌이는 영화를 보게 됐다. 대선주자 출신 안철수 의원은 "이 영화 19금이네"라며 멋쩍게 웃었고 기자들은 깡패가 도끼로 언론인의 손목을 내리치는 장면에서 고개를 돌렸다. 안 의원은 이 영화를 마치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양 "너무 폭력적이다"라고 혼잣말을 읊조렸다. 그는 송년을 맞이해 기자들에게 기자 손 자르는 영화를 보여주고서 수줍어했다. 나는 왼손으로 내 오른손 팔목을 더듬으며 온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았다. 손목이 잘릴만한 글을 쓰지 말라는 교훈을 곱씹어 보며 불 켜진 상영관을 나왔다. 다만 안 의원은 영화 상영 전 이런저런 예고편이 안 나왔다며 아쉬워했다. CGV는 대관한 사람들에게는 예고편을 안 보여주는 모양이었다.
진실은 본디 불편하다. 안 의원은 "우리 원래 안 저렇잖아요"하면서도 "이 영화를 600만명이나 봤다는 건 사람들이 공감하고 공명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술자리에서 보쌈과 육전을 먹으며 영화를 통해 새정치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영화에 나오는 미래 자동차... 조국 일보... 다 빨간색으로 된 신정당... 아슬아슬하다"며 "한국 사회의 변화를 향한 열망이 영화에 들어있다"고 평했다. 막걸리를 홀짝이며 나는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으로 홍어무침과 호박전을 집어먹었다.
그러나 정치혐오에 기댄 정치 비판은 영화감독도 기자도 복덕방 아저씨도 종편에 나오는 치과의사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혐오 너머의 정치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오로지 정치인만이 자신의 이상을 현실정치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행동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 의원은 아직도 구체적인 플랜을 내놓지 않았다는 지적에 시달린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안 의원이 제시한 새정치의 10가지 조건 중 7가지가 더불어민주당의 정강 정책과 같다고 한다. 또한 안 의원은 신당이 개인 정당이 아니라고 강변했지만, 아직까지 신당의 정체성이 안철수라는 인물에게 귀속돼 있는 건 사실이었다. '명망가 중심의 인물 정당'이라는 더민주의 비판을 피해가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했다. 거기에 더해서 '새정치'를 상징할만한 '새로운 콘텐츠'와 '새로운 인물'도 있어야 했다. 저변은 넓지만 깊이가 얕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위해선 '분명한 정체성'이 확립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급진지하게 마무리;;
안철수 영화 관람 관련 한겨레 기사 (한겨레 선배는 잔인한 장면마다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ㅜㅜ)
정말 '민주소나무당'으로 이름을 바꿨다면 나는 부끄러워 질뻔했다. 어디 가서 "소나무당 출입기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건 보통 낯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네티즌들이 '식물정당'이라고 놀려댈 게 빤했고 나는 월간 '전원생활' 기자와 특종 경쟁을 벌였을 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전국의 소나무가 '재선충'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다. 이와 중에 제1야당 이름이 소나무가 된다면 '재선'충 때문에 당이 흔들린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 것이었다.
이런저런 비판이 있지만 아무튼 '더불어민주당'이 화제가 된 건 사실이다. 덕분에 네티즌들이 하루 동안 즐거웠(?)으니 오랜만에 야당이 국민들에게 기쁨(?)을 줬다고도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신문기자에게는 '새정치민주연합'보다 '더불어민주당'이 쿼티 키보드로 치기 훨씬 편해서 좋다. 약칭도 '새정치연합'에서 '더민주'로 변했으니 정치인의 말을 재빠르게 받아쳐야 하는 입장에서는 일이 수월해졌다. 자고로 당명은 한글 두벌 자판으로 치기 편해야 한다.
다만 총선을 코 앞에 두고 당명이 바뀌자 보좌관들이 바빠졌다. 명함부터 시작해서 의정보고서 등 모든 홍보물을 새로 뽑아야만 했다. 게다가 원외 정당인 '민주당' (당사가 마포에 있어서 속칭 마포민주당)은 '더불어민주당'이 자신의 당명과 유사하다며 법원에 유사당명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낼 예정이다. 민주당 김도균 대변인은 "더불어 민주당이 되면, 더불어 정의당, 더불어 새누리당 다 만들 수 있지 않느냐"며 "그러면 유권자들이 어떻게 정당을 구별할 수 있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원외 민주당 측은 새정치연합이 이름을 '더민주당'으로 바꾸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더불어 더불어 민주당' 창당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더민주당'에 맞서 '더더민주당'을 만들겠단 것이다. 그다음은 더더더더더더민주당...?
당연하게도 두 당의 '민주당 이름 지키기' 싸움에 '이름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 선비님 공자왈 같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안철수 의원이 탈당했으니 내용이 바뀐 것 아니냐"며 당명 개정이 정당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안 의원은 "이제 안철수없당이다" "더불어터진당"과 같은 트위터 드립을 구사하며 기자들을 당혹스러운 유모어 천국으로 인도하고 있다.
당명이 어찌 됐든 야권의 총선 승리가 요원하다는 정치평론가와 교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 정신없는 봉숭아학당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다. 다만 안도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말로 한글 두벌 자판으로 치기 너무 힘들다. 다들 시도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과 더민주를 치면서 효율적인 쿼티 배치를 만끽하길 추천한다.
[기획기사]2016년 총선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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