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한 밤의 꿈

한 민들레

by 시더로즈



1화: 민들레가 발견한 비밀


민들레는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9번 출구로 올라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로 벌써 스물다섯 번째 면접이었다. 그리고 스물다섯 번째 탈락이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조금 더 경험이 쌓이면..."


면접관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경험을 쌓으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을 하려면 경험이 있어야 한다니. 이 모순적인 상황이 그녀를 점점 더 막막하게 만들었다.

스물한 살, 대학교2학년. 이제 졸업까지 한 학기밖에 남지 않았는데 앞길이 막막했다. 친구들은 하나둘 취업이 결정되어 가는데, 자신만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민들레는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려 했지만, 오늘도 깜빡했다. 설상가상이었다.


"진짜 최악이야..."


그녀는 비를 피하기 위해 근처 건물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다. 홍대 특유의 좁은 골목길이었다. 평소에는 지나치지 않는 길이었는데, 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온 곳이었다.

비가 점점 더 세게 내렸다. 민들레는 폰을 꺼내 날씨 앱을 확인했다. 한 시간은 더 내릴 예정이었다.


"하... 진짜."

그때였다.


골목 끝에서 이상한 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네온사인 같기도 하고, 가로등 같기도 했는데, 뭔가 달랐다. 더 부드럽고, 더 따뜻한 빛이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어차피 비도 오고, 갈 곳도 없으니 한번 가봐도 될 것 같았다.

민들레는 비를 맞으며 그 빛을 향해 걸어갔다.

골목을 따라 걸어가니 더욱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홍대 골목길인데, 주변 풍경이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술집과 카페들이 사라지고, 오래된 한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

민들레는 뒤를 돌아봤다. 방금 전까지 있던 골목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이게 뭐지?"

당황했지만, 이상하게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어릴 때 할머니 집에 놀러 갔을 때처럼.

민들레는 계속 걸었다. 한옥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니, 어느새 작은 언덕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구름 위에 농장이 있었다.

정확히는 구름과 구름 사이, 하늘에 떠 있는 작은 땅덩어리 위에 조성된 농장이었다. 곳곳에 화분들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온갖 모양의 씨앗들이 심어져 있었다.

빨간 하트 모양의 씨앗, 노란 별 모양의 씨앗, 파란 물방울 모양의 씨앗... 마치 보석처럼 반짝이는 씨앗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농장 한가운데에는 작은 한옥이 있었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마당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


"꿈인가?"


민들레는 자신의 뺨을 꼬집었다. 아팠다. 꿈이 아니었다.


"신기하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민들레가 돌아봤다.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서 계셨다. 연세는 많아 보이셨지만, 눈빛만큼은 소녀처럼 맑고 밝았다.

"여기가... 어디예요?"

"꿈의 씨앗농장이란다."

"꿈의 씨앗농장이요?"

할머니가 민들레에게 다가오셨다.


"사람들의 꿈이 씨앗의 형태로 자라나는 곳이지. 사랑하고 싶다는 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꿈,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는 꿈... 그런 꿈들이 여기서 자란단다."


민들레는 주변을 둘러봤다. 정말로 무수히 많은 화분들이 있었고, 각각의 씨앗들이 서로 다른 빛깔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데 저는 왜 여기에...?"


"너를 기다리고 있었거든."

"저를요?"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셨다.


"너는 민들레구나. 맞지?"

"네... 어떻게 아세요?"

"네 마음을 보면 알 수 있어. 지금 많이 힘들지?"


민들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오늘 하루 종일 참았던 감정들이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네... 정말 힘들어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친구들은 다 취업하는데 저만 혼자 남겨진 것 같고..."


"그럴 때가 있단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가."

할머니가 민들레의 손을 잡으셨다. 할머니의 손은 따뜻했다.


"하지만 사실 너는 길을 잃은 게 아니야. 네가 진짜 가야 할 길을 찾아가고 있는 거란다."

"진짜 가야 할 길이요?"

"그래. 너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니?"


민들레는 한참 생각했다.

"잘 모르겠어요... 최근에는 행복했던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렴. 누군가 슬퍼하고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드니?"


"위로해주고 싶어요."


"누군가 포기하려고 하면?"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고요."

"누군가 꿈을 잃어버렸다면?"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바로 그거야. 그것이 네 진짜 꿈이란다."

"제 꿈이요?"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고, 꿈을 지켜주는 것. 그게 바로 너의 꿈이야."

할머니가 화분 하나를 가리켰다. 그 안에는 무지개빛으로 반짝이는 씨앗이 심어져 있었다.

"이건 희망의 씨앗이야.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하는 사람의 꿈에서 자라난 씨앗이지."

"누구의 꿈인가요?"

"너의 꿈이란다."

민들레는 깜짝 놀랐다.


"제 꿈이요? 저는 제 꿈이 뭔지도 모르는데..."

"꿈은 꼭 거창한 것만이 아니야.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 위로해주고 싶다는 마음, 그런 작은 마음들도 소중한 꿈이란다."


할머니가 씨앗을 화분에서 꺼내 민들레에게 건네주셨다.

"이제 이 씨앗을 키워보렴."

"어떻게요?"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을 때, 그 마음을 씨앗에 담는 거야. 그러면 씨앗이 자라날 거고, 작은 기적이 일어날 거란다."


"기적이요?"


"진정한 마법은 화려한 것이 아니야.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마법이지."


민들레가 씨앗을 받는 순간, 따뜻한 기운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할머니는 누구세요?"

"나는 이곳의 꿈지기란다. 500년 동안 사람들의 꿈을 지켜온 늙은이지."

"500년이요?"

"오랜 시간이었어. 하지만 이제 새로운 꿈지기들이 필요한 때가 왔단다."

"새로운 꿈지기들이요?"

"너 같은 아이들 말이야. 각자 다른 씨앗을, 다른 마법을 가진 아이들."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나요?"

"그렇다. 총 일곱 명이지. 모두 너처럼 착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야."

할머니가 민들레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제 가거라. 그리고 네 씨앗을 키워보렴. 언젠가 다른 아이들과도 만나게 될 거야."

"언제 다시 올 수 있어요?"

"네가 정말로 필요할 때 다시 올 수 있을 거야. 씨앗이 길을 알려줄 거란다."

민들레가 눈을 뜨자, 홍대 골목 처마 밑에 서 있었다. 비는 언제 그쳤는지 개고 있었고, 석양이 골목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꿈이었나?"

하지만 손을 펼쳐보니, 정말로 작은 씨앗이 들려 있었다. 무지개빛으로 반짝이는 희망의 씨앗이.

민들레는 씨앗을 소중히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향했다. 걸음걸이가 이전과 달랐다. 더 가벼웠고, 더 희망적이었다.

그날 밤, 민들레는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자신이 작은 카페를 운영하며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꿈을.

다음 날 아침, 민들레는 일찍 일어나 인터넷을 검색했다. '카페 창업', '소자본 사업', '홍대 임대'.

오늘은 면접을 보러 가지 않았다. 대신 홍대 골목들을 돌아다니며 임대 매물을 찾아다녔다.

"여기 괜찮네."

작은 골목 안쪽에 위치한 10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창문이 크고, 햇살이 잘 들어왔다. 임대료도 생각보다 저렴했다.

"학생이세요?"

부동산 사장이 물었다.

"네, 졸업을 앞둔 학생이에요."

"카페 하려고요?"

"네."

"경험 있어요?"

"아니요. 하지만 배울 생각이에요."

부동산 사장이 민들레를 한참 바라봤다.

"요즘 학생들 대단하네. 창업 정신이 있어."

"꼭 성공시키고 싶어서요."

그날 민들레는 계약금을 넣었다. 부모님께 받은 용돈과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모두 털어서.

그리고 카페 이름도 정했다.

'꿈지기'

할머니가 자신을 새로운 꿈지기라고 불러주셨으니까.

3주 후, 민들레의 카페 '꿈지기'가 문을 열었다.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민들레는 행복했다.

첫 손님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무엇을 드릴까요?"

"아메리카노 하나요."

민들레는 커피를 내리면서 주머니 속 씨앗을 만졌다. 씨앗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분이 시험을 잘 보셨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커피를 만들었다. 그리고 라떼 아트를 그리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우유 거품 위에 작은 별이 그려졌다. 하나, 둘, 셋... 어느새 북두칠성이 완성되었다.



"와, 이거 북두칠성이네요!"


학생이 신기해했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죠."


민들레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정말요? 그럼 시험 잘 보게 해달라고 빌어봐야겠네요."


학생이 커피를 마시며 밝게 웃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정말로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며 인사하러 왔다.

그때 민들레는 확신했다.


꿈지기 할머니가 말씀하신 것이 맞다고. 진정한 마법은 화려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그리고 자신이 정말로 찾고 싶었던 꿈도 이것이라고.


사람들의 꿈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 바로 한 민들레의 꿈이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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