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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13. 2019

[스물둘, 영국]#2 When Did You Come?

영국교환학생#2 영어, 살아보며 배워보니




귀에 들어오는 말들은 선명도를 잃어가는 와중에 혀는 용기를 얻어 데굴데굴 잘도 구른다.


뇌는 어쩐 일인지 문법이나 어순에 대한 계산을 멈추고 곧장 생각들을 입으로 던져주는데, 그럴 때면 '아 드디어 내가 생각하지 않고 영어로 말을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른 건가?!' 싶어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술기운에 영어로 대화를 할 때면 늘 그랬다. 다음 날 제정신에 되짚어보다 어젯밤 내가 쏟아낸 엉망진창 영어에 얼굴을 붉히거나 이불 킥을 하게 될 때도 더러 있었지만은.


그날도 .


언어교환을 하며 만난 영국인 친구가 데려간 자리였다. 한 플랫(flat) [*영국에서는 apartment 대신 flat이라는 단어를 쓴다.]에서 생일파티가 열렸다. 그 날의 버스데이 걸(birthday girl)은 붉은색 곱슬머리를 한 여자아이였다.


데면데면한 열댓 명의  과 그들 사이에 오가는 익숙지 않은 영국식 영어 소리에 둘러싸여 쭈뼛거리며 소파에 걸터앉아 있었던 내 모습이 선명하다. 어색함을  지 나는     무의식 중에 쉼 없이 홀짝여댔다.


스멀스멀 취기가 올랐다.      한껏   어느새 달아오른 분위기에 합승다. 제정신엔 겨우 끝자락에 걸쳐있던 내 엉덩이는 어느덧 편안하게 소파 깊숙이 들어와 있고, 언제 어색했냐는 듯 옆자리의 친구들과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앉아있었다.


술덕에 말이 술술...


한참 깔깔대며 웃고 떠드는데, 누군가의 제안으로 어느새 정체 모를 술 게임이 시작되어있었다. 룰은 그랬다. 돌아가며 한 사람을 지목해서 곤란한 질문을 한다. 대답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술을 마셔야 한다. 참 유치하고 귀엽기도 한 이를테면 진실게임이었다.


질문 바통을 넘겨받으면 다들 눈을 가늘게 뜨고 입꼬리는 한껏 올리며 꾀 가득한 표정으로 누구를 어떻게 골려줄지 고심했다. 누구는 진실을 고하고 다른 누군가는 술과 함께 진실을 삼켰다.


몇 번 차례가 돌았다. 그러다 누군가의 질문에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가 나오자 갈지자로 비틀거리던 내 정신이 번뜩 곧추 세워졌다. 모두가 깔깔 웃는데 나만 어리둥절했다. 어색한 내 미소를 포착한 누군가 '어~ 너 이해했어?!' 하자 다른 누군가가 '쟤는 아직 순수하다고! 그런 영어 가르치지 말라고!' 하며 배를 잡고 웃었다.


내가 설명해달라고 보채자, 놀려주려는 심보인지 그 누구도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를 않았다.    상황을 보아하니 성적인 sexual 질문이었음에 틀림없.


  이어받아 다들 더 짓궂은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엄청난 '전문용어'들이 남발하는 가운데 이해를 못하는 나는 강제로 '순수한' 애가 되었고 계속 입꼬리만 올리며 어색한 가짜 웃음을 짓고 있어야 했다.


      . 장난기와 기대감 어린 눈빛들을 받으며 나는   던져야 하나  고심했다. '나 진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며     . 어?  온 거지? 분명 파티가 시작할 땐      와 앉아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나는 반가운 마음에 '너 언제 왔어?!' When did you come?! 하고 소리쳤다.


그 순간, 침묵을 가로지르며 여기저기서 웃음이 빵-하고 터져 나왔다.


? 다들 왜 웃지?


뭐야, 이번에도 나만 이해하지 못했다. 뭐야, 뭐냐고, 왜 웃냐고!!! 나도 알려달라고!!!


이제 좀 억울해진 내가 소리를 높이자 꺽꺽대며 배를 움켜쥐며 웃던 누군가가 구글링(Googling)을 해보란다. 의도치 않게 웃음을 선사한 내 질문의 정체가 대체 뭔지 궁금했던 나는 휴대폰을 켜고 COME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기본 동사 중에서도 기본 동사인 이 come을.


뭐 이리 의미가 많은 건지 설명이 아주 줄줄이다.


스크린을 쭉- 내려보는데,


아...  아?


사전 저- 끝에 달려있는 한 줄을 발견하고 이거였구나...! 깨닫는 순간 얼굴이 확-하고 뜨거워졌다.


COME verb
  [ I ] to have an orgasm

(*출처: Cambridge Dictionary)


그랬다.


분위기의 흐 라 내 질문은 ' (  ) 도달했니?'라는 의미로  .


     come          웃었던 게 생각난다.




이렇듯 절대 잊지 못할 효과적인(?) 방식으로 배웠던 영어가 꽤 있었다.


다른 일화로는, 영국 도착 둘째 날 있었던 일이다.


동네 지리가 낯설어 두리번거리며 길을 찾는 나를 향해 한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할아버지는 도움이 필요하냐며 질문 끝에 Love- 라는 말랑거리는 단어를 덧붙였다. 나는 흠칫했다. 세상에, 유럽에서 아시아계 여자들을 향한 인종차별이나 성추행이 많다던데, 이게 그런 건가... 처음 봤는데 내가 왜 love야...!


낯선 곳에서의 긴장감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그리고 머지않아 사실 내가 있던 잉글랜드 북부의 Yorkshire에서는 love 혹은 duck이라는 단어가 젊은 사람들을 향한 흔한 애칭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졸지에 무고한 할아버지를 변태 취급했던 거다.


할아버지를 마주쳤던 게 이 길 왼쪽 끝자락쯤이었다


이런 식으로 사소하지만 영국에서 생활하면서 타인과의 소통 중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온 단어나 표현들이 많았을 것이다. '살아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영어, ' 즉 현지에서의 생활을 통해 배운 영어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내가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사실은


아무리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곳에 직접 산다고 해도 의식적인 노력 없이는 언어 실력의 향상에 분명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냥 가서 지내다보면 자연스레 늘거라는 나이브한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영국에서 영어를 배울 때도 그랬고, 프랑스에서 불어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혼자만의 고독한 노력의 시간은 필수적이었다.


예를 들어, 익숙지 않은 영국 영어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가 많았던 나는 이러다 수업도 따라가지 못하겠다 싶어 교수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허가를 받아 강의를 녹음하고 기숙사나 도서관에서 여러 번 반복해 들었다. 나보다 더 어린 학생들이랑 수업을 듣는데, 말도 못 알아듣는 나 자신이 바보 같아서 마음속에 눈물 한 가득 머금은 적도 있었다. 특히 억양이 유독 강한 맨체스터, 뉴카슬 출신이 꽤 많았던 한 토론 수업은 정말 가기 싫어서 일부러 늦잠을 자기도 했다.


어떤 날은 방에 틀여 박혀 종일 넷플릭스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회화 패턴 리스트를 만들어 슈퍼를 가는 길에라도 누군가를 만나면 의식적으로 대화에 적용해 보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그래도 조금씩 더 알아듣고 조금씩 더 표현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열심히 복습하던 날들





이렇게 영어를 배워 온 시간들을 되짚어보자니 처음 대학생이 되었을 때가 생각난다.


영어영문학과 수업에 들어가 보니 이미 유창하고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하는 동기들이 꽤 많았고 나는 그 사이에서 자주 주눅이 들었다. 고등학생 때 그리 영어를 좋아하며 배웠건만, 결과적으로 입을 떼질 못하는 나의 모습에 좌절감을 느꼈다.


종이 위의 글자로 혹은 딱 떨어지는 듣기 평가 녹음본으로 영어를 접해왔던 내게 직접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건, 유연한 대화체의 영어를 배우는 건, 마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같은 과정이었다.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늘 나보다 앞서 해외 경험을 한 동기들을 향한 열등감도 자주 느꼈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을 통해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면서 언제부턴가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습득해나가는 과정에서는 누구에게나 자의적이든 타의에 의해서든 견뎌내야 했을 노력과 인내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고. 상황의 차이를 떠나서, 정말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다고.


물론 영어를 공부하며 무언가 한계를 느낀다거나 정말 지칠 때는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끝없는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했다. 자주. 이왕이면 떠 먹여주는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상황을 탓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유명한 어린 왕자 속 대사처럼,


《내 꽃이 소중한 건 내가 물을 주고 꽃을 가꾼 시간 때문》이 아닌가.


네 장미꽃들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너의 장미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야.


아직은 어쩌면 꽤 오랫동안 늘 번역투와 자연스러운 표현 사이에서 의식적으로 고민해야 할지라도, 마음 한구석의 열등감이 들춰지게 될 상황들이 더러 찾아오더라도,


그간 많은 과정들을 거치며 가지게 된 내 영어는 적어도 나 자신에게 만큼은 참 값지구나 싶다.


그리고 누군가 얘기했듯,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하나 더 사용할 줄 알게 되면서 나에게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큰 창문이 하나 더 생겼다. 


그래서 나는 취업이나 입시 같은 실용적인 이유를 떠나서, 삶의 반경을 넓히고 더 풍부하게 살아갈 수 있으니 누구에게든 언어를 하나 더 습득하는 건 꼭!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의 끝으로,


영어를 배워왔던 시간들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참해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든다. 포기하지 않고 한 발짝 한 발짝 떼어준 나 자신에게도 역시 그렇다.


뭐 꼭 다 끝난 것처럼 얘기하는데, 아직 너무너무 갈 길이 멀다. 계속해서 듣기 공부를 하고, 패턴 공부를 하고, 모르는 단어나 표현은 캐도 캐도 나오고 그렇다.


게다가 작년 한 해는 불어에 온 정신과 마음을 갈아 넣으면서 영어와 좀 많이 멀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처음 배우게 된 외국어로서 영어는 나에게 늘 특별하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배워온 미국식 영어 이외에도 다양한 영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영어에 더 재미를 붙이게 되었고, 변화하며 살아 숨 쉬는 게 언어의 매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영국에서 보낸 스물둘-셋은 다시 생각해도 그 자체로 의미가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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