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음의 이야기
하음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열일곱 살. 고등학교 2학년. 성적이 떨어지고 있었다. 책을 펼쳐도 글자가 미끄러졌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입이 움직이는데 의미가 도착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일어나야 하는 이유가 뭐지.
왜의 끝에 닿으면 늘 같은 곳이었다. 모르겠다.
하음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다. 지각이 잦아졌고, 결석이 시작되었다. 엄마가 방문을 두드렸다. “하음아, 학교 안 가?” 하음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대답하지 않았다.
무기력이라는 것은 슬픔보다 무거웠다.
슬픔에는 방향이 있다. 무기력에는 방향이 없었다. 바닥이 없는 수영장에서 발을 디딜 곳을 찾지 못하는 것.
물온실은 학교 옥상 물탱크 뒤 웅덩이 안에 있었다. 투명한 막으로 둘러싸인 둥근 방. 벽도 바닥도 천장도 물이어서 끊임없이 출렁거렸다.
하음은 처음에 어지러웠다. 하지만 곧 솔직하다고 느꼈다. 내 안도 이렇게 흔들리니까. 적어도 여기서는 안정적인 척 하지 않아도 되니까.
물 한가운데에 수련 잎이 떠 있었다. 꽃은 없었다. 잎만. 물 위에 납작하게 누워 흔들리고 있었다.
하음은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저것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네. 그냥 떠 있기만 하네.
동질감.
하음이 무기력할수록 물이 줄었다.
처음 허리까지 차던 물이, 일주일 뒤에는 무릎까지, 이 주 뒤에는 발목까지. 하음의 무기력이 물을 증발시키는 것 같았다.
수련은 물이 줄수록 잎이 말랐다. 가장자리가 갈색으로 변하고, 축 처지고, 말라가는 진흙 위에 붙어 쪼그라들었다.
하음은 그것을 보며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무기력의 가장 잔인한 점은, 무언가 시들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련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하음도 시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물온실에 왔을 때, 물이 거의 없었다. 축축한 진흙만 남은 바닥. 수련의 잎은 바스라지기 직전이었다.
하음은 진흙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 때문이지. 나한테 아무 힘이 없으니까, 너한테도 줄 게 없으니까.”
하음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무기력한 사람의 눈물은 힘이 없었다. 비가 되지 않았다. 파문도 일지 않았다. 그냥 진흙 위에 작은 얼룩을 만들었을 뿐.
하지만 그 얼룩에서 뿌리가 올라왔다.
수련의 잎은 거의 죽었지만, 진흙 속에서 뿌리는 살아 있었던 것이다.
하음은 그 뿌리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모든 것이 시들어도 뿌리는 남는구나. 보이는 것이 전부 말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 살아 있는 것이 있구나.
“……같이 버티자.”
목소리도 힘이 없었다. 하지만 말했다.
그 뒤로 무기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 온 날에는 옥상에 올라갔다. 진흙 위에 앉아 뿌리를 보았다. 뿌리는 눈에 보이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두 달 뒤, 하음이 울면서 온실에 왔다. 엄마와 크게 싸운 뒤였다. “너 대체 왜 그러는 거야!” 하음도 소리쳤다. “나도 모르겠다고!”
진흙 위에 엎드려 울었다. 한참을 울고 고개를 들었을 때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하음의 눈물이 물이 된 것이다. 수련의 물이 된 것이다.
그리고 진흙 속 뿌리에서 새 잎이 올라오고 있었다. 시들어버린 갈색 잎 옆에서, 작고 여린 초록 잎.
“두둥아.”
하음이 이름을 불렀다. 물 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보여서.
새 잎이 이름을 듣고 아주 살짝 펼쳐졌다.
하음은 코를 훔치며 웃었다. “나도 아직 죽은 거 아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