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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Aug 22. 2024

추락의 해부

추락의 해부


누구나 느끼지만 말할 수 없는, 가까운 사람에게서 느끼는 깊고 복잡한 감정을 끝까지 파헤치려는, 하지만 끝내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는 걸 말하는 영화.

이 영화를 본 관객의 스펙트럼은 다양하겠지만, 나는 이 영화에 깊게 몰입했다. 죽은 다니엘의 처지에 공감하는 입장이어서다. 똑같은 상황은 아니어도 부부로 살면서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부부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내밀한 감정이 있다. 특히 영화 속 다니엘과 산드라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산드라는 작가로 어느 정도 성공한 인물이고, 다니엘은 소설을 쓰려 애쓰지만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아 절망한다.

사뮈엘이 스눕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니 아버지 다니엘이 문 앞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사뮈엘은 집안에 있는 엄마 산드라를 소리쳐 부른다. 다니엘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누워 있고, 이미 숨이 멈춘 상태다. 산드라가 신고하고, 구급차와 경찰이 도착해 시신을 수습하고 경찰이 초동 수사를 한다. 사건의 발단은 갑작스럽고, 모호하다.


상황으로 보면, 다니엘이 자살한 사건으로 간단하게 마무리 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사람이 죽은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은 의무적으로 수사해야 한다. 시신을 부검해서 사인을 밝히고, 각종 정황 증거를 모아 타살의 가능성은 없는 지 확인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당연하지만, 가족에게는 큰 고통이다.

법의학으로 확실하게 단정할 수 없는 죽음이 되면서, 검찰은 산드라를 살인 용의자로 기소한다. 이제 영화는 법정 드라마로 바뀌고, 법정에서 증언하는 사람들을 통해 사건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난다. 법정에서는 부부인 다니엘과 산드라의 입장이 아닌,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 사건의 본질을 밝히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사건의 진실을 가리고 복잡하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영화에서 사건의 핵심은 다니엘의 죽음을 둘러싼 사실을 밝히는 내용이 아니라, 다니엘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고, 다니엘과 산드라 두 사람의 감정이 변해가는 과정이다. 다니엘이 자살을 했거나, 산드라가 다니엘을 살해했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법정에서 다니엘과 산드라가 나눈 대화 녹음이 공개된다. 그건 다니엘이 녹음한 것으로, 일상의 대화를 녹음한 이유는 그가 계속 소설 쓰기를 시도했고, 소설 소재 또는 아이디어를 수집하려는 생각으로 녹음을 자주 했던 것으로 밝혀진다.

하지만 다니엘은 사망하기 전 날 산드라와 격렬하게 말다툼 하는 장면을 녹음했고, 그 상황은 산드라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녹음된 상황을 짐작하면, 산드라는 다니엘을 심하게 비난하고, 심지어 다니엘의 뺨을 때린다. 두 사람이 서로 격렬하게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되는 원인이 다니엘의 죽음과 직접 관련이 있고, 외부 사람들은 다니엘의 입장을 알지 못하고, 산드라의 의견만 듣게 되므로, 정보의 불균형이 일어난다.

따라서 다니엘의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과 산드라의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이 나뉘고, 이 사건은 산드라가 다니엘을 '직접' 살해하지 않았더라도, '타의에 의한 자살' 즉 산드라의 이기적인 태도, 다니엘을 존중하지 않는 건 물론, 다니엘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멸시하는 태도가 다니엘이 자살하게 되는 동기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산드라를 옹호하는 입장이라면, 산드라가 대단히 독립적이고 이성적인 여성이라고 말한다. 산드라는 성공한 작가이며, 다니엘과 비교하면 매우 이성적인 인물이다. 원론으로 보자면, 감성적인 다니엘보다 이성적인 산드라가 더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법정에서 드러나는 산드라의 또 다른 모습은 대단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일종의 싸이코패스에 가까운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산드라는 사뮈엘이 사고를 당한 직후 남편 다니엘이 아닌, 다른 사람과 불륜을 맺는다. 그것도 여러 번. 여성 또는 남성들과 관계를 갖는데, 그걸 남편에게 말한다. 그것도 처음 한 번만 자백하고, 그 뒤로도 산드라는 여러 명의 여성 또는 남성과 육체 관계를 갖는데, 그건 다니엘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산드라는 사뮈엘이 사고를 당해 고통스러울 때 괴로움을 잊으려 한 행위였다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산드라의 '뻔뻔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니엘이 써 놓은 소설의 메모를 보고, 그 아이디어를 가져가 자기 이름으로 소설을 쓰고 성공하는데, 다니엘이 동의했다고 말하며, 전혀 부끄러움이나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산드라가 완전히 냉혹한 인간은 아니지만, 그의 이성적이고 냉정한 태도는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그걸 산드라 본인만 모르고 있다. 


반면, 다니엘은 우유부단한 성격에 자신보다는 주위 사람을 배려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는 대학교수로 일하는 한편 소설을 쓰고 싶은 열망이 강하다. 아니,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오로지 소설만 쓰는 작가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이미 산드라가 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다니엘은 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완성하지 못하고 포기한다. 다니엘은 아들 사뮈엘이 시각장애인이 된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자책한다. 자기가 학교로 데리고 갈 차례에 소설을 쓰다 시간이 늦었고, 그 때문에 사뮈엘이 사고를 당해 시력을 잃게 되었으니 자책하는 건 당연하다.

다니엘이 대학교수를 그만 두고 본격 소설을 쓰려면 가정 경제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다니엘은 고향으로 돌아와 집을 수리하고 집의 일부를 에어비앤비로 활용할 생각을 한다. 대학교수를 하며 틈틈히 집을 수리하는데, 진도는 잘 나가지 않고, 시간이 부족하니 소설을 쓸 수 없어 다니엘은 초조하고 답답하다.

집수리를 온전히 다니엘 혼자 하는 것도 서운한 마음인데, 산드라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다니엘은 불만이 쌓이는데, 산드라는 다니엘에게 불평불만 하지 말고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말한다. 이기적인 산드라와 달리 많은 걸 양보하며 살고 있(다고 믿)는 다니엘은 그런 산드라의 말에 더욱 감정이 상한다. 하고 싶은 걸 하며 살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마치 조롱하고 비웃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사뮈엘이 산책을 나간 틈에 자살하는데, 마치 타살처럼 꾸미고 죽는다. 그건 산드라에 대한 복수이며, 산드라가 곤경에 놓이고, 법정에서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면 감옥에 오래 갇혀 있을 거라는 계산까지 한 죽음이다.

다니엘은 자신의 죽음으로 산드라에게 복수한다고 생각했다. 산드라도 다니엘의 죽음을 보면서 분명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지만, 누구에게도, 법정에서도 말하지 않는다. 산드라가 다니엘을 직접 죽이진 않았으나, 다니엘이 산드라를 저주하고, 원망하며, 죽음으로 비난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안다면, 산드라는 평생 '남편을 괴롭혀 죽인 여자'의 멍에를 쓰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다니엘이 산드라를 비난하고, 더 이상 관계가 좋아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혼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영화 내용과 관계 없는 이야기지만, 다니엘은 산드라와의 관계가 파탄났다는 걸 알면서도 산드라에게 수모를 당하며 힘겨운 나날을 버티고 있었다.

'작가'가 되려는 자기 욕망을 실현할 재능과 의지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한 채, 이미 작가로 성공한 산드라를 보며 불평을 늘어 놓는 건, 산드라가 보기에도 실패한 인생을 사는 남자가 징징거리는 한심한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사실, '이혼'을 선택하는 것도 상당히 이성적 판단이다. 다니엘의 자살은 매우 짧은 시간에 벌어진 격렬한 감정의 폭발로 이어진 충동적 결과였다. 다니엘이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이라는 건 그가 살아온 과거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지금 사는 프랑스 고향으로 오기 전 영국에서 살았고, 대학교수로 일하지만 작가가 되기를 꿈꾼다. 작가가 되려 소설을 쓰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고향집에서도 집수리를 마무리 하지 못한 채 자살한다. 그는 무언가 새로운 걸 찾고, 꿈꾸고, 일을 벌리지만 마무리 하지 못한다. 그는 산드라를 만나기 전부터 결핍에 시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다니엘과 정 반대의 인물인 산드라와 함께 살게 된 것도, 다니엘이 가지지 못한 걸 산드라가 가졌기 때문에, 그게 새롭고 신선하게 보였을 것이다.

산드라는 이성적이고 냉정하며, 자기 중심적인 성격이고, 다니엘은 감성적이고 온정적이며 타인을 배려하는 성격인데, 이 두 사람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며 살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부부가 되었겠으나, 현실은 두 사람의 갈등이 증폭되고, 부부 사이에서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권력 관계가 뚜렷이 형성되면서, 다니엘은 산드라에게 지배당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다니엘이 안쓰러운 건, 그가 산드라에게 인격적 모욕을 당하는 순간에도, 산드라에게 뺨을 맞는 상황에서도 폭력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니엘은 물리적 폭력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가 심약해서가 아니라, 자기 절제가 그만큼 강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다니엘의 죽음은, 바깥으로 표출되어야 할 폭력이 자기 자신에게 향한 결과다. 자기 자신을 죽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가야 할 폭력을 막고,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을 수 있다. 다니엘은 거의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쓰지 않는 게 몸에 베었다. 그럼에도 산드라에 대한 미움과 증오의 마음은 결국 스스로를 살해하는 단계에 이르고, 자기가 죽게 되면 산드라가 고통 당할 거라는 것도 알고, 계산하고 자살했을 게 확실하다.

산드라는 결국 자신의 결백을 입증했고, 그 결정적 증언은 아들 사뮈엘을 통해 나오지만, 사뮈엘의 증언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진실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사뮈엘 역시 아버지와 엄마 사이의 진실을 알 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만으로 판단해야 한다. 아버지가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미 죽은 아버지와 자신을 돌봐 줄 어머니 사이에서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 '합리적' 선택을 하라면 당연히 어머니를 살리는 쪽이 타당하지 않을까.

산드라는 결백을 입증하지만, 다니엘이 죽으면서 남긴 감정의 외침은 산드라의 내면에 남아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산드라만은 알고 있는, 다니엘의 고통과 분노의 감정, 그건 다니엘이 사라지고, 시간이 많이 흘러도, 산드라의 삶에서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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