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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 Kim Jan 03. 2021

연말정산 - 21을 맞이하여

2020 회고, 돌아보기와 계획하기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면 돌이나 규칙과 같은 단어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내 일상은 몇 가지 간단한 규칙을 가지고 판에 박은 듯이 반복을 하는 형태로 돌아간다. 꾸준히 하는 것은 유지한다. 새로운 작업이 필요하다면 일과에 포함될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들되 유연함을 통해 포기하지 않도록 장치를 만든다. 관계를 맺을 때도 간단한 선이 있어, 선을 넘지 않는다면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는다. 거리를 유지함을 통해 내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다가가기 쉽지 않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나는 애초에 흥미롭지도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비인간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 단면 중 하나일 뿐이다.

단절되어 멈춘 세상에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런 나에게도 2020년은 단순했다. 무미건조할 만큼 하루가 동일했다. 다르게 표현하면 개인적으로 시간을 많이 들여야 가능한 일들을 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동안 쌓아놓기만 했던 정리에 돌입했다. 그 결과 2020년은 좋게 보면 정돈, 가까이서 보면 기념, 멀리서 보면 일상, 나쁘게 보면 정체가 되었다. 마지막 "나쁘게"가 있는 까닭은 바로 위에 언급되는 내 경향 때문인데, 이 글의 목적과도 관련이 있다. 일단 차례대로 이야기해보자.



좋게 보면, 정돈

청소

 청소를 빼고 2020년을 말할 수 없다. 2020년은 청소로 시작하여 어김없이 청소로 끝이 났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자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5년 이상을 한 곳에서 살자 추억과 기억들이 사방에 박혀 있는 곳이 되어 있었다. 하나하나 끄집어내고 분류하고 버리고 다시 배열했다. 그 시작에 대해서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누구나 청소하면서 UX를 한다., Feb 27, 2020.)


 UX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가 주로 활동하는 장소를 행동방식에 맞지 않게 내버려 둔다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작업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지금, 많은 탑들이 사라졌다. 고층 빌딩이 당연한 줄 알다가 어느 날 갑자기 넓은 하늘과 공터가 아름다웠음을 깨닫는 감동을 느꼈다. 무엇보다 내가 어떤 물건이 필요하고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확인했다. 자연스럽게 많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들였다. 새 물건과 규칙은 지금과 맞아 내 하루하루를 정비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동안 브런치를 통해서 총 20개의 글을 발행했는데 그중 대부분이 트레바리의 1코노미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1코노미 글은 가장 쓰고 싶거나 보여주고 싶은 글은 아니다. 오히려 쓰기 위한 글에 가지만 우선순위는 가장 높다. 쓰기로 약속했으니까. 그 덕에 발행이라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써서 꺼내는 것이 목표인 글이었으므로, 미루거나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다. 더 좋았던 것은 읽고 생각하고 나누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것이다. (내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의 생각)


 어떤 개념을 접해도 머리로만 이해하고 마음에 들어오지 않으면 순간의 끄덕거림으로 흘러버린다. 그것들을 그러모아 정리하면서 다시 많이 배웠다. 아직까지는 내 글쓰기는 (이 글까지 포함하여) 보는 사람보다 쓰는 과정에 의의가 있다. 꾸준히 훈련하여 쓰는 행위 자체의 가치를 넘어서서 읽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확장하고 싶다.



가까이서 보면, 기념

가족

 경자년에 태어난 부모님은 2020년에 환갑을 맞이했다. 나는 1월 1일이 되는 그 순간부터 내내 환갑을 생각했다. 잔치를 할 계획은 없었으나 기억은 남기고 싶었다. 나에게는 특별한 하루를 거창하게 준비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2020년 전체로 분산했다.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날짜와 관계없이 생일선물이라는 이름으로 구매해서 드렸다. 추억 중 하나를 책 수선가에게 의뢰하여 멋진 책으로 제작하고, 환갑 수건을 주문했고, 기념 케이크를 의뢰했다. 전문가가 실력과 정성을 들여 무언가를 제작해준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 떨리고 두근거리는 일인지 몰랐다. 소소한 선물이 감동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독채를 빌려 특별한 공간에서 가족끼리 시간을 보냈다. 마음을 다해 준비한 것에 대한 행복을 마주할 때 그 이상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림

 2016년 아이패드 프로를 가지고 있고 낙서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연말 이벤트의 캐리커쳐 담당자로 차출되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손이 덜덜 떨렸지만 한 명 한 명을 그릴 때마다 익숙해져, 캐리커쳐와 초상화는 새 취미가 되었다. 나를 그릴 때는 새로운 방식을 도전해볼 수 있어 흥미롭고, 남을 그릴 때는 익숙하지 않은 형태를 그리는 것이 신난다. 그림을 그릴 때면 어느 한순간을 특별하게 남기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때 가지고 있는 마음과 감각에서 그림의 고유함이 나오는 듯하다. 나에게 그림은 노력할수록 바로바로 발전하는 취미라 놓지 말고 계속 가져가고 싶다.

그린 것 : 내 얼굴 11, 친구 얼굴 6, 풍경 2




멀리서 보면, 일상

운동

 일을 할 때는 머리와 마음을 주로 사용한다. 운동을 할 때는 몸을 주로 사용한다. 아무리 머리를 잘 쓴다 하더라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안 그런 일이 어디 있겠냐만은), 꾸준함과 반복이 필수다. 몸의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정신에도 도움이 된다. 체조를 배운 지 4년 차에 돌입해서 그런지 힘을 쓰는 요령을 슬슬 알 것도 같았다. 내 몸을 다르게 쓸 수 있는 방법이나 실력이 생긴다는 것은 아주 신나는 일이다. 나에게 체조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고 노력하지 않으면 발전하지 않는 취미라 놓지 않고 계속 가져가고 싶다. 썩 잘하는 편이 아니라 한 해에 기술 1개나 2개 정도를 완성하는데, 확진자 수가 줄어들어 훈련을 계속할 수 있게 되는 날을 꿈 꾸고 있다.

성공 : 뒤구르기 물구나무, 잭고(에어매트), 석고(야외)

연습 시작 : 측전 백핸드, 터치다운 라이즈


식물

 식물은 위로와 기쁨을 준다. 2018년부터 식물에 본격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여러 식물을 돌보고 죽이면서 경험과 지식이 조금씩 쌓여갔다. 특히 재미있었던 일로는 어머니의 명을 받고 회사에서 유기되었던 식물들을 구출한 것이 있었다. 식물들은 창가에 장기간 방치되면서 웃자라거나 말라비틀어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가차 없이 가위를 들이대어 삽목을 시도했고, 녀석들은 파릇파릇하고 예쁘게 자라 회사로 돌아갔다. 직접 심은 아보카도 나무가 죽은 이후에 우울해, 먹고 심은 감 씨앗이 발아한 것도 기쁨이었다. 그리고 내 부족으로 떠나간 친구들아, 미안해. 마오리 코로키아 실버와 올리브까지만 추가로 들여놓으면 참 좋을 텐데.

함께하는 식물 : 틸란드시아 2(이오난사, 하리쉬), 아보카도 4, 한라봉 1, 용신목 1, 유칼립투스 3(폴리안, 플레유로카파, 모름), 오렌지 재스민 2, 양골담초 1, 남천 1, 자금우 1, 감 2, 금사철 1, 다육 1(모름)

보내준 식물 : 틸란드시아 1(이오난사 드루이드), 마오리 코로키아 2(코토니스터, 실버), 유칼립투스 2, 블루스타 고사리 1


업무 커뮤니티

 지금 다니는 회사는 조직구조나 프로젝트 진행방식에 있어 UX 관련한 교류나 논의를 하기가 쉽지 않다. 고립되는 것이 두려웠기에 오픈 카톡방을 검색하여 들어갔다. 덩치가 있는 곳도 소규모도 있는데, 소규모에서는 더 허물과 경계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별도의 게시판이 없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판단은 둘 모두가 채팅을 참여하고 있는 시간 동안에 이루어진다. 잠깐의 시간 시간들 동안 서로 도우며 장기간에 걸쳐 신뢰와 관계를 쌓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그동안 나도 도움을 주고받은 것이 많아 운영진과 구성진들에게 감사하고 있으며 만족스럽다.


 업무 커뮤니티의 궁극적 형태가 채팅방의 형태는 아니고, 이미 실무에서 검증된 노하우가 많을 테니 더 발전한 형태의 플랫폼을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시기를 따져보면 이미 누군가 시도를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채팅방은 가장 날것의 이야기를 빠르고 편하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브런치나 미디엄, 구독 서비스까지 다양한 대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더 쉽고 자연스럽게 나아가고 함께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진지하게 고민해보지는 않았다.




나쁘게 보면, 정체

 시도 자체를 할 수 없는 환경에서 내 장점도 단점도 두드러져 나는 점점 더 내가 되었다. 무리를 하지 않으며 일상을 규칙으로 관리하기에, 힘을 집중시켜 나아가는 폭발력은 없다. 선을 지키며 판단을 서두르지 않기에, 나를 타인에게 각인시키는 사교성은 적다. 보통인 상황이라면 이 감각이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올 때 불안함에서 나온 용기를 가지고 색다른 것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에 일상을 잘 지키는 성향을 가진 사람은 점점 고착이라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돌이켜보면 어려운 일을 어떻게든 해내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많은 책을 읽었을 때도 스스로에 대한 불안은 있었다. 시도와 활동 하나하나가 나에게 스며드는 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막연하게 느껴졌다. 충분히 생각하기보다는 순간을 살았다. 자극이 너무 많아, 버겁다는 기분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귀한 나날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기회 자체보다는 내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를 아낌에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은 아쉬운 법이다. 생각할 시간이 없어 울먹였던 과거처럼, 시도할 기회가 없어 무력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런 나에게 내 생각을 정리하고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이 글을 썼다. 몸을 잘 챙기기 위해서는 먹는 것도 소화하는 것도 단련하는 것도 쉬는 것도 모두 필요하다. 내가 지금 먹거나 단련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먹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소화하고 쉬는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난 2020년이 되는 시점에 정말 그것을 간절하게 갈망하고 있었다.


 그런 기간이었기 때문에 위에 쓴 것과 같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다.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내면이 단단해지는 기간이었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속상해하거나 의기소침해하는 것은 이상하다. 이상이 가지는 인상은 현실이나 성향을 무시하고, 그저 빛나고 있는 그 자체만 가지고 있기 마련이나, 그 뒤에는 그 일들을 해내는 사람과 그들의 시간이 있다. 1코노미 글을 정리할 때, 무언가 하려는 사람들의 여러 사람들의 고민과 생각을 곱씹으며 스스로의 멋진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하로 내려가는 것이 보편적인 특징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까지. 이해와 별개로 가끔 다시 저 감정이 스멀스멀 찾아올 때가 있다.  기분아 듣고 있어? 내가 매일 똑같이 살고 있거나 새로운 교류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도전하지 않는 사람이라서가 아니야! 그 생각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려주기 위한 내 노력이 보이니? 뭐, 그런 불안함 때문에 발전과 변화도 있는 것이겠다만.



2020년의 나는 정리를 시작했다.
2021년의 나는 정리를 마무리하겠다.

 회고를 하고 배운 것이 있다면 다음 계획이 있어야겠다. 나는 계획을 현실성 있는 척하면서 조금 빡빡하게 잡고, 결국 달성하지 못해도 스스로는 만족하는 것을 좋아한다(회사에서는 써먹으면 안 된다. 목표와 일정은 모두가 공유하고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이다). 2021년에도 거창하거나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한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2022년에는 정리해야 하는 것에 발목 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을 들여 정리가 필요한 것

 2020년에는 봄에는 청소, 여름에는 식물, 가을에는 가족, 겨울에는 그림을 조금 더 챙겼다. 다르게 말하면 주말에 특별히 할 일들이다.


청소

목표 : 2020년에 이어서 나에게 속한 구역을 모두 점검한다. 베란다와 창고라는 큰 산이 남아있다.


재무상황 정리 및 계획

목표 : 최근 5년간의 재무 현황을 검토 완료한다.


포트폴리오

목표 : 2022년에 포트폴리오를 작성할 수 있는 소스를 제작한다.  

    2018~2020 진행한 프로젝트 내용 정리  

    해온 것, 잘하는 것, 부족한 것, 하고 싶은 것 정의  




평소에 꾸준히 유지해야 하는 것

 작년에는 목표를 두지 않고(혹은 뒀는데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습관적으로 유지했던 것이다. 구체화하고 몇 개 항목은 하지 않던 것을 추가했다. 2021년이 끝나갈 때쯤 내용과 분량이 적당한지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영어

목표 : 놓지 않는다.  

    주 5일 20분 단어 암기, 주 3일 10분 필사  

    주 1회 영어강의 1시간  


목표 : 브런치에 한 달에 2개 이상의 글을 올린다.  

    1코노미 완결 목표 목표, 최소한 1~4월은 필수  

    취미수집 인터뷰 글 정리 양식 제작  

    UX 관련 글, 계획과 관련된 글 1개 이상 작성하기   


그림

목표 : 한 달에 1개 이상 그린다.


운동

목표 : 허리를 1인치 줄인다.   

    주 3회 30분 이상 운동  

    저녁 섭취량 신경 쓰기

체조 관련 목표를 세우고 싶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학원 운영이 어떻게 될지 몰라 다른 목표를 정했다.



코로나19가 사라진 삶 꿈꿔보기

 시간은 흘러가는데 일상은 고정된 것에 아쉬워하는 나를 위해 코로나19가 물러가면 하고 싶은 것들을 따로 정리해보았다. 누리고 있었을 때도 소중함을 몰랐던 것들이자, 간절하기도 하다.   

    친구 : 얘들아 잘 지내고 있니?  

    수영 : 수영을 할 수 있다면 바다에서도 실내외 수영장에서도 더 다양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수영을 못하는 것이 막 아쉽던 차였다.  

    동호회 : 동호회까지 할 체력이나 시간은 기대하지 않지만, 그래도 열정을 담는 건 즐겁다.   

    인터뷰 : 심층 인터뷰는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배우는 게 많다. 나에게는 배움을, 상대에게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재미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여행 : 아, 여행.   



다시, 시작

이 글을 12월 31일까지 정리하고 싶었는데 왜 1월 3일인지. 목표에 독서가 없는 건 아쉽다.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지만 위의 활동을 모두 하면서 책도 읽고 내용까지 정리할 자신은 없다. 그래도 시간을 들여 정리가 필요한 것 목록에 있는 항목들은 한 번 거창하게 하고 나면 평소에 꾸준히 유지하는 것으로 넘길 수 있는 것들이다. 자, 그럼 진짜로 2021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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