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서연이의 색깔 세상

마음의 색깔을 보는 아이

by 시더로즈

3화: 서연이의 색깔 세상



8살 김서연은 크레파스 상자를 들고 미술학원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날이었다.

하지만 서연이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어떤 색깔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색깔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서연이는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달랐다. 사람들의 감정이 색깔로 보였다.


기쁘면 노란색, 슬프면 파란색, 화나면 빨간색, 평온하면 초록색...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다 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유치원에서 "선생님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어요!"라고 말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때서야 자신만 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엄마 아빠에게 말해봤지만 "서연이가 상상력이 풍부하구나"라며 웃어넘겼다. 그래서 이제는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다.


미술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여러 아이들이 보였다. 그리고 당연히 각자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색깔들도.


"서연아, 안녕!"


단짝 친구 지유가 손을 흔들었다. 지유의 머리 위에는 연두색이 둥둥 떠 있었다. 설렘의 색깔이었다.


"지유야! 안녕!"


서연이가 지유 옆에 앉으려는데,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구석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남자아이였다. 이름은 민준이. 얼마 전에 이사 와서 새로 들어온 아이였다.


민준이의 머리 위에는 짙은 회색 구름이 끼어 있었다. 외로움과 슬픔이 뒤섞인 색깔이었다.

서연이는 자꾸만 민준이가 신경 쓰였다. 저렇게 외로워 보이는 아이를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선생님, 민준이 옆에 앉아도 돼요?"


"물론이지. 민준아, 서연이가 옆에 앉는다."


민준이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서연이가 옆에 앉자 민준이의 회색 구름이 조금 연해졌다. 아주 조금이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안녕, 나는 김서연이야. 너는?"

"...이민준."

"민준아, 어디서 왔어?"


"대구에서 왔어."


"와, 대구! 나는 한 번도 안 가봤어. 어때? 서울이랑 다르니?"


민준이가 처음으로 서연이를 똑바로 봤다. 회색 구름에 작은 노란 점이 생겼다.


"음... 좀 달라.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아."


"맞아, 나도 가끔 어지러워. 그런데 사람이 많으면 재미있는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어!"

그때였다.


서연이의 눈꼬리가 살짝 따끔거렸다. 마치 무언가가 그려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민준이의 회색 구름 속에서 다른 색깔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숨어있던 주황색 그리움, 연두색 호기심, 분홍색 따뜻함...


어? 이상해.

서연이는 눈을 비볐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겉으로 드러난 감정만 볼 수 있었는데, 마음속 깊은 곳의 색깔까지 보인다니.


"서연아, 너 눈이 왜 그래?"

지유가 신기한 듯 물었다.


"내 눈이 어때서?"


"눈꼬리가 반짝반짝해. 예쁘다!"

서연이는 손으로 눈꼬리를 만져봤지만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자, 이제 그림 그려볼까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오늘 주제는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에요. 어떤 색깔이든 상관없어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색깔로 자유롭게 그려보세요."


서연이는 민준이를 슬쩍 봤다. 여전히 회색 구름이 있었지만, 이제 그 안에 숨겨진 예쁜 색깔들도 보였다.

민준이도 마음속에는 예쁜 색깔들이 많이 있구나.


서연이는 크레파스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먼저 회색으로 구름을 그렸다. 그 다음에는 구름 속에서 여러 색깔들이 나오는 모습을 그렸다. 노란색, 주황색, 분홍색, 연두색...



마지막에는 구름 위에 무지개를 그렸다.


"와, 서연이 그림 예쁘다!"

옆에서 보던 아이들이 감탄했다.

"이게 뭐야?"

민준이도 관심을 보였다.


"음... 슬픈 구름이야. 하지만 구름 속에는 예쁜 색깔들이 많이 숨어있어. 그리고 언젠가는 무지개가 될 거야."

서연이가 설명하자, 민준이의 눈이 커졌다.


"정말?"

"응! 슬픈 마음도 언젠가는 기쁜 마음이 될 수 있어. 구름 뒤에는 항상 해가 있거든."


민준이의 회색 구름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리고 그 안의 예쁜 색깔들이 더욱 선명해졌다.


"나도 그런 그림 그리고 싶어."

"그럼 같이 그릴까?"

"정말?"


"당연하지!"


두 아이는 나란히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서연이는 민준이에게 색깔 쓰는 법을 알려주고, 민준이는 서연이에게 대구 이야기를 들려줬다.


수업이 끝날 무렵, 민준이의 머리 위 구름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대신 밝은 노란색과 주황색이 떠 있었다.

"서연아, 고마워."

"뭐가?"

"친구가 되어줘서."


서연이는 환하게 웃었다. 누군가의 색깔이 밝아지는 걸 보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다.

집에 돌아온 서연이는 화장실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양쪽 눈꼬리에 작은 무지개 모양의 표식이 생겨 있었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이 번갈아가며 반짝이고 있었다.


"엄마!"


서연이가 엄마를 불렀다.

"왜, 서연아?"

"엄마, 제 눈 좀 봐주세요."


엄마가 서연이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어? 뭔가 있나?"

"눈꼬리에 무지개 같은 게 있지 않아요?"

엄마는 더 자세히 봤지만 고개를 갸우뚱했다.


"서연아,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혹시 어디 다쳤어?"

엄마는 안 보이는구나.

서연이는 실망했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표식이라니.

그날 밤, 서연이는 가방에서 작은 씨앗을 꺼냈다. 며칠 전부터 가지고 다니던 투명한 크리스털 같은 씨앗이었다.



지금 그 씨앗이 무지개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게 진짜 마법인가?

며칠 전 꾼 꿈이 떠올랐다. 구름 위의 신비한 농장에서 친절한 할머니를 만났던 꿈. 그때 할머니가 이 씨앗을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이건 감정의 씨앗이야. 사람들의 마음을 볼 수 있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는 씨앗이지."

그때는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었나보다.

서연이는 씨앗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바라봤다.

내가 정말 마법사야?


씨앗이 더욱 밝게 반짝였다. 마치 "그래, 맞아!"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다음 날 학교에서도 신기한 일이 계속 일어났다.

쉬는 시간에 혼자 울고 있던 같은 반 수민이를 발견했다. 수민이의 머리 위에는 진한 파란색이 떠 있었다.


"수민아, 왜 울어?"

"서연아... 어제 강아지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수술을 해야 한대."

서연이의 눈꼬리 표식이 부드럽게 빛났다. 그리고 수민이의 파란 슬픔 속에서 분홍색 사랑이 보였다.


"수민아, 너 강아지 정말 많이 사랑하는구나."

"응..."

"그 사랑이 강아지에게 전해질 거야. 사랑받는 강아지는 꼭 나을 거야."


서연이가 수민이의 손을 잡자, 파란색이 조금씩 연해졌다.


"정말?"

"응, 정말이야. 너의 사랑이 강아지에게 힘을 줄 거야."


며칠 후, 수민이의 강아지는 정말로 수술을 잘 마치고 건강해졌다.

점심시간에는 화가 나서 혼자 있던 태현이를 도왔다. 태현이의 머리 위에는 빨간색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태현아, 무슨 일이야?"

"친구들이 내가 만든 레고를 부쉈어!"


서연이는 태현이의 빨간 분노 속에서 노란색 창의성과 주황색 열정을 볼 수 있었다.


"태현아, 너 레고 정말 잘 만들지. 어떻게 그렇게 멋진걸 만들 수 있어?"

"정말?"

"응! 나는 그렇게 못 만들어. 너는 정말 대단해."

태현이의 빨간색이 점점 주황색으로, 그리고 노란색으로 변했다.

"그럼 다시 만들어볼까?"

"응! 이번엔 더 멋지게 만들어볼게!"



한 달이 지나자, 서연이의 학교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

서연이가 있는 곳마다 아이들의 갈등이 줄어들었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아졌다.


"서연이는 정말 신기한 아이야."


담임선생님이 다른 선생님께 말씀하시는 걸 서연이가 들었다.


"어떻게 친구들의 마음을 그렇게 잘 알아줄까? 그 아이가 있으면 교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맞아요. 서연이는 친구들의 감정을 정말 잘 읽어주는 것 같아요."

서연이는 뿌듯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이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어느 날 오후, 서연이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다시 그 구름 위의 농장에 있었다.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잘하고 있구나, 서연아."

"할머니! 정말로 마법이었어요?"

"그래. 네가 가진 마법은 아주 특별한 거야. 사람들의 마음을 보고, 아픈 마음을 치유해주는 마법이지."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 너희는 총 일곱 명이야. 각자 다른 씨앗을, 다른 마법을 가지고 있지."

할머니가 농장을 가리켰다. 여러 화분들에서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도 씨앗을 키우고 있구나."

"언젠가 만날 수 있어요?"

"때가 되면 만나게 될 거야. 그때까지 네 씨앗을 잘 키워라."

꿈에서 깨어난 서연이는 창밖을 바라봤다.


어디선가 자신처럼 사람들을 도우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연이는 씨앗을 꼭 쥐고 다짐했다.


그때까지 더 많은 친구들을 도와줄 거야. 모든 사람들이 예쁜 색깔을 가질 수 있도록.

눈꼬리의 무지개 표식이 따뜻하게 반짝였다. 마치 "잘하고 있어"라고 격려하는 것처럼.

그리고 서연이는 알았다.


진정한 마법은 화려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 마음이 있는 한, 세상의 모든 색깔이 더욱 아름답게 빛날 것이라는 것을.




4화에서 계속

다음 화에서는 정성이 담긴 음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순자 씨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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