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다머
작가 더프 백더프가 제프리 다머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함께 학교 생활을 했던 동창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제프리 다머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다머의 범죄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그의 생애를 깊게 추적하고, 자료를 체계적으로 만들며, 다머의 부모는 물론 다머와 직접 관련 있는 인물을 인터뷰해서 한 권의 그래픽노블로 완성한 사람은 더프 백더프가 유일하다.
이 작품을 다시 읽게 된 건, 최근 넷플릭스에서 '다머-괴물: 제프리 다머 이야기' 10부작을 제작 방송한 걸 보고 나서다. 여기에 비슷한 시기에 넷플릭스 시리즈로 '살인을 말한다 : 제프리 다머 테이프' 3부작도 있었다. '다머-괴물'은 드라마고, '살인을 말한다'는 다큐멘터리다. '내 친구 다머'는 더프 백더프가 무려 20년에 걸쳐 집요하게 파고들어 완성한 작품인데, 영상으로 만든 작품들은 더프 백더프의 작품을 많이 참고했다. 더프 백더프가 다머의 사건에 깊이 천착했던 건 충격적인 사건의 범인이 중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그때 신문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언론인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았고, 이 사건이 갖는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 친구 다머'는 다머의 어린시절부터 그가 살인을 저지르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다머가 저지른 살인 그 자체도 끔찍하지만, 그 기괴하고 끔찍한 행동의 시작이 어디부터인가를 탐색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오히려 작품의 깊이를 만든다.
다머는 197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살인을 한다. 그리고 9년이 지나 1987년 두 번째 살인을 하고, 이때부터 체포되던 1991년까지 불과 4-5년 사이에 열 여섯 명을 살해하는데, 그의 피해자들은 공통점이 있다. 다머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1974년 즉 열 서너 살부터 알았다고 했다. 아마 중학생 때인 걸로 보이는데, 청소년 시기 성정체성과 성적 욕망이 폭발하던 때, 다머 역시 다른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들끓는 성적 욕망으로 힘들었을 걸로 보인다. 자신의 성정체성이 '게이'라고 느낀 건 대부분의 게이들과 같았겠지만, 다머의 어릴 때 삶을 보면, 석연치 않은 현상이 보인다.
다머를 다룬 세 작품(드라마, 다큐멘터리, 그래픽노블)에서 다머의 성정체성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다머의 어린 시절을 보면, 그가 성장하면서 가장 친밀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엄마의 존재가 살갑거나, 따뜻하거나, 부드러운 느낌보다는 끔찍하고 괴로운 경험으로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다머의 엄마는 다머의 기억 속에 늘 신경질을 부리고, 짜증을 내며, 자식들을 귀찮게 여기고, 스스로 불행을 자초한 여성으로 보인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다머가 어렸을 때부터 다머의 부모는 아이들이 있어도 심하게 부부 싸움을 했고, 서로를 비난했으며, 심지어 다머의 엄마는 남편을 때리기까지 했다. 다머의 아버지는 화학을 전공한 과학자였고, 다머의 엄마도 심리상담 석사 학위를 가진 지식인이었다. 다머는 장남이었는데, 그의 동생은 여섯 살 터울이었다. 다머는 어릴 때부터 성장하는 과정 내내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랐다. 다머의 부모가 악의를 갖고 다머를 방임한 건 아니겠지만, 다머의 부모는 늘 싸웠고, 아버지는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엄마는 약물 중독으로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였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다머의 아버지 라이어널은 10대 때 많은 청소년들이 그렇듯 공격적이고 충동적이 성향이 있었는데, 그의 내면에서 열등감과 함께 살인, 방화, 폭파 충동을 느꼈다고 CNN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라이어널은 성장하면서 문제가 될 행동을 하지 않았고, 결혼한 이후 화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오하이오주 애크런에 있는 공장의 연구부서에 취업했다.
다머의 엄마 조이스는 다머를 임신한 상태에서 발작을 일으켰는데, 임신 전부터 이미 정서 불안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임신한 상태에서 우울증과 입덧을 치료한다면서 모르핀, 중추신경 억제제, 수면제, 항불안제, 항경련제 등의 약을 대량으로 복용했다. 물론 조이스가 먹은 약은 모두 의사의 처방을 받은 것이며, 다머가 태어나던 1960년 무렵에는 임산부들이 이런 약을 먹는 것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 무렵에 벌어진 심각한 약물 사건으로 '탈리도마이드 베이비' 사건이 있는데, 독일에서 개발한 강력한 진정제, 수면제인 이 약은 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약을 사 먹었다. 임산부도 이 약을 복용했는데, 나중에 태어난 아기들에게서 사지가 없거나 짧은 기형이 나타났고, 생존도 짧았다. 다행히 미국 FDA가 이 약을 미국에서 판매할 수 없도록 해 17건의 기형아 사례가 보고 되었는데, 독일과 일본 등 세계 48개 국가에서 1만 2천 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만큼 50년대, 60년대에는 약물의 부작용에 무지했다.
조이스가 먹었던 약 가운데도 이렇게 기형을 유발할 수 있는 약이 있었을 걸로 보인다. 다만 다머는 육체적으로는 문제 없이 태어났고, 그의 기억으로, 어린 시절은 그런대로 평범했다고 회고했다. 다머의 출생을 두고, 유전적으로 그의 아버지에게서 폭력과 살인의 충동을, 엄마에게서 불안과 우울을 동시에 물려받았다고 가정할 수 있지 않을까? 조이스가 먹은 약물이 다머의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없지만, 부모의 성향과 약물 등이 다머의 출생 이전에 이미 유전적, 약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이 있을 걸로 추정한다면, 다머가 출생한 다음부터는 부모의 심각한 갈등과 폭력이 다머의 어린시절을 결정했다.
다머의 부모는 끊임없이, 끈질기고 악착같이 싸웠다. 두 사람은 결혼해서는 안 될 사이였음에도 결혼했고,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았으며, 서로를 깊이 사랑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기적이고, 자기 밖에 모르는 독선적 인간이었으며, 자식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다머가 역사에서 보기 드문 끔찍한 살인귀가 된 원인에는 부모의 존재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런 사람들은 결혼을 할 수 있겠지만,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아이를 사랑할 줄 모르고, 사랑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책임지지도 않는 부모는 이미 괴물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싸울 때면 다머는 집밖으로 나가 근처 숲을 돌아다녔고, 동물 사체를 수집했다. 동물 사체에 관심을 보인 건, 그의 아버지가 화학 지식을 다머에게 알려주면서,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동물 사체를 담가 보관하는 걸 가르쳐주고, 동물 사체를 해부하는 지식을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다머의 집에 염산 같은 화학물질이 있었고, 이는 아버지가 화학자였기에 가능했던 걸로 보인다. 동물 사체를 염산에 넣어 녹이는 실험도 했고, 남은 뼈를 따로 보관했는데, 이때 경험이 나중에 다머의 살인 방법으로 쓰인다.
다머는 중학생 때 남학생과 처음 성 접촉을 하는데, 자신이 게이라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는 자기의 성정체성이 게이라는 걸 알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중학교에 올라가던 1974년, 그래픽 노블 작가가 되는 더프 백더프와 만나게 되고,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다머는 학교에서 그리 존재감이 없는 학생으로 기억되었다.
다머가 사교성이 없고, 동급생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한 건, 다머의 어린시절부터 쭉 이어온 집안의 분위기와 부모의 영향으로 보인다. 다머는 어릴 때 탈장 수술을 했는데, 수술하기 이전과 이후의 성격이 상당히 달라졌다고 했다. 특히 부모가 자주 심하게 다투면서, 집안 분위기는 정서적으로 매우 폭력적이고, 다머는 부모에게서 소외 당하는 느낌이 강했다. 사랑과 애정, 행복이 없는 가정에서 성장한 다머의 내면이 차갑고, 우울한 건 당연한 결과다. 다머의 내면은 이미 어릴 때부터 감정이 짓눌려 있었고, 자신을 드러내거나,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욕이 사라졌다. 이런 다머의 모습이 동급생들에게 느껴졌고, 다머가 조금 이상한 친구라고 여겼기에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기댈 곳이 없던 다머는 1974부터 고등학생이었지만,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가방에 술병을 넣어 다녔고, 혼자 몰래 술을 마시고 취해서 학교를 어슬렁거렸다. 하지만 일부 학생만 그 사실을 알았을 뿐, 학교 선생들과 부모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다머가 조심스럽게 행동하기도 했지만, 애초에 선생들이나 보모는 다머에게 관심이 없었다.
1977년, 다머의 부모는 별거를 시작했고, 1978년 마침내 이혼했다. 다머의 부모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다머에게 따뜻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이혼 과정도 설명하지 않았으며, 다머가 결국 집에 혼자 남겨지게 된 이후에도 찾아오거나, 책임지지 않았다. 다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혼자 남겨졌다. 다머의 엄마는 둘째 아들을 데리고 떠났으며, 다머의 아버지는 별거할 때 호텔에서 지내다 다른 여자를 만나 재혼했다.
다머가 첫 번째 살인을 한 때가 1978년, 부모가 이혼한 직후였다. 차를 몰고 하릴 없이 다니던 다머는 거리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던 '힉스'를 태우고 집으로 데리고 온다. '힉스'의 외모는 다머가 상상하던 이상형이었으며, 다머는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이 아닌, 죽은 사람의 몸을 쓰다듬고 싶어 했다고 나중에 증언했다. '힉스'가 집을 떠나려 하자, 다머는 바벨로 힉스의 머리를 내리쳐 죽이고, 사체를 유기하러 매립장으로 가는 도중에 경찰을 만난다. 경찰은 다머가 음주운전을 하는 것으로 벌금을 물렸고, 사체는 발각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다머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1978년 첫 살인에서 1987년 두 번째 살인까지 약 9년의 시간이 있는데, 이때 다머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입학했다 중퇴하고, 군대에 입대했다 역시 2년만에 전역했다. 학교와 군대에서 다머는 늘 술에 취했고,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렸으며, 기물을 부수고, 길거리에서 알몸으로 추태를 보였다. 군대에서는 후임병을 성폭행하고, 고문하기도 했다. 그의 청년기는 대부분 알콜중독이었으며, 성추행으로 경찰에 체포되어 교화의 방법으로 공장(밀워키에 있는 암브로시아 초콜릿 공장)에 다녀야 했다.
다머는 부모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밀워키에 있는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 생활하는데, 할머니 집에서 무려 세 건의 살인을 저지른다. 다머는 저녁이면 밀워키 시내에 있는 게이 클럽을 전전했다. 그곳에서 게이에게 돈을 줄테니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고 제안하고, 그 제안에 대답한 사람을 집으로 데려와 수면제가 든 맥주나 음료수를 먹여 재운 뒤 목을 졸라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했다.
세 번째 살인 이후에 성추행으로 경찰에 체포되어 입건 된 후, 초콜릿 공장에 다니는 한편, 할머니 집을 떠나 아파트를 얻어 살면서 이 아파트에서 열 세 건의 살인을 저지른다. 즉, 다머는 할머니 집에서 두 번째 살인을 하면서 그의 내면에 갇혔던 살인의 충동이 폭발한다. 그가 살인하는 동기는 '네크로필리아'로 분석하는데, 사체를 사랑하는 이상 성욕을 뜻한다. 성도착증의 하나로, 시체를 사랑하고, 시체와 성관계를 하거나 훼손하는 증상을 보인다.
다머가 살해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게이였다. 그들 가운데 흑인이나 소수민족이 많은데, 이런 결과는 다머가 의도한 건 아니고, 다머가 살고 있던 밀워키의 인구 분포 때문이다. 특히 다머가 살던 아파트를 비롯해 도시에는 흑인이 많이 살았고, 다머가 갔던 게이클럽에도 흑인들이 많았다. 다머는 게이 정체성을 가졌으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대가 게이였기에, 다머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대부분 게이라는 사실은 필연적이기도 했다.
다머는 '늘 자기 옆에 누군가 있어주길 바랐다'는 말을 했으며, '내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머는 성장하면서 단 한 순간도 사랑을 받지 못했고, 행복한 기억이 없었다. 그는 부모에게 소외 당했고, 학교에서도 친구가 없는 철저한 외톨이였다. 결국 그가 관심을 보인 건 동물 사체였고, 이후 사람의 사체로 관심이 옮겨갔다. 다머의 내면은 텅 비었으며, 감정도, 희망도, 삶의 의지도 없는 공허만 남았다.
다머는 체포되고 3년 뒤에 교도소에서 다른 수감자에게 살해당한다. 그가 처음 살인을 저지를 때 사용했던 바벨과 비슷한, 바벨 바(막대기)로 처참하게 맞아 죽는데, 그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견된 걸로 보인다. 그가 지은 죄에 따라 대가를 치른 건 당연하지만, 중요한 건, 다머의 삶에서 밝혀야 할 과정들이 있어야 할 걸로 보인다. 다머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의 원인에는 그의 부모의 영향이 가장 큰 걸로 생각하는데, 이런 엽기적 범죄자의 범행 원인에 부모에게서 비롯한 유전적 요인이 많은지, 후천적 환경의 문제인지, 온전히 범죄자 개인의 성향인지, 뇌과학, 심리학, 생리학, 유전학, 행동학 등 많은 학문들이 역사적 살인마의 본질을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