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오브 갓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마치 '브라질 판 대부'를 보는 느낌이면서, 그보다 훨씬 잔혹하고 폭력성이 강하다. '대부'가 미국 마피아 집단을 오히려 미화해서 그렸다면, 이 영화는 브라질 빈민 지역의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려 했다. 두 영화 모두 잔혹한 살해 장면이 곳곳에 등장하고, 집단 학살도 보이지만, '대부'가 주로 성인 남성들끼리 벌이는 난투극이라면, 이 영화는 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벌이는 학살극이라는 점에서 충격의 강도가 다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약 10여 년의 시간으로, 브라질의 대도시 리우데자네이루의 변두리에 있는 빈민촌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만들었으며, 등장 인물들도 거의 모두 실존 인물이다. 영화를 바라보고, 각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설명하는 사람은 생존자인 '부스카페'다. 그는 빈민촌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노력해 신문사 사진 작가가 되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 영화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면, 부스카페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1960년대에서 1970년대의 브라질 상황을 대략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빈민촌 어린이들이 총을 들고 다니며,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이게 된 상황에 이르는 과정은 브라질 역사와 시대가 만든 결과이기 때문이다.
1964년 3월, 카스텔루 브랑쿠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간접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된다. 그 전에도 군부쿠데타가 없던 건 아니었지만, 군인이 직접 권력을 장악하거나, 대통령이 되는 경우는 없었다. 본격 군부독재 정권은 1964년부터 시작했으며, 이 시기를 브라질의 '제5공화국'으로 부른다.
한국에서는 1961년 5월,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역시 간접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된다.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과 한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군부 쿠데타가 벌어진 게 신기할 수 있으나, 역사를 살펴보면, 2차 세계전쟁이 끝나고 미국과 쏘련의 냉전이 시작되면서,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의 수 많은 국가에서 거의 동시다발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 쿠데타의 특징은 '친미, 반공'을 전면에 내세운 것으로, 거의 모든 군부 쿠데타의 뒤에는 미국 CIA가 개입한 게 정설로 알려졌다. 즉, 미국은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의 약소 국가들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노선을 선택할 수 없게 철저하게 공작을 통해 방해했으며,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군부를 앞세워 정부 권력을 친미 정권으로 만드는 작전을 수립하고, 실행했다.
브라질의 이웃 나라인 칠레에서도 사회주의자 아옌데가 대통령이 되면서 주로 미국과 유럽의 자본가들이 가져가던 구리 광산의 이익을 국유화하자 곧바로 미국 CIA가 개입해 피노체트로 하여금 쿠데타를 일으키게 했고, 피노체트는 결국 반란을 일으키고, 아옌데 대통령을 학살하면서 장기 집권한 독재자가 되었다. 이 내용을 담은 영화는 상당히 많은데, '공작'이라는 영화는 매우 상징적이다.
쿠바 혁명도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의 소유와 이윤을 미국 자본가들이 거의 모두 가져가는 바람에 쿠바는 가난에 시달리게 되고, 카스트로와 그의 동료들이 결국 혁명을 일으켜 무장 투쟁을 통해 사회주의 정부를 세운 것도 미국 자본가의 착취가 극도에 달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와 CIA는 여러 차례 쿠바의 사회주의 정권을 전복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수 많은 군부 쿠데타는 미국의 자금과 무기 지원으로 성공했으며, 군사 독재가 횡행하던 시기에 아프리카는 국가가 사유화되고, 독재자의 억압과 착취, 시민 학살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16세기 이후 주로 유럽의 제국주의 식민지로 전락한 세계 수 많은 나라들이 근대 들어서 독립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패권을 장악하려는 일련의 과정 가운데 하나가 그 나라의 군부를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하고, 친미 정권을 세워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했다.
1960년대 말에 시작한 '베트남 전쟁'도 이런 일련의 친미 정권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전면적이었고, 미국은 처절하게 패했다. 미국은 2차 세계전쟁 이후 세계 곳곳에서 벌인 전쟁에서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그들은 '세계 경찰'을 자임하고, '제3세계' 국가들을 쥐락펴락하며 '경제 제재'라는 무기와 '군사 폭력'이라는 두 가지 무기로 '국제 깡패'로 날뛰고 있다.
이 영화는 이런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성립한다. 브라질은 1500년 이후 줄곧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으며, 180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독립할 수 있었다. 무려 4백 년 가까이 포르투갈의 식민지 상태에 있었으므로 언어는 물론 문화와 생활 양식도 포르투갈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지금도 '포르투갈어'를 쓰는 나라는 브라질이 유일한 걸로 안다. 브라질 이외의 대부분 나라들은 '스페인어'를 쓴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 1964년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기 전까지, 브라질의 정치, 사회 현실은 혼란스러웠다. 브라질 현실에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자들은 브라질의 엘리트 계층과 군부에 있다. 그들은 권력 투쟁을 하면서 브라질 민중의 삶은 외면했고, 오로지 자본가, 부르주아, 엘리트 계급의 이익만을 계산했다. 브라질의 수도 '리우데자네이루'의 외곽에 빈민촌이 형성되는 과정은 '제3세계'에서 비슷하게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한국도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내내 서울 외곽에 거대한 빈민 주거 지역이 형성되는데, 이런 현상은 농업 국가에서 산업 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현상으로, 도시 주변의 공장에 필요한 노동자를 충당하는 과정에서 시골의 청년들이 도시로 유입되고, 경공업과 중공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농업(농민)을 희생양으로 삼는 국가 단위의 전략에 따른 결과다.
독재 정권은 농업 생산성을 향상하는 한편, 1차 농산물 가격을 국가가 전략적으로 통제하고, 도시 노동자의 임금을 '저임금'으로 묶어 두면서 자본가의 이익을 극대화 하면서 경공업, 중공업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방식이었다. 이때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옮겨 온 인구가 도시 외곽에 자리 잡은 빈민촌 주민들이었으며, 이 영화에서 '시티 오브 갓'은 '리우데자네이루'의 변두리에 있는 빈민촌이라는 점에서, 저개발 국가와 독재 국가의 경제 정책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걸 배경으로 아는 게 필요하다.
브라질 정부는 극빈층을 한 곳으로 모아 수용하는데, 도시 외곽 산꼭대기에 작은 집을 수 없이 짓고, 그곳에 농촌에서 올라왔거나 도시의 빈민을 수용한다. 1960년대에도 이 빈민촌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물도 공동수도를 썼다. 이 장면은 나에게 매우 기시감이 들었는데, 1970년대 서울의 가난한 동네에서 살다 무허가 건물이 철거되면서, 서울 외곽의 산동네로 이주한 경험이 있고, 내가 살았던 산비탈 빈민촌은 서울 각지에서 살던 빈민들이 도시에서 쫓겨나 몰려든 곳이었다. 이 빈민촌에는 화장실이 거의 없었고, 전기는 들어왔지만 상수도는 공용 수도를 썼다. 도로는 흙바닥이어서 비가 내리면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도로가 엉망진창이었다.
한국 문학에서 도시 빈민의 투쟁을 잘 그린 작품으로 윤흥길 작가의 소설 '일곱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람'이 있는데, 이 소설의 배경은 '광주 대단지 사건'이다. 1971년 당시에는 경기도 광주였으나 지금은 성남시 수정구와 중원구 일대였던 곳에 서울의 곳곳에서 모인 빈민들이 아무 것도 없던 곳에 집단 거주 지역을 이뤄 살기 시작했다. 정부가 땅을 분양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발생한 도시 빈민 투쟁은 거대한 폭동으로 확산했으며, 박정희 정권은 빈민들의 폭동에 놀라 빈민들이 내건 조건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사태를 진정시켰다. 이 시기에 한국의 반대편인 브라질에서도 비슷한 도시 빈민이 살고 있었고, 이 영화와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 지고 있었다.
'시티 오브 갓'은 도시 빈민의 삶을 잘 드러내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을 핍진하게 보여준다. 이때 이미 브라질에서는 마약이 유통되었고, 총기도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물건이었다. 모두 불법이지만, 공권력이 빈민촌의 구석까지 미치지는 못했으며, 무엇보다 경찰의 부패가 심각했다. 경찰 대부분은 폭력 조직에게 뇌물을 받았고, 경찰이 직접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내용이 영화에서도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 구조적으로 보면, 도시 빈민촌에서 마약을 유통하며 지역의 범죄 조직을 만들어 살아가는 빈민 청년들은 그들 위에 있는 경찰, 마약 유통, 마약 생산 조직의 말단 일회용품에 불과한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다.
영화 시작 장면에서 빈민가 범죄 조직의 소년들이 닭을 쫓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쫓기는 닭이 바로 이 소년들을 상징한다. 소년들은 손에 권총을 들고 있으며, 누구도 이 소년들을 막지 못한다. 빈민촌의 마약 유통을 둘러 싸고, 경쟁자들을 살해하는 건 소년들이다. 이 소년들 대부분은 글을 읽지 못하고,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소년들은 태어나 자란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적응한다.
영화에서는 등장 인물 개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이 범죄자가 되는 과정, 범죄를 저지르고 쫓기는 과정, 결국 경찰에게 잡히거나 경찰의 총에 맞아 죽게 되는 과정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보인다. 이 소년들의 죽음은 그들이 선택한 행위의 결과로 볼 수 있지만, 그건 현상만 볼 뿐이다. 영화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도시 빈민 청년들의 삶은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에 놓여 있다.
누군들 안전하고 성실한 삶을 원하지 않을까.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나 소년이 태어나면서부터 악당은 아닐 것이다. 이들이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게 폭력과 범죄 뿐이었으니 그들의 삶도 자연스럽게 범죄의 세계로 스며들어간 것이다. 도시 빈민의 삶을 돌보는 건 정부가 할 일이지만, 정부는 군부 독재 정권이고, 독재 정권은 자본가와 부르주아, 엘리트 계급만을 위한 정책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커지고 있을 뿐이다.
개별적으로 보면 이 빈민촌 소년들이 벌이는 행위는 '범죄'일 수 있지만, 국가 단위로 보면, 빈민들의 범죄는 지배 세력을 향한 저항이다. 물론 범죄를 통해 나라를 바꿀 수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 범죄라는 건,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필연적 결과다. 빈민 청년이 저지르는 범죄는 빈곤의 삶에서 탈출할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사회가 빈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구조가 강할수록 빈민 청년의 몸부림은 본능적으로 처절하다.
브라질에도 공산당이 있지만, 이 영화의 배경이 되던 시기에는 군부 독재 정권에 의해 불법 정당으로 찍혀 지하 운동을 하던 시기였다. 군사 독재 정권의 폭압 아래서 좌파는 물론 중도 진영도 극우, 군부 세력의 탄압을 받던 상황이니, 빈민의 처지에서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이 시기에 그나마 최선의 활동을 했던 단체는 '가톨릭' 가운데서 '해방 신학'을 받아 들인 진보적 신부들이 속한 성당과 수도원이었다. 현재 가톨릭의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도 청년 신부일 때, 아르헨티나에서 해방 신학 활동을 했다.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대부분 종교가 가톨릭인건 제국주의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영향 때문이며, 가톨릭은 국가 종교라고 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남아메리카에서 가톨릭 신부들은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진보적 활동에 참여한 사례가 많고, 종교적으로도 '해방 신학'을 최초로 개발하면서, 종교가 혁명을 지지한다는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 브라질에도 '해방 신학'의 영향은 있었으나, 빈민촌인 '시티 오브 갓'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범죄를 막을 수 있을 정도는 힘이 미치지 못한 걸로 보인다.
빈곤의 문제는 결국 국가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 세계의 중진국, 후진국이 '대한민국'을 롤모델로 삼는 이유는, 동족끼리 서로 죽이는 참극을 겪은 전쟁에서, 나라가 완전히 초토화된 상태에서 불과 70년만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결과 때문이다. 1960년 무렵에 '제3세계' 많은 나라에서 비슷하게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고, 군부 독재를 겪었는데, 유독 대한민국만 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 정부를 세웠으며,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뤄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는 건, 미국의 비호가 있었다 해도 놀라운 사실이다.
브라질에서 빈곤의 문제, 빈민촌을 해결하지 못한 건 국가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지배 계급의 의지가 문제다. 브라질은 인구 2억 명이 넘는 대국인데, 현재 약 3천만 명이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인구의 약 15%가 빈곤층이라는 건 정부가 빈곤을 방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빈곤은 국가의 구조적 문제로 발생하므로, 빈곤의 문제는 곧 국가 문제이기도 하다.
이 영화 배경인 1960년대, 1970년대 빈민 세대는 훨씬 열악한 상태에 놓였으며, 빈민 청년들의 극단적 행동은 브라질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우 충격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오지만, 이 영화의 내용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예술은 현실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새삼 절절하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