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부패의 메커니즘. 브라질의 부패 카르텔을 그린 드라마.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 ‘열도의 묵시록‘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브라질에 관심이 생겼다. 현재 브라질 대통령은 ’룰라‘로, 그는 이미 대통령을 역임했는데, 이후 부패 혐의로 감옥에 갇혔다 옥중 출마를 통해 다시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룰라’는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로, ‘브라질노동자당’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며 대통령이 되었다.
최근 이재명대통령과 룰라대통령이 만나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이 비슷해 공감대가 크다는 뉴스도 많았는데, 룰라대통령도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가는 정치적 위기를 넘기고 대통령이 되었다.
브라질은 세계 국가 가운데 넓은 국토와 풍부한 자원, 2억 명 이상의 인구 등으로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갖췄으나 지금 상황을 보면 거의 하위권 국가에 속한다. 명목GDP는 세계9위인데, 1인당 명목GDP는 세계100위에 불과하다. 이런 지표 즉 국가는 부유한데, 국민은 가난한 원인은 국가 전체에 부패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상위 5%가 브라질 전체 부의 70%를 차지한다. 한국은 상위 5%가 한국 전체 부의 29.3%를 차지한다. 한국도 부의 독점과 독식이 심각한 국가인데, 브라질은 한국보다 훨씬 심각한 걸 알 수 있다.
브라질에서 하루 5.5달러로 살아가는 빈곤층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약 22%에 이른다. 이들은 한달에 한국돈으로 약 20만 원 정도를 벌며 살아가는데, 이런 빈곤 상황은 브라질의 치안을 불안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동한다.
브라질은 왜 이렇게 극심한 빈부격차와 낮은 성장, 높은 범죄율, 불안한 치안 상태인 국가가 되었을까. 여러 원인과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본질적인 원인으로 ‘부패’를 꼽는다. 어느 나라든 정치인과 자본가 사이에 부정한 거래가 횡행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고, 언론을 통해 정치인의 비리가 많이 밝혀지지만, 그 정도가 매우 심한 나라들이 있다.
‘국가부패지수‘를 보면, 한국은 미국 바로 아래로 세계 30위에 있다. 점수는 약 64점으로, 낙제를 겨우 면한 정도다. 그럼에도 한국은 ’상당히 청렴’한 나라로 세계에 인식되고 있다.
반면 브라질은 96위이며 점수는 약 38점으로 ‘매우 부패’한 나라로 알려졌다.
이 드라마는 브라질의 부패 고리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보여준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드라마이고, 등장인물들은 이름만 바꿨을 뿐, 모두 실존하는 인물들이다.
이 드라마가 독특한 지점은, 브라질의 상위 5%, 아니 상위 1%의 비리를 캐내는 과정을 집중해서 다루고 있어 브라질 국민의 삶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따라서 이 드라마에 보이는 장면들은 브라질에서 가장 돈 많고, 권력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브라질 연방경찰 후푸와 베레나는 거물 범죄자를 뒤쫓고 있다. 겉으로는 사업을 하면서 뒤로는 경제계와 정치계의 돈세탁을 하는 이브라잉을 쫓아가며 전개된다. 후푸와 베레나는 돈의 행방을 추적하지만 돈은 여러 은행을 거치며 사라진다.
어렵게 이브라잉의 범죄 일부를 찾아내도 이브라잉 뒤에 있는 막강한 권력과 자본이 그를 보호하는 걸 확인하면서 절망한다. 후푸는 부패 카르텔의 강력한 벽 앞에서 절망하고, 개인적으로도 가족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생활로 아내는 떠나고, 결국 그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기적처럼 살아난다.
이후 후푸는 경찰을 떠나지만 베레나를 도와 수사를 계속한다. 다행히 연방경찰들을 돕는 검사와 판사가 있었고, 이들은 ‘세차 작전’으로 명명한 부패 카르텔 수사에 돌입한다.
이 ’세차 작전‘은 연방 경찰이 수사하는 과정과 내용과는 별개로 브라질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드라마의 내용을 보면, 룰라가 집권하던 때 ’세차 작전‘은 부패의 원인을 찾아 제거하라는 의미로 승인되었다.
그런데 수사를 하다보니, 룰라 대통령과 직접 관련이 있는 ‘브라질노동자당‘도 부패 사슬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나중에 알려지지만, 룰라대통령이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전임 대통령’으로 있을 때 이 수사가 진행되었고, 룰라는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
드라마에서도 ’전임 대통령‘을 연방경찰과 검사들이 직접 수사하는데, 겉으로 드러난 사실보다 훨씬 복잡한 양상이 이미 전개되고 있다는 건 이후에 알려지지 않았다. 룰라 대통령이 조사를 받기 전, 이미 브라질의 12개 건설기업, IT기업 등 대기업들이 정부 사업을 따내는 과정에서 단합했으며, 이들이 돌아가며 정부 사업을 수주하는 방식으로 사업권을 따내면서 매출의 1%를 리베이트 즉 뇌물로 정치권에 상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연방경찰에 의해 드러나고 있었다.
정치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리베이트를 가장 많이 받은 하원의장은 자신에게 향하는 연방경찰과 검찰의 칼날을 피하려고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즉, 야당(보수당)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감추려고 대통령 탄핵 카드를 꺼내 들었고, 결국 대통령은 탄핵당했다.
룰라 대통령 다음이었던 지우마 대통령은 브라질 최초의 여성대통령이기도 했는데, 야당 연합이 재정법 위반이라는 터무니 없는 이유로 탄핵당하는 과정에서 하원의장은 자신의 비리를 감추고, 정적인 노동자당 대통령을 탄핵하는 두 가지 목적을 성공한다.
지우마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부통령이 대통령 지위를 승계하는데, 이때 부통령과 하원의장 등이 부패 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 ’세차 작전’은 10년 넘게 이어지면서 마침내 브라질 현대사에서 벌어진 권력과 자본의 범죄가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브라질에서 벌어지는 대형 부패 사건에는 반드시 개입하는 인물들이 있는데, 이들은 불과 일곱 명이고, 이들이 브라질의 모든 대형 부패 스캔들의 주범이며, 브라질이 거대한 국토와 무수한 천연자원을 가졌음에도 가난한 나라로 전락하게 된 원인은 이들 극소수 권력과 자본이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범죄를 통해 국가의 ’부‘를 독점, 독식하기 때문이다.
열세 개의 대기업이 담함해 국가 산업을 독점하고, 이들은 매출의 1%를 여당, 야당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상납하며, 이때 돈의 흐름을 알 수 없도록 돈세탁을 전문으로 하는 업자가 중간에서 개입해 돈의 흐름을 감추고, 이렇게 만든 돈은 주로 정치계로 흘러 들어가 기득권을 강화하는 매커니즘이다.
이런 상황이면 국민이 들고 일어나 나라를 뒤집어 엎고, 혁명을 일으켜도 시원찮은 상황인데, 브라질 국민은 혁명대신 브라질노동당을 선택했다. 룰라대통령은 진보적 정책을 들고 나왔고, 앞으로 더 두고 볼 일이지만, 부패 매커니즘에 ‘브라질노동당’도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전임대통령 룰라가 조사를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룰라대통령은 자신이 뇌물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그가 감옥에 갇힌 이후 오히려 인기가 더 올라 옥중 당선도 가능할 정도가 되자 극우성향의 보우소나르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이 룰라를 풀어주게 된다.
부패 매커니즘은 브라질 권력 집단이 이념 성향에 관계 없이 고르게 뇌물을 상납받는 구조로 되어 있지만, 정당 지지율에 따라 극우 정당 연합과 노동당 연합이 권력을 번갈아가며 차지한다.
‘열대의 묵시록‘에도 나오지만, 브라질은 본래 가톨릭 국가인데, 1960년 이후 서서히 성장한 보수 개신교가 브라질 사회를 바꿀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이들은 한국의 극우 개신교와 거의 같은 성향으로, 미국 보수 개신교에서 직접 영향을 받았으며, 한국 극우 개신교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해 브라질 정치를 극우화 하는 중심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브라질노동당 출신인 룰라가 대통령에 재선될 수 있었던 요인은, 브라질 민중이 브라질 극우 세력과 극우 개신교의 정체를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브라질은 잠재 능력이 엄청난 국가로, 앞으로 성장 가능성도 매우 높은 국가인데, 다만 그렇게 되기까지, 무엇보다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국민 개개인이 깨어 있는 시민이 되어야 경제성장도 가능할 걸로 보인다. 그건 누구보다 우리가 직접 겪었던 과거이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민주주의 없는 성장은 가능하지도 않고, 설령 중국처럼 정치와 경제가 완전히 분리되어 도고 성장을 이룬다 해도, 국가는 성장할 지 모르지만, 개인은 불행한 나라가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