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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통샤인머스캣 Apr 11. 2021

빛나는 아름다움의 습관화,마음매력신경망의 자동실행력

통통한 마음매력 신경망의 공감과 사랑모델

질문을 올려주신 용용이님께 답변을 통해 진전된 논의를 이어 나가려고 한다.

https://brunch.co.kr/@sangsooleemd/100

마음 매력 신경망은 세 방향으로 본연의 사랑스러운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추구하는 방향성을 갖는다. 마음 매력 강화는 이런 세 모듈의 기능적 연결을 균형적으로 조화롭게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기반해 자신의 삶에서 사랑스러운 아름다운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실행력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인 마음매력의 동기와 정서, 욕구 등이 충족되는 말과 행동을 통해 시냅스나 신경세포 집단의 수준에서 신경망을 치밀하게 연결시키고, 이를 지속적으로 강화시켜, 결국 신경세포의 길고 가느다란 DNA의 유전정보의 분자적 수준까지 영향력을 미치도록 실행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음매력 신경망의 신경가소성을 본질적으로 변화시켜 성품을 아름답게 바꾸는 야심 찬 목표가 들어있다.  


 뇌영상 연구 중에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 fMRI(functional MRI) 연구가 있다. 특정 두뇌활동을 하는 과제를 주면, 뇌신경세포의 전기적 활성도가 증가하고 대사적 반응이나 혈역학적 반응이 함께 올라가는데, fMRI는 이런 신호 변화를 감지해 수학적으로 처리해서 빨간색과 파란색의 뇌영상으로 보여준다. 신경세포가 두뇌활동을 할 때는 혈류를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fMRI는 이때 증가된 산화 헤모글로빈 oxy-hemoglobin의 결합상태가 물리학적으로 마그네틱한 자성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탐지해서 영상으로 구현해 내는 기술인데, 어떤 인지 과제를 수행할 때, 신경세포가 활성화되는 부위를 찾아낼 수 있다. 신경세포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혈류 공급을 통해 산소공급을 받은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산소공급이 증가되는 부위를 찾아 뇌의 미세 활동을 실시간으로 감지해내는 기술이다.


 뉴런의 원리 중 함께 활성화된 뉴런들은 함께 연결된다는 유명한 Hebb이론을 앞서 다루었다. 마음매력의 신경망도 일상의 대인관계에서 마음매력 신경망을 활성화시키는 과제를 수행해가면, 이런 연결성과 상호작용이 강화되면서 혈류가 먹여 살리는 특정 회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마음매력은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삶을 이끌어가고 고맙게 마무리되는 실행력의 측면에서, 전두엽의 실행기능과 상당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거기에는 앞에서 살펴본 다스려야 할 영역들 동기부여, 욕구, 감정, 믿음. 생각, 말, 행동, 건강, 시간관리 등 일과 대인관계 등의 전반적인 뇌 영역의 활성화와 관련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각 모듈 간에는 활발한 신호가 전달되고, 효율적인 강화와 가지치기를 이루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마음매력의 신경망이 형성될 수 있다. 인접 모듈 간의 연결성의 신호 강도로 마음매력의 신경망을 스캐닝을 해본다면 가장 좋겠지만, 목적지향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뇌인 동기센터와 기획센터 및 충동조절센터가 있는 전전두엽이 마음매력 신경망이 자신만의 독특한 지문처럼 형성되어 보일 것이다. 또한 아름다움과 같은 가치 개념을 떠올리고, 범주화시키는 고차원적인 의식 관련 영역과 학습, 기억 및 감정에 관여하는 감정뇌인 변연계와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느끼는 후두엽까지 마음매력의 신경망은 뇌의 전 영역이 통합적으로 관여할 것으로 추측한다. 결국 마음 매력 강화는 아름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도록 뇌의 연결망을 늘려주고 뇌를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재구성하는 관계망 재구성 작업이다.  


 마음매력 신경망 이론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체로키 인디언의 예화를 다시 소개한다. 인디언들은 마음속에서 선한 늑대와 악한 늑대가 살면서 늘 싸움을 하고 있다는 비유로 인성교육을 한다고 한다. 악한 늑대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선한 늑대는 선한 생각을 하는데 누가 이기는가는 내 마음속에서 먹이를 주고 키우는 놈이 이긴다고 가르친다고 한다. 선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곧 신경회로에서 신경세포가 일하고 있다는 것이고,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긴다는 것은 혈액공급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주어 먹여 살린다는 의미로 현재 뇌과학적 설명과 맞아떨어진다. 결국 체로키 인디언의 예화는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뇌가 영양분을 공급받는 신경회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신경가소성 이론을 통찰력 있게 이해시켜 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인간다움이라는 존재의 가치에 부합되고, 이는 인간의 본질적 실체에 가깝고, 그런 사랑을 하면 생명과 관련된 유전자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피할 수 없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삶을 의미 있게 여길 때, 인간이 어떻게 해서 고통이라는 의미가 가치 있게 변하는지에 대한 근거로 삼은 성경적 통찰을 빌려서 논의를 진행해 보겠다.


 성경 창세기에는 인간의 생각과 계획이 악한 것을 보시고, 조물주가 인류를 심판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써놓으며 인간의 타락 과정을 실감 나게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인간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지켜야 할 책임감을 던져버리고, 인간다움을 상실해 고깃덩어리로 전락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인간이 고깃덩어리가 된 것은 앙꼬 없는 찐빵이란 얘긴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그런 아름다웠던 인간이 인간성을 상실한 채 오로지 인간을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만 취급당하는 것은 일면 하나님의 존재가 그렇게 취급되는 것으로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인간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했다고 것은 긍정적인 마음 매력 신경망이 약해진 것을 넘어서 변질되어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비가역적인 변화가 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다.


  마음매력의 신경망의 모듈 가설로 이해하자면, 육신이 됐다는 것은 절대자 하나님 사랑에 대한 출력회로가 약해져서 기능적 연결성이 점점 약화되다 결국 단절되어 사랑이 공급되는 입력 회로가 끊어져 버린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 쪽에서 공급 회로가 단절되자, 인간은 알 수 없는 영적 공허감을 갖게 되고, 신경망은 새로운 항상성을 찾고 보상하려는 욕구를 가질 수 있다. 공허감을 다른 무엇인가로 채우려는 시도를 하면서 인간은 중독이라는 현상에 선천적으로 취약해졌는지도 모른다. 이웃에 대한 모듈 역시 양질의 신호전달이 되지 않자 입력과 출력의 부조화 신호를 겪고, 타인에게 무관심하거나 이웃을 학대하거나 착취하다가 결국에 타인에 대한 사랑이란 신호전달이 멈추어버렸는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제대로 된 사랑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회로만 과잉으로 강화되다 부조화를 겪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하게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결국 조물주는 신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는 그런 인간들을 보고, 한탄하신 지경에 처하지 않았을까?


 신성이 담겨진 인간성을 상실한 것에 한탄하신 것은 어떤 면에서 그만큼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한 애착이 상당했다는 것을 의미했을 수도 있겠다. 성경을 보면,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명백한 관점이 하나 나온다. 사랑을 하며 책임을 지는 존재가 주인이라는 견해다. 성경에서 사람은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흙으로 직접 빚었고, 독점적으로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은 존재로 소개된다. 언어를 통해 하나님과 직접적이고, 공감적 대화가 가능했었고, 창조적인 과제를 하도록 다른 피조물보다 더 많은 능력을 부여해 주셨다고 나오는 만큼 하나님의 기대가 컸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것이다. 공감적 관계가 형성이 된 사이에서는 늘 그렇다. 그런 인간에게 마치 속 썩이는 자식을 대하는 것 같은 애끓는 마음이 없지 않으셨을 듯하다. 예수님은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며 인간을 자식으로 대하시는 조물주의 관점을 뒷받침하는 비유를 종종 던지셨다. 


 그런데 이 한탄하는 과정에 하나님의 마음에 공감한 사람이 소개되는데 그가 바로 방주를 만들었다는 노아다.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나오는데, 영국 King James Version 번역에서는 '노아가 하나님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했다'라고 나온다. 추측해보면, 노아는 하나님의 그런 복잡한 마음을 자식을 향한 부모의 애끓는 사랑으로 보고, 공감을 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게 어떤 면에서 그 회로가 단절된 상태에서, 노아는 조물주에게 다가간 인간이었던 것이다. 한탄하고 사랑했었던 인간 때문에 실망하셨던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당대의 완전한 의인처럼 살았던 노아의 삶을 보시고, 자신의 창조가 헛되지 않았음을 믿고, 새로운 인류 구원의 계획을 구상하시게 되셨는지 모른다. 결국 성경은 사랑만을 이야기하고, 사랑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일관되게 말하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가치는 사랑과 어떻게든 관계망을 갖게 된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그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도 모두 사랑과 관련 있을 때에 의미가 있겠다.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 나를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그 무엇을 할 때,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그런 고귀한 존재다.     


 결국 사랑만이 마음 매력 신경망의 흔적을 남긴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마음 매력은 태초에 하나님이 주신 신성이 담긴 태곳적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 가정이 맞다면, 마음 매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움의 본질에 통하거나 사랑의 동기와 가까이 있어야 한다. 인간이 담고 있는 아름다움, 사랑스러움, 그 고마움을 찾아내고 실현시키는 것이 영성 차원의 마음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조물주의 흔적이 있는 대자연뿐만 아니라 물리학 공부를 통해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하려고 하고, 시와 문학작품이나 음악, 예술, 취미를 통해 창조적인 감성을 채우는 것이 자신의 진정한 마음 매력을 찾아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적인 회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 오래된 인류의 지혜가 담긴 성경의 관점을 도입하였다. 성경의 관점대로라면, 하나님의 형상이 담긴 존엄한 인간들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과 연결되고 입력과 출력 신호가 서로 소통되어야만 생기의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다고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은 본질상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신다. 그런데, 그 계명 중 가장 큰 계명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요약해서 가르쳐주셨다. 사랑은 모든 것의 근본이지만, 관념적인 것이 아닌 실제적인 행동임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가장 소중한 가치는 결국 사랑이라는 점을 예수님도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하신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4:21)”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인 예수님을 이 땅에 인류의 죄를 짊어질 희생양으로 죽게 하셨다. 

이것은 조물주 자신이 창조한 피조세계를 끝까지 책임지고 사랑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믿는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짊어지기에 앞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길 원하나이다.’는 순종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다 이루었다는 말을 남기시고 돌아가셨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지를 공감해야 우리는 정말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늘 실수를 하는 부족한 인간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 선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는 것이다. 아들을 죽게 하는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조물주에게 인간이 보일 최소한의 공감적 반응은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고 싶다. 노아처럼 우리도 어떤 면에서 다가갈 기회가 생긴다. 그것이 고통이든, 삶의 위기이든, 삶에서 위대한 학문적인 발견을 했든, 우주를 보고 한낱 모래에 불과한 자신을 성찰하든 자기 나름대로 조물주와의 공간적 관계를 설정하는 가치 작업이 영적 감각의 회로를 다시 복구시킬 것이라 생각한다. 


 영성 차원에서 마음매력 신경망에서 하나님 사랑에 대한 모듈이 복구되었다면, 이제는 인접 모듈도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함께 활성화된 뉴런들은 함께 연결되고, 마음 매력 강화를 통해서 뇌에도 신경구조의 흔적을 남길 수 있으니,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따뜻한 온기와 빛이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게 흘러가도록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겠다. 그러면 그 회로도 같이 연결되어, 양쪽의 모듈이 살아나고, 우리의 이웃들은 우리의 선행을 통해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 고마움이라는 창조주의 숨결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하늘에 쌓아둘 보물이란 마음매력의 유산, 곧 사랑의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절대자,  나 자신, 이웃을 사랑하게 하는 사랑의 실천은 뉴런이란 신경구조의 흔적을 남길뿐 아니라 저 하늘에까지 닿을 수 있는 무형의 가치와 의미를 남기는 것일 것이다.   


 사랑이란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내 마음도 있다고 하신다. 그런 면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투자해 내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는 행동은 정신적 유산이 되어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서 잠시 왔다 가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살지만, 이 세상과 후대에 본인만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사랑의 흔적을 남겨, 시간이 지나서도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마음 매력 신경망이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변하도록 사랑을 실천하며 선행을 통해 누군가를 사랑했었다는 고마운 기억을 남기는 것이 결국 죽음으로 좌절하는 인간이 오래도록 남길 수 있는 한줄기 구원과 위로의 빛이 아닐까. 어찌 됐든 오늘의 행복을 지키고, 오늘의 사랑을 실천하자.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사랑받고 용서받은 사람으로 사랑하고 용서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힘든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좋아하지도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위로를 전하고 싶다. 


 단 한마디 말을 남길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라는 것, 행복하게 살아갈 자격이 있고,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대로 삶을 가치 있게 살아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만은 행복해지기로 작정하면서 평범한 소소한 행복을 가능한 한 많이 누리고, 초연한 이타주의적 삶을 실천한다면, 당신에게는 누군가에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던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되는 달콤한 삶의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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