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에 진심인 편
어렸을 적 “아홉 살 인생”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60년대를 배경으로 철이 일찍 들어버린 한 소년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였다.
나와 닮은 주인공을 보며 그 소설에서 느낀 것은 감동보다는 슬픔이었다.
아홉 살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현실과 감정들.
그래서일까?
나는 아홉 살인 큰 아이의 생각과 감정이 무척 궁금하다.
겉으로 보기엔 자기 주도적인 아이지만 그 나이 때 조숙했던 나는 나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기에 내가 보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어릴 적 조숙함이 싫었기에 남편에게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딱 그 나이 때의 평범한 아이들처럼 자랐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 글들을 보고는 “하!” 하는 안도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월요일
월요일 짜증나
시간이 안가
그런데
더 짜증 나는 화요일
화요일
응~ 그닥그래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어
이제 수요일
수요일
학교 끝 학원 끝
학원 또 끝 태권도 끝
존재감 제로
목요일
나이스 좀 있으면
금요일, 좀 더 있으면
토요일 나이스!
금요일
와~ 드디어
금요일 예! 좀 있으면
토요일 빨리 와라
토요일
예! 토요일이다
친구들이랑 놀아야지
게임도 해야지
일요일
아 좀 있으면
월요일 아
짜증나
천진난만하다 못해 이렇게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나 싶을 정도다.
“엄마, 이 글 학교 선생님이 보시면 나 혼나겠지?”
“엄마는 솔직하게 잘 써서 개성 있고 좋은데!”
글과 함께 그린 그림에 깨알 같은 재미도 있다.
월요일의 12시 23분쯤을 그려 넣은 시계 그림은 학교 하교 시간인 12시 30분까지 정말 더디게 가는 것을 표현했다.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 이렇게 느릴 수 있다는 것을 “아” 하는 짧은 한 마디로 나타낸 것인데
나도 “아! 저건 내 아들이군” 그 순간 어떤 표정이었을지 아들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졌다.
화요일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니 드러누워 있는 것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 듯하다.
수요일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 수요일이었는지 모를 정도라니 수요일은 “0” 존재감 제로란다.
목요일부터 주말을 기다리는 마음은 직장인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목요일이라는 문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이 무척 즐거워 보인다.
사실 토요일 그림은 도통 의미를 모르겠다. 빨리 친구들과 놀고 싶어서 후다닥 그린 듯.
매일 놀아도 또 놀고 싶고 학교 안 가고 놀고 싶지만 친구들이 학교를 다 가니 학교 가서 놀겠다는 아이.
그렇게 노는 게 좋니?
일요일은 좋은데 곧 월요일이 온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고
월요일은 ‘왜 나만 욕먹어’라며 쓴 글이 우프다.
아홉 살인 너는 매일매일을 그렇게 살고 있었구나.
사실, 엄마도 그때 그랬어.
월요일부터 주말이 기다려지고 학교 가는 게 싫은 날도 있었고
공부하기 싫고 매일 놀고 싶었어.
근데 한 번도 그렇다는 걸 말해 본 적이 없었어.
그래서 다들 엄마가 공부를 좋아하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라고 생각했지.
근데 엄마는 그건 아홉 살의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해.
맘껏 놀고, 매일 놀아도 또 놀고 싶고, 하루 종일 어떻게 놀까 생각하는 게 참된 아홉 살 인생 같아.
그렇게 자라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